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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3] 조선 도공의 한이 담긴 '사쓰마도기', 세계인을 감탄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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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3] 조선 도공의 한이 담긴 '사쓰마도기', 세계인을 감탄시키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7.24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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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임진왜란 등을 통해 수많은 도공 인력을 확보한 일본은 17세기에 이르러, 중국과 버금갈만한 도자기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도자기는 서구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세계를 사로잡은 일본 도자기는 이마리 항구에서 생산한 아리타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고시마의 '사쓰마 도기'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사쓰마도기 역시 아리타 자기처럼 조선인에 의해 시작됐다는 것이다.

사쓰마도기는 1598년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끌려온 박평의(朴平意, 1558~1623)에 의해 시작됐다. 박평의 역시 아리타 자기를 창시한 이삼평처럼 행적과 본관이 알려지지 않았다. 박평의는 사쓰마의 다이묘인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붙잡혀 42명의 도공과 함께 도자기를 생산하게 된다. 사쓰마는 오늘날의 가고시마현을 말하며, 아리타 자기가 탄생한 사가현과 약 300km 떨어진 규슈 남쪽에 위치해 있다.
 

사쓰마 야키 [출처-pixabay]

사쓰마도기의 특징과 종류

사쓰마 도기의 특징은 아리타 자기와 달리 쉽게 정의하기 힘들다. 종류가 아주 다양하기 때문이다. 계통은 나에시로가와계, 다테노계, 류몬지계, 니시모치다계, 히라사계, 다네가시마계 6가지가 있으며 시로사쓰마, 구로사쓰마 두종류의 제품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6가지 계통은 사쓰마의 각 가마를 의미한다. 이중 박평의는 사쓰마도기의 원류인 '나에시로가와계'에 속한다. 박평의와 조선 도공들은 현재의 히가시이치키인 나에시로가와의 미야마에서 마을을 이루어 도자기를 만들었다. '다테노계'는 도공 김해가 현재 아이라시에 문을 연 우토가마, '류몬지계'는 도공 변방중의 류몬지가마, '니시모치다계'는 오노 겐류가 1663년 문을 연 가마 등에서 비롯되었다.

'시로(白)사쓰마'는 옅은 황토 또는 백토로 도기를 빚고 무색의 유약을 발랐다. 하얀 바탕에는 미세한 금인 관입을 입혔고 다양한 색깔로 동식물의 문양을 그려 아름다움을 더했다. 박평의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일본을 뒤졌으며, 기리시마산에서 질 좋은 백토를 발견하여 시로사쓰마를 만들었다.

'구로(黑)사쓰마'는 박평의가 처음에 백토를 찾지 못했을 때, 가고시마 지방에 흔한 철분이 많은 화산성 토양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이 검은 흙을 빚어 굽고 검은색 또는 갈색의 유약을 발랐다. 한국의 옹기처럼 일본의 서민들이 생활용 도기로 애용했다.
 

구로사쓰마 [출처- Bandanna Almanac]
19세기 후반 제작된 사쓰마도기, Krannert Art Museum 소장 [출처- 위키피디아, Daderot]

사쓰마 도기를 만드는 가문, 심수관

조선 도공들은 사쓰마에서 꾸준히 대를 이어가며 도자기를 만든다. 이 중에서는 박평의와 함께 끌려온 심당길(沈當吉)도 속해 있었다. 그와 그의 후손들은 특히 사쓰마도기를 만드는 대표적인 가문이다. 심당길은 박평의와 함께 백토를 찾아내 아름다운 시로사쓰마를 만들었으며, 이에 감탄한 사쓰마 다이묘는 이들에게 사무라이급에 준하는 대우를 하였다.

심당길의 12대 후손인 심수관(1835~1906)은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 1873년 빈 만국박람회 등 세계적인 박람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심수관의 사쓰마도기는 수많은 사람을 감탄시켜 세계적인 명성과 각종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수출도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특히 빈 만국박람회에서 그는 '금수대화병'이란 작품을 출품했다. 약 2m에 가까운 높이의 이 대화병은 물레 위에 화병의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두텁고 기다란 도토의 가닥을 겹쳐가며 말아 올려 만들었다. 이 방법은 일상용품인 구로사쓰마를 만드는 방법이었지만, 심수관이 처음으로 예술작품에 이 기술을 응용하여 거대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12대 심수관 이후에는 '심수관(沈壽官)' 자체가 사쓰마도기를 만드는 도예가의 칭호가 된다. 심수관의 후손들 모두 심수관으로 칭해지며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다. 심수관과 조선 도공들이 만드는 사쓰마야끼(사쓰마도기)는 이후에도 다양한 박람회에 출품되어 세계인들에게 고유의 아름다움을 떨친다.

이후에는 사쓰마야끼도 더욱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하고, 산업화의 영향에 따라 공장과 설비를 갖추어 대량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사쓰마도기는 20세기에 들어 점차 인기를 잃게 된다. 수공예로 만들면서 세계인을 사로잡은 독특한 아름다움이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만들어진 사쓰마 꽃병, George Walter Vincent Smith Art Museum 소장 [출처- 위키피디아, Daderot]

조선인의 한이 시린 사쓰모 도기

박평의는 마을 사람과 함께 옥산궁을 짓고 단군을 모셨으며, 추석마다 제사상을 차리고 조선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옥상궁터 앞에는 박평의를 기념하는 ‘사쓰마도기창조박평의[薩摩陶器創造朴平意] 기념비’가 우뚝 서있다.

마을 사람들은 꾸준히 조선 문화와 언어를 지켜가며 살았다. 혼인도 조선 사람끼리 했다. 하지만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후손들은 대부분 일본인으로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다. 박평의의 후손인 박무덕은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도고 시게노리'로 개명하였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 내각의 외무대신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쓰마도기는 조선인들의 피와 한이 맺힌 작품이었다. 하지만 사쓰마도기는 이러한 아픔을 뒤로 한채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장인의 핸드메이드 정신을 잊어버리고 쇠퇴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현재까지 심수관의 지휘 하에 꾸준히 전통적인 도자기를 만드는 중이다.
 

사쓰마 가고지마성 [출처- 위키피디아, Mass Ave 975 at English]

지난 6월 16일, 14대 심수관인 오사코 게이키치(한국명 심혜길)가 9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1964년 심수관을 계승한 그는 현지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대대로 이어온 긴란데(도자기에 금색을 입히는 기법)와 투조(透彫) 기법을 살린 사쓰마도기 작품 등을 폭넓게 다뤘고, 가고시마현 전통의 유리세공도 배워 투명감을 낳는 새로운 기법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 등에 노력해 1989년 대한민국 총영사에 임명됐고, 1999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8년에는 남원 명예시민이 되었으며,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심수관요를 방문하여 직접 사쓰마도기의 유래와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심수관가가 14대 심수관을 주인공으로 해서 쓴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1964년 소설 ‘고향을 잊기 어렵습니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현재는 15대 심수관을 아들인 오사코 가즈테루(한국명 심일휘)씨가 물려받아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그는 조선의 전통 흙가마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1990년에는 경기 여주에서 옹기 제작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렇듯 사쓰마 도기는 수백 년 정체성과 전통을 지키며 조선인 도공의 피와 땀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또한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쓰마 도기는 조선의 도자기가 일본이라는 새로운 곳을 발판으로 탄생했다는 점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문화의 융합과 변혁의 과정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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