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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4] 르네상스로 재탄생한 유럽인의 노력 '마욜리카 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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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4] 르네상스로 재탄생한 유럽인의 노력 '마욜리카 도기'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7.31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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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인에게 들어온 이슬람 도기, 유럽 각지에 전파되어 다양한 서양 도자기 탄생하는 계기돼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고령토와 유약을 통해 만들어지는 도자기의 최고 단계인 '자기'는 오랜 세월 동안 중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나라에서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령토가 아닌 점토를 상대적으로 낮은 저온에서 구워 만드는 '도기'의 경우는 일찍부터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졌다.

유럽이 중국의 자기를 만드는 비법을 터득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유럽인들도 전부터 나름대로 아름다운 도기들을 만들었다. 물론 유럽의 도기는 중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도 또한 중국의 자기 기술을 알아내진 못했지만 상당한 수준의 도기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마요르카섬 [출처-pixabay]

무어인의 도자기와 마요르카섬의 영향으로 탄생한 '마욜리카 도기'

스페인과 이탈리아 사이 지중해 바다에는 마요르카섬(Mallorca)이 위치해 있다. 이 섬은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그런데 이 섬은 중세 시대부터 이슬람과 유럽을 잇는 통로 역할을 하며 많은 교역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13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현재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위치한 반도)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슬람 왕국의 무어인들은 뛰어난 건축·예술·과학·인문학 등을 보유했다. 이들 무어인의 문화는 이 마요르카섬을 통해 유럽인들에게 전해졌고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스파노-모레스크 도기의 대표작 '알함브라의 병' [출처- 위키피디아, Luis Garca]

당시 무어인은 '이스파노-모레스크(Hispano-Moresque)'라는 뛰어난 경질도기도 만들었다. 이 도기는 마요르카섬을 통해 이탈리아로 전해졌으며 이태리인들은 도기를 섬의 이름을 따 마욜리카(maiolica)라고 불렀다. 현재는 영어로 마졸리카(majolica) 또는 '빛나다'라는 뜻의 러스터(lustere) 자기라고도 부른다.

마욜리카 도기는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내는 자기 단계로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았다. 중국 자기의 핵심인 고령토를 찾지는 못했지만 대신 납 유약에 주석을 섞어 만든 석백유(錫白釉)를 사용한 것이다. 이 석백유를 질흙으로 만든 도기 표면에 잘 바르면 영롱한 백색을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그 백색의 바탕에 코발트, 에나멜 또는 금·은·동 등 광물을 이용한 안료로 다시 그림을 그려 아름답게 채색했다. 특히 주로 마욜리카는 다섯 가지의 색을 사용했다. 구리로 만든 녹색, 코발트 암청색, 철 적색, 망간 자주색, 나폴리 황색이 그것이다.

르네상스를 거치며 차별화·다양화된 마욜리카 도기

15세기 이후 마욜리카 도기는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이탈리아의 마욜리카 도기는 이스파노-모레스크를 뛰어넘은 유럽만의 독특한 양식과 기법으로 재창조되었으며 스페인으로 다시 역수출되기도 했다.
 

이스토리아토 양식으로 만든 마욜리카 도기 [출처- 위키피디아, Michele Ahin]

아랍인들은 우상숭배를 금하는 종교적 이유로 도자기에 동물 및 사람을 묘사하지 않고 간단한 문양만을 그렸으나 유럽인들은 달랐다. 인간 중심사상을 반영하게 된 르네상스를 맞아 도기에 뛰어나고 섬세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며 인체 묘사를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이스토리아토' 양식이라고도 한다.

마욜리카를 필두로 만들어진 르네상스 유럽 도기들은 단순한 도자기를 넘어선 회화와 도자기의 콜라보라고 할 수 있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으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유럽의 뛰어난 회화 실력을 도자기에 입혀내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마욜리카 도기는 이탈리아에서 파엔차라는 도시에서 특히 집중적으로 발전한다. 이후에도 파엔차의 도기 기술은 다시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유럽 나라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뛰어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애썼고 프랑스의 '파이앙스', 네덜란드의 '델프트', 헝가리의 '헤렌드' 등으로 각자 발전하여 다양화된다.
 

헝가리의 경질자기, 헤렌드 도자기 [출처- 위키피디아]

경쟁 체제가 발전을 가져온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 덕분에 18세기 이후에는 유럽도 자기 단계에 이른 뛰어난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마졸리카 도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다시피 했다. 마졸리카는 사라졌지만 마졸리카를 통해 유럽도 중국의 도자기를 뛰어넘을 수준의 기술을 갖추게 된 것이다.

유럽은 비록 중국과 이슬람에 비해 처음에는 뒤처졌지만 꾸준히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이것을 서로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이러한 모든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유럽은 받아들인 기술과 문화를 자신들에게 맞게 재창조했으며 종국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반면 중국과 중동에서는 오랫동안 단일한 중앙집권 정치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쟁과 혁신을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은 우리에게도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마욜리카 도기의 아름다움에는 살아 숨 쉬는 교훈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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