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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도자기의 메카' 중국 도자기를 대표하는 징더전오랫동안 세계인을 매료시키며, 도자기를 선도해온 징더전의 역사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7.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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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도자기는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면서 사용한 필수적인 생활용품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중국은 가장 먼저 수준높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어, 오랫동안 도자기의 종주국으로 자리잡아 왔다.

기원전 1000년~2000년에는 대부분 세계에서 아직 불에 직접 구워서 무르고 깨지기 쉬운 토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이미 중국의 은나라에서는 유약을 바르고, 고온에서 굽는 등 훨씬 진보된 방식을 사용하여 견고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제작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도자기를 흠모해왔다. 때문에 수천년 동안 눈독을 들이며, 중국의 도자기 및 도자기 제작기술을 얻기 위하여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징더전 자기들 [출처 pixabay]

중국 최대의 도자기 생산지, 징더전

특히 이중에서도 중국 남부 장시성에 위치한 징더전은 중국의 도자기를 대표하는 최대 도자기 생산지였다. 징더전은 한자음으로 읽으면 경덕진(景德鎭)이라고 부른다. 이 징더전 주변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최적의 재료인 고령토(kaolin) 등의 흙과 유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고령토는 고령석을 잘게 부숴 만든 백토였는데, 자기를 만드는 필수 재료였다. 특히 징더전 근처 가오링산에서 나오는 고령토는 품질이 뛰어났다. 이밖에도 징더전은 중국 대륙을 관통하는 양쯔강과도 가까워, 해운수송에도 적합했다.

경덕진의 도자기는 문헌상으로는 한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특히 송나라 때에 크게 번성했다. 경덕진의 이름도 송나라 진종 황제(968~1022)가 이곳 도자기에 경덕년제(景德年制)라는 연호를 하사하여, 도자기 바닥에 새기도록 하면서 불리워졌다.

이후, 중국 전역의 내로라하는 도공들이 경덕진으로 몰려들게 된다. 송나라 대에 탄생한 청자와 백자의 빛을 모두 띄는 영청자(影靑瓷, 청백자)도 경덕진에서 탄생했으며, 송나라 이후로도 징더전에서 독창적이고 아주 다양한 도자기들을 만들어졌다.
 

오채와 금이 장식된 경덕진 도자기 [출처- 乌拉跨氪]
1135년경 징더전에서 만들어진 청화백자 [출처- World Imaging]

다양한 도자기의 흐름을 선도해온 징더전

원나라 시대에는 기존 자석만 사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석(瓷石)에 고령토를 일정한 비율로 섞어 배합하는 이원배방법(二元配方法) 등을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더욱 깨끗하고 정교한 기술이 사용되는 백자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 유명한 청화백자도 징더전에서 만들어졌다. 청화백자는 흰 백자 바탕에 영롱한 청색 문양이 조화를 이뤄,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자기이다. 청화백자는 순도높은 백자에 코발트 안료로 청색의 무늬를 그리고 장석질과 석회석질 등의 투명 유약을 씌운 다음, 유약이 더 잘드러나도록 산소를 차단하는 환원소성으로 구워냈다.

징더전의 청화백자는 특히 유럽인들을 매혹시켰는데, 징더전에서는 점차 청화백자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대량으로 만들어 수출하였다. 조선의 세조 역시 명나라에서 가져온 청화백자를 보고 감탄하여, 1464년 이를 똑같이 만들도록 했다고 한다.  세조는 값비싼 중국 코발트 대신 국내의 푸른색 안료인 토청(土靑)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국내산 토청은 약간 검푸른 색을 띠어, 중국 청화백자의 영롱한 청색을 따라올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후에는 고급 청화백자를 만들 때에는 중국산 코발트를 사용했다.

이밖에도 경덕진에서는 산화된 동을 안료로 사용한 빨간 문양의 '유리홍 자기', 오색의 다채로운 물감을 발라 낮은 열로 구운 '오채자기', 산화석을 섞어 만든 불투명한 물감으로 입체적인 문양을 표현했던 '분채자기' 등 아주 다양한 기법을 이용한 여러 도자기를 만들었다. 명·청 시대까지도 경덕진은 크게 번성했다.

 

청나라 가경제 대에 만들어진 도자기 불투명한 유약을 발랐다 [출처- Daderot]

청나라 말기부터 시작된 징더전의 쇠퇴

경덕진 도자기는 오랫동안 중국 왕실의 도자기를 생산하던 관요였으며, 세계인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징더전은 청나라 건륭제 이후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는 청나라 말기의 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져, 도자기 수요가 줄었고 경덕진 도공들의 삶도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의 도자기 수준이 급격히 추격해왔기 때문에, 점차 경쟁력을 잃었던 이유도 있었다. 오랫동안 유럽인들은 중국 도자기를 모방하고자 노력했는데, 18세기 이후부터, 유럽 각국에서 중국 도자기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도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반면, 징더전 도자기는 유럽이 서로 우수한 도자기를 만들려고 노력한 것에 비해, 오랫동안 대부분 왕실 등을 위해서 납품하는 관요 도자기 만을 만들었기 때문에, 활발한 경쟁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특히 대외 무역을 중시한 송나라 대에는 징더전 외에도 다른 수많은 가마들이 경쟁했지만, 명나라 이후에는 징더전이 최고의 가마가 되면서 경쟁상대도 줄어들었다.

또한, 1960년대에 진행된 문화대혁명 때도 징더전은 큰 아픔을 겪었다. 반달리즘 사상에 물든 홍위병들이 징더전을 없애야 할 '구문화'로 취급하며, 가마를 파괴하고 도자기를 부순 것이었다.
 

징더전의 도자기 장인 [출처-ping lin]

세계적 관광지와 도자 생산지로 새롭게 부흥하는 징더전

이러한 역사적 아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징더전시는 다시금 도자기의 메카 도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도자기를 다시 부흥시켰고, 훌륭한 관광지로서 개발된 것이다. 현재 징더전의 주민들 상당수가 도자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또한 도시에는 도자기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도자기거리는 명말청초에도 번화했던 거리였다. 이를 90년대부터 관광지로 개발하였으며, 현재 수백 개의 도자기 상점과 들어서 있다. 관광객들은 장인들의 도자기 제작 과정을 관람하고 구입하는 것은 물론 직접 도자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또한 징더전에는 현재 도자기박물관과 도자대학도 설립되어 있다. 도자대학에서는 젊은 대학생들이 현대의 감성에 발맞춘 도자기, 3D 프린트 등 신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도자기 등을 만드는 등, 공부와 개발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이를 통해 징더전은 도자기 인재를 육성하고, 새롭게 도자기 산업을 선도해나가면서 널리 징더전의 가치를 알리고자 한다. 세계 도자기 산업을 이끌며, 세계인들을 매료시켜온 징더전은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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