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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7] '본차이나'와 '웨지우드'의 나라, 영국의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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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7] '본차이나'와 '웨지우드'의 나라, 영국의 도자기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8.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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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에서 탄생한 아름다움, 영국 도자기에 대해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유럽의 외딴 섬나라, 영국은 구석진 지리적 위치로 인해 오랫동안 대륙의 발달한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단순히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닌 그에 알맞은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로 재창조하기도 했다.

유럽 도자기의 역사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유럽 대부분 도자기가 중국의 도자기를 갈망했던 욕망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고령토와 유약을 사용하는 중국식 경질자기를 최초로 재현한 독일의 ‘마이센 자기‘가 만들어진 18세기 이전의 유럽의 기술력은 저온에서 질 낮은 흙을 구워 만드는 도기(陶器) 수준에 머물렀다.


대륙의 영향을 받아온 영국의 도자기

영국은 주로 런던, 리버풀, 브리스톨 등지에서 도기를 생산해왔다. 이들 도기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뛰어났던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기, 이탈리아의 마욜리카 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물론 마욜리카와 델프트 도기 역시 중국과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고령토 [출처- 위키피디아]

유럽의 도기 제품은 흙을 반죽해 만든 도자기 형태에 유약을 바르고 구워낸 연질 도기들이다. 비록 자기(瓷器)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주석 유약, 코발트 안료 등을 활용해 아름다운 문양과 색깔로 장식을 하면서 중국 자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국 '브리스톨 도기'는 중세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나, 1683년 에드워드 워드가 만든 주석 유약을 바른 도기가 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기는 델프트와 마욜리카, 중국의 기법과 문양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많았다.

1709년 독일 작센주에서 '마이센 자기'가 완성된 후, 유럽 각국에서도 자신만의 경질자기를 생산해낸다.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카올린(kaolin)이라고도 불리는 고령토가 필요했으며 고령토의 비결을 알아낸 유럽 각국은 나라의 곳곳을 뒤져가며 고령토를 찾아냈다. 그러나 영국에는 고령토가 없었다. (이후 1750년에 콘월에서 대량의 고령토가 발견되었다.)
 

1815~20년 경에 만들어진 본차이나 [출처- 위키피디아, David Jackson]

우아하고 따뜻한 백색, 본차이나의 탄생

대신 영국인들은 발상을 전환하였다. 고령토에만 매달리는 대신 다른 대체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노력 끝에 영국은 드디어 고령토를 대체할만한 재료를 찾아내게 된다. 흙에 소를 비롯한 동물의 뼛가루를 섞어서 구운 것이다. ‘골회자기(骨灰磁器)’ 또는 ‘본차이나(bone china)‘라고도 불리는 새로운 도자기의 탄생이었다.

이러한 방법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토머스 프라이(Thomas Frye, 1710~1762)라는 도공이다. 그는 런던 동쪽 보우(bow)의 도자기 공방에서 일했다. 프라이의 공방은 도살장과 가까웠는데 우연한 계기로 1748년 뼛가루를 사용하면 도자기의 품질이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토마스 프라이의 본차이나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1790년대에 조지아 스포드(josiah spode, 1733~1797)가 개량된 본차이나를 내놓는다. 프라이는 뼈를 동물의 지방질 등 다른 부위와 함께 구웠다. 하지만 스포드는 지방을 제거하여 순수한 뼛가루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 골회를 6, 차이나스톤(화강암) 4, 고령토 3.5의 비율로 섞어 도자기를 만들었다.

스포드의 정립과 함께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표준 본차이나 제조법은 인산칼슘(골회), 장석, 유리로 반투명한 몸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특히 인산 칼슘 (Ca3 (PO4 )2)의 함유율이 30% 이상 포함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인산칼슘 대신 뼈의 인을 사용하기도 한다.

골회자기는 저온에서 구워 자화가 덜 이루어진 '연질자기'와 고령토를 고온에서 구워내 견고해진 '경질자기'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독특한 단계의 자기이다. 

하지만 그 매력은 경질자기에 뒤지지 않는다. 가볍고 얇지만 내구성이 좋고 다른 차가운 도자기에 비해 투광성과 따뜻함이 좋았다. 무엇보다 구워내면 모습을 드러내는 우아한 백색의 빛깔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했다. 또한 다시 여러 번 굽는 것도 가능하며 구울수록 더욱 색깔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웨지우드 재스퍼 주전자 [출처- 위키피디아, Daderot]
조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 1730~1795) [출처- 위키피디아]

영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브랜드, 웨지우드

이후에도 본차이나는 영국이 수백 년간 독점하면서 생산했고 조지아 스포드가 설립한 스포드, 로얄 덜튼, 로얄 크라운 등 수많은 관련 브랜드도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현대까지도 영국 도자기를 대표해온 기업인 '웨지우드(Wedgwood)'가 있다.

조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 1730~1795)는 옹기장인의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1759년에 웨지우드사를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한다. 웨지우드와 스포드는 오랫동안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였다. 웨지우드는 본차이나도 만들었지만 스포드와 경쟁하기 위해 다양한 도자기를 개발했다.

웨지우드는 '크림웨어 차세트'를 만들어 1762년 영국왕 조지 3세의 부인인 샬로트 왕비에게 헌정하였다. 왕비는 이 제품을 보고 크게 감탄하였으며 그때부터 여왕의 도자기라는 뜻의 '퀸즈웨어(Queen's Ware)'로 불린다. 이 크림웨어는 담황색에 가까운 짙은 크림색에 잔금이 새겨져 있다.
 

1770년에서 75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퀸즈에어 [출처- 위키피디아, Daderot, 웨지우드 박물관 소장]

이후에도 웨지우드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정확한 온도를 파악하는 고온측정장치와 구리를 넣은 녹유, 철을 넣은 황유 등 여러 색깔의 유약을 함께 개발해 다채로운 도자기를 만든다. 그중에서는 이집트 흑색 도자기에 영감을 얻어 만든 '블랙 바살트(Black Basalt)', 영롱하고 우아한 문양과 빛깔을 표현한 '재스퍼(Jasper)' 등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또한 웨지우드는 자기에 문양을 그림으로 찍는 신기술인 전사법을 도입했다. 이 방법은 일일이 손으로 문양을 그리던 방법보다 더 빠르게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으며 영국 도자기 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다양한 색깔과 문양을 넣은 웨지우드의 도자기는 영국 내외의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며 오랫동안 영국 도자기의 자존심이 되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인 2009년 파산하고 핀란드 회사인 피스카스에 인수된다. 마찬가지로 오랜 웨지우드의 라이벌이었던 스포드사 역시 같은 해 파산하여 포트메리온에 인수된다.
 

블랙 바살트 [출처- 위키피디아]

혹독한 경쟁 속에서 발전한 영국 도자기

섬나라인 영국 도자기의 역사는 다른 대륙의 유럽 국가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부분 유럽 대륙에서는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도자기가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도자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혹독한 경쟁 속에서 발전했다.

치열했던 만큼, 영국에서는 다른 도자기와는 다른 다양하면서 독특한 매력을 가진 제품을 쏟아내게 되었으며 세계를 주름잡게 되었다. 물론 현재 웨지우드와 스포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이 영국 도자기 전체의 종말이 될 수는 없다. 여전히 수많은 브랜드들이 오늘도 치열하게 더욱 좋은 도자기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어쩌면 굳이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 영국 도자기도 다른 나라의 것을 모방하면서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웨지우드와 스포드 등으로 대표되는 영국 도자기 발전의 역사와 교훈은 죽지 않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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