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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5] 프랑스의 '파이앙스'와 네덜란드의 '델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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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5] 프랑스의 '파이앙스'와 네덜란드의 '델프트'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8.07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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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감성과 다양함을 특징으로 하는 유럽 도자기의 발전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앞서 살펴본 이탈리아의 '마욜리카 도기'는 르네상스를 맞아 크게 발전했고 유럽만의 특색있는 도자기로 재창조됐다. 또한 마욜리카 도기는 이탈리아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탈리아 도공들은 마욜리카 도기 기술을 유럽 전국에 퍼트렸다. 유럽 각국은 저마다 이 도기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욜리카 도기를 자신들의 언어로 정정하여 부르게 된다.
 

1756년에 만들어진 세브르 도자기 [출처- 위키피디아, Daderot]

프랑스의 파이앙스 도자기

프랑스인들도 마욜리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578년 이탈리아 북쪽에서 이주해온 콘라드 형제가 처음으로 프랑스 느베르에서 도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이를 프랑스어로 다시 '파이앙스(faience)'라고 불렀다. 파이앙스는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루앙, 리옹 등에서도 도기가 생산됐다.

파이앙스는 프랑스 도자기 산업의 밑거름이 되었다. 급격히 발전한 프랑스의 도자기는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도자기로 변모한다. 파이앙스는 지역 별로 각각 고유한 특징을 가졌으며, 수많은 유행과 변천을 거쳐 프랑스 특유의 예술적 감성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유럽 도자기는 중국 또는 터키 도자기의 문양과 색깔을 그대로 구현해보려고 하는 경향이 유행했다. 중국의 꽃, 동물, 사람 및 파란 문양 등도 당시 유럽 도자기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인들은 성서와 신화적 장면을 도자기에 마치 채색하듯이 그려 넣기도 했다.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도전을 계속했다. 특히 퐁파두르 부인(1721~1764)은 프랑스 도자기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았던 첩실이었는데, 예술에 대한 관심과 교양이 두터웠기에 도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을 후원했다.

파이앙스의 중심, 세브르와 리모주

1756년 퐁파두르 부인은 기존 뱅센느에 있던 도자기 왕실 공방을 자신의 거처와 가까운 세브르(sevres)에 옮기게 하여 뛰어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직접 관리했다. '세브르 도자기'는 우아하고 경쾌한 곡선과 이국적 풍취가 특징인 로코코 양식을 극대화했다. 또한 에나멜 등을 사용하여 다채로운 색감을 표현했고 꽃 장식이 특히 많았다고 한다.

세브르 도자기는 특히 '국왕의 청색(bleu de roi)', '퐁파두르의 로즈(rose Pompadour)' 등의 독특한 색감을 주로 사용했다. 국왕의 청색은 루이 15세 시기에 새롭게 개발된 채색 유약인데, 청색은 당시 프랑스 왕가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또한 퐁파두르의 로즈는 퐁파두르 부인이 평소 좋아했던 산뜻한 느낌의 연분홍색을 말한다.
 

퐁파두르 로즈를 사용한 '포푸리 꽃병' 1760년에 세브르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위키피디아, Faqscl, 루브르박물관 소장]
퐁파두르 부인 [출저- 위키피디아]

1789년 프랑스혁명 때에 세브르에서는 수많은 공방들이 약탈과 파괴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많은 도공과 왕실의 지원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세브르는 '세브르 국립 도자기 박물관'이 설립되어 5만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세브르 도자기 학교'에서 도공을 양성하는 등, 전통있는 도자기 문화 도시로 자리 잡았다.

한편, 1768년 남서부에 있는 리모주(Limoges)에서 백색의 흙이 섞인 고령토가 발견된다. 기존 파이앙스는 주로 질흙에 유리 및 주석을 섞어 만들어 연질자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제 프랑스도 고령토의 발견으로 인해 드디어 도자기의 경지인 경질자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1771년에는 이곳에서 그렐레 형제가 도자기를 생산하였고, 1784년부터 19세기까지는 왕실에서 직접 리모주 가마들을 관리하였다. 그리고 다시 베르나르도, 아발랑(하빌랜드), 레이노 등 민간 자기 업체들이 설립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리모주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하빌랜드 도자기', 하빌랜드는 1842년 미국인 데이비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리모주로 이주하여 출시한 도자기이다 [Elaine with Grey Cats 제공]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자기

풍차와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에서도 네덜란드만의 독특한 도자기가 있다. 바로 델프트 지방에서 만드는 '델프트 도기(Delftware)'이다. 델프트 도기는 1584년 이탈리아의 도공인 키드디 사비노가 지금의 벨기에 북부 도시인 앤트워프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앤트워프의 도공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델프트로 이주해온다.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기 중에는 '델프트 블루'가 유명하다. 당시 유럽인들은 흰색 바탕에 푸른 안료로 우아한 문양을 표현한 중국의 청화백자에 큰 감명을 받았다. 특히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 동인도 회사 등을 통해 가장 활발하게 동양에 진출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청화백자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중국의 청화백자는 네덜란드를 통해 값비싸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많은 유럽인들이 갖고 싶어했던 청화백자를 단순히 수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화백자를 모방해 비슷한 느낌이 나는 것을 만들어보고자 시도하면서 델프트 블루를 개발했다.
 

델프트 블루 [출저- pixabay]

델프트 블루는 흙으로 도기의 모양을 빚는다. 그다음에는 주석을 섞은 하얀 유약(석백유)을 바르고 저온에서 구운다. 그리고  푸른색 코발트 안료로 문양 또는 그림을 표현한다. 그리고 다시 투명한 유약을 바르고 고온에서 구워서 완성했다. 이 델프트 블루는 중국 청화백자의 인기에 편승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델프트 블루는 이렇게 1640년부터 18세기까지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독일에서 1709년 '마이센 자기'라는 최초로 경화자기(경질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자 위기가 닥쳐왔다. 네덜란드는 경질자기를 만들 수 있는 조건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었다. 경질자기의 핵심인 고령토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네덜란드인들은 발상을 전환해 델프트 블루를 사용한 타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텔프트 블루 타일'은 도자기처럼 질 좋은 흙 없이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뛰어난 활용도로 인해 예술 공예와 건축 양식으로서 다시 유럽인에게 애용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독일의 '님펜부르크 궁전' 등에서도 이 타일로 벽화를 꾸미기도 했다.
 

델프트 타일로 장식된 맨시코프 저택 내부 [Guy Fawkes 제공]

특히 러시아 샹트페테르부르크의 초대 총독이었던 멘시코프(1670~1729)의 화려한 저택인 '맨시코프 저택'은 내부의 곳곳이 델프트 블루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영롱하고 푸른 델프트 타일의 광택은 저택을 굉장히 화려하고 우아하게 꾸며주고 있다.

유럽 도자기의 역사는 참 재미있다. 중국과 중동의 도자기는 일정한 흐름대로 국가의 지원하에 발전했지만 유럽은 각 지역마다 다채롭게 발전하며 제각각 자신의 환경을 활용해 치열하게 방법을 찾아냈다. 중앙집권화된 아시아의 나라들과 달리 서로 많은 교류를 주고받았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는 점들이 오늘날 유럽 도자기의 다양성을 있게 한 요인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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