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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6] 유럽 최초의 도자기를 연금술사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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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세계 여행 6] 유럽 최초의 도자기를 연금술사가 만들었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8.14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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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유명한 도자기 브랜드인 '마이센 자기', 드레스덴의 연금술사에 의해 탄생하다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유럽에는 로얄 코펜하겐, 하빌랜드, 웨지우드, 볼레스와비에츠 등 다양한 도자기 브랜드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판매되고 있는 이 도자기들은 아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단순한 제품이 아닌 각자 그 나라 역사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며 고유한 문화를 담아온 '문화재'와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도자기 중에 가장 최초의 유럽 도자기는 어떤 것일까? 시기상으로 볼 때 유럽 도자기의 시초로 꼽히는 것은 독일에서 1709년에 만들어진 '마이센 자기(Meissen porcelain)'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이센 자기는 유럽 최초의 '경질자기'였다. 경질자기는 장석질의 원료를 사용하여 초벌구이 등 여러 번의 굽기 과정과 유약칠로 만든 자기이다. 질 낮은 흙으로 빚고 저온에 구웠기에 무르고 깨지기 쉬운 연질자기보다 훨씬 진보된 것이며 수공예로 만드는 도자기 중에서는 가장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1735년에 제작된 마이센 화병 [출저- 위키피디아, World Imaging]

유럽을 사로잡은 동양 도자기의 매력

오랫동안 유럽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에 매료되어 이를 수입해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동양의 도자기 가격은 당시 노예 7명 또는 유럽 중산층의 좋은 집 한 채 가격을 넘을 정도라고 한다. 독일 작센의 제후였던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정예 기병 600명을 주고 도자기 151점을 받기도 했다.

일본과의 독점 교역으로 도자기를 수입해온 네덜란드는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떠올랐다. 또한 유럽 왕족과 귀족들은 동양 도자기를 수집하여 궁전 또는 자택을 여기저기 장식하곤 했다. 동양의 도자기는 유럽인에게 있어서는 당시 고급 예술품이자 부유함의 척도였다.

이와 동시에 유럽인들은 '동양의 하얀 금'이라 부르던 도자기를 자신들도 직접 만들어보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다. 유럽 여러 왕실과 정부에서도 직접 지원에 나섰고 유럽 도공들도 동양의 도자기를 재현해내는 것을 명예로운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좋은 자기를 만들려면 자기를 만드는데 필수인 고령토(kaolin)가 필요했다. 장석류의 광물이 화학적 풍화를 받아 생성된 이 흙이 자기의 비결이라는 것을 당시 유럽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에나멜과 금을 도금한 도자기 [출저- Ashley Van Haeften]
[출저- 위키피디아, Sailko]

유럽 최초의 경질자기, 마이센 자기

하지만 유럽인의 끈질긴 노력은 계속되었다. 결국 작센 공국(오늘날 독일의 작센주)의 드레스덴 교외에 위치한 마이센 가마에서 이러한 자기를 생산하는 비법을 알아내게 된다. 드레스덴은 오랫동안 융성했던 대표적인 유럽의 문화도시였다.

아우구스트 2세 왕은 앞서 보았듯이 열렬한 도자기 애호가였다. 그는 처음에는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요한 뵈트거라는 연금술사를 불러 황금을 만들도록 했다. 하지만 쉽지 않자 이번에는 자기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비밀 유지를 위해 뵈트거를 감금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닿지 않게 은밀히 가마를 만들어 감시를 했을 정도였다.

결국 뵈트거는 수년간의 노력 끝에 1709년 고령토를 발견하고 고령토로 마이센 자기를 만든다. (하지만 뵈트거는 함께 일하던 발터 폰 치른하우스라는 자가 급사한 다음, 그의 집에서 도자기 비법을 빼돌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 년 후에는 1710년에는 왕립 작센 자기 공장을 만들어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뵈트거는 계속된 감시와 과로를 버티지 못하고 1719년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처음에 마이센 자기는 원래 중국의 징더전 또는 일본 이마리 자기를 단순히 모방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뵈트거 이후에도 계속해서 연구와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점차 독창적인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백자의 자기를 바탕으로 로코코 양식 등 유럽의 다채로운 문양을 에나멜과 상감기법 등으로 장식하게 된다.

마이센 자기의 발전을 주도한 장인으로 헤롤트, 켄들러가 있다. 1720년 마이센 가마의 총감독으로 초빙된 헤롤트는 색채 등 회화적 요소를 발전시켰으며 조각가 켄들러는 형태 등 조각적인 요소를 극대화하였다. 특히 켄들러는 자기에 상감 기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문양과 그림을 새겼다.

알브레히츠부르크성 [출저-pixabay]

오늘날의 마이센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던 마이센을 만드는 방법도 결국은 점점 유럽 전역으로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모조품 등이 생겨나 구분이 어렵게 되자 마이센 가마에서는 1722년부터 장인의 도자기를 보호하고 진품으로 인증하기 위해 밑면에 작센주의 상징인 쌍검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것은 마이센의 상표가 되었다.

산업화 이후에는 유럽 전역에서 도자기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마이센 자기는 역시 이러한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점차 대량생산 위주의 중저가 도자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또한 18세기까지 누렸던 독보적인 위상도 점차 다른 유럽의 브랜드 도자기와 나눠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 마이센 자기는 세계적인 도자기 제조기업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지금도 수공예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좋은 제품들이 많다. 또한 이들 제품은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마이센 자기를 만들던 작센주 마이센시는 유럽 도자기의 명소로 거듭났다. 마이센을 방문하면 도자기 박물관과 공방을 비롯해 마이센 자기가 만들어졌던 알브레히츠부르크성 등을 둘러보며 다양한 체험과 전시로 마이센 자기를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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