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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의 모든 것 ③] 일본 사무라이의 상징, 일본도의 명성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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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의 모든 것 ③] 일본 사무라이의 상징, 일본도의 명성의 비결은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4.17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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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일본은 칼의 나라였다. 오랫동안 일본 열도는 분열과 전쟁을 겪어왔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 역시 매우 호전적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사대부가 지배계급으로 활동한 중국·한국과는 달리 무사 계층인 사무라이가 사회 주요 계층으로 활약했다.

아울러 사무라이가 들고 있는 도검인 일본도(日本刀)는 일본의 독특한 고유문화로서 세계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미 이 일본도는 현대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도 일본을 표현하는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오랜 역사 동안 일본인들은 일상에서 칼과 함께 생활했다. 칼은 사무라이의 정신이자 문화 그 자체였다.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 / pixabay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 / pixabay

일본도는 어떻게 탄생했고, 왜 위력을 떨쳤을까

일본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섬나라인 일본의 특성상, 일본 문화가 중국과 한반도에서 받아들인 것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칼 역시 일본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7세기 당시 일본 야마토 정권에서는 당나라에 직접 견당사를 파견하면서,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이때 들여온 당나라 양식의 도검을 당대도(唐大刀)라고 하는데, 이것이 일본도의 시작이었다. 이 칼은 처음에는 한 손으로 사용하는 짧고 곧은 직도였다. 하지만 이후부터 점차 일본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일본도의 특징은 베는 데에 적합했으며, 뛰어난 품질의 강철로 만들었고 가벼워 양손에 들고 사용하기가 좋았다는 점이다. 칼날의 길이는 점차 길어져,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긴 칼은 약 155cm 정도이다. 물론 일본도의 길이와 무게는 시대마다,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16세기 명나라는 왜구의 침입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일본군을 무찌른 전설적인 명나라 장군 척계광의 기효신서(紀效新書)에서는 왜구가 다섯 자 길이의 일본도를 양손에 들고 춤을 추듯 휘두르면, 명나라군이 맥을 추지 못하고 당했다고 전한다. 책에서는 그래서 왜구를 상대하는 유명한 진법인 원앙진과 일본도를 모방해 만든 쌍수도도 기록되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선군은 근접전에서 일본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래서 중국과 조선에서는 이 일본도에 깊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된 것이다. 정조 시대에 편찬한 무술 교범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서도 따로 왜검 부분을 다루었고, 병사들의 무기로 정식 채용했다.

일본도는 또한 2차 세계대전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도를 들고 미군에게 돌격하는 일본군의 모습은 서구인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고, 일본도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이후에도 일본도는 소중한 전통 공예품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살아남았고 오늘날에도 제작 기술이 전승되고 있다.
 

정조가 편찬한 무예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서도 왜검(일본검법)을 다루었다
정조가 편찬한 무예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서도 왜검(일본검법)을 다루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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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 초에 제작된 일본도 고도 / 인사동나이프갤러리

독특한 일본도 제작 방법

일본도는 모래에서 나는 철가루를 모아 제련하는 사철 제련으로 만든다. 이 사철을 가열하여 덩어리로 만들고, 넓게 펴서 두들기는 단조 형태로 철 조각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쇠를 연한 쇠와 강한 쇠로 나누고, 쇠를 접고 피고 꼬는 과정을 반복하는 독특한 방법인 '접쇠'로 불순물을 제거한다. 이때 짚과 재로 철의 탄소량을 조절한다.

강한 쇠는 U자 모양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연한 쇠를 집어넣어 조합시킨다. 그다음 계속 망치로 두들겨가며 모양을 잡는다. 그다음에는 진흙을 발라 냉각시키고, 가마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물에 넣는 담금질을 한다. 이때 일본도의 독특한 무늬인 하몬이 생겨난다. 진흙을 바르는 모양에 따라 이 하몬도 형태가 달라진다.

다시 적당한 온도에 가열했다가, 식히는 과정을 반복하는 뜨임 과정과 초벌 연마를 하고 칼날에 조각을 새긴다. 그리고 다시 연마 과정을 거치면서 다듬는다. 마지막으로 칼집과 손잡이를 나무를 가공해서 반으로 각각 만든 다음, 풀을 발라 접착시킨다. 그리고 옻칠, 가죽을 덧대어 완성한다.

이 제작법은 일본도 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는 아직 강철이 나오기 전이라 불순물이 많아 균열이 가고 쉽게 깨지기 쉬운 철을 강한 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장인이 직접 손으로 일일이 오랜 시간과 고된 노동을 거쳐 만들어야 했지만, 그만큼 튼튼한 칼이 나왔다.
 

'일본도의 구조', 칼날은 시노기를 바탕으로 하단인 히라지와 칼등의 시노기지로 나뉘며 무늬인 하몬이 나타난다. 칼날의 선단인 kissaki와 선단을 나누는 경계인 yokote는 한국도와 비교하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손잡이에는 대나무못인 메쿠기를 박아 고정한다.
'일본도의 구조', 칼날은 시노기를 중심으로 하단인 히라와 칼등의 시노기지로 나뉘며 무늬인 하몬이 나타난다. 칼날의 선단인 kissaki와 선단을 나누는 경계인 yokote는 한국도와 비교하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손잡이에는 대나무못인 메쿠기를 박아 고정한다 / 위키피디아

일본도의 재밌는 특징들

일본도는 분해와 조립이 간편하여, 수리와 관리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다시 분해하여 보관했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도는 일체화된 다른 나라의 칼과 달리 부품 호환이 자유로워, 부품 시장도 활성화되었다. 오늘날에도 일본도 매니아가 많은 이유도 다양한 부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매력 덕분이다.

한국의 전통 칼인 조선도는 칼을 칼집에 넣으면 달려있는 잠금장치를 통해 고정시킨 것에 비해 일본은 메쿠기라는 대나무 못으로 칼을 고정시킨다. 일본도를 차는 방법은 허리띠에 끼우거나 끈을 매달아 등에 둘러메기 등이 있다. 일본도에는 칼집 옆에 튀어나온 '쿠리카타'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허리띠에 그대로 끼워도 칼이 빠지지 않게 해준다.

일본도의 종류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이미지의 칼 이외에도 사실 다양하다. 1척(30cm)보다 짧은 단도, 2척 내의 짧은 칼인 와키자시와 코다치,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전형적인 일본도인 2척 이상의 칼이 있는데 이 칼도 타치와 우치카타나로 다시 나눈다.

타치는 중세에 주로 사용한 것으로, 칼날을 아래로 하여 착용했고, 우치카타나는 날을 위로 두어, 바로 칼을 뽑아 벨 수 있게 하였다. 칼자루 바깥쪽에는 보통 만든 장인의 이름을 새기는 부분이 있는데, 타치는 칼날이 아래, 우치카타나는 위에서 보면 장인의 이름이 나온다.

일본도는 흔히 미디어에서 어떤 것도 베어버리는 아주 강력한 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도는 생각보다는 내구성이 약하다. 일본도 자체가 가볍게 휘두르기 좋게 만들었기에 날의 두께도 가볍다. 물론 현대의 합금 칼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일본도가 당시에 강한 칼이었던 것은 사실이며, 그 위력이 현대에 더 과장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카타나 / 위키피디아, Samuraiantiqueworld
우치카타나 / 위키피디아, Samuraiantiqueworld

일본도가 명성을 떨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도의 세계적 명성의 원인은 아까 얘기한 다양한 부품 호환을 통한 나만의 커스텀이 가능하다는 점, 일본도 만의 예술성 등을 들 수 있다. 일본도는 단순한 무기가 아닌 예술품으로 취급된다. 유명 장인이 만든 진품 일본도는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되며, 세계의 도검 마니아들이 모여들어 수집해간다. 워낙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모조품도 많이 생기는 형편이다.

하지만 일본도 자체의 특징만으로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닌듯싶다. 어쩌면 일본의 국력과 철저한 문화 마케팅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일본도가 일본인의 고유한 이미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싶다. 일본은 60년대 이후 경제성장 속에서 만화와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도 융성했는데, 특히 이때 일본도, 사무라이 등 독특한 일본 문화에 세계인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서구인의 눈에는 이러한 일본 문화가 아주 흥미롭고 신기하게 보였던 것 같다. 결국 서양에서도 일본 문화에 빠져든 매니아인 와패니즈(Wapanese)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도는 이제 자연스럽게 일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되었다.

일본도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됐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중국에서 이 일본도의 강력함을 배우게 됐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다. 이렇게 일본이 어떻게 자신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세계인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한류를 육성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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