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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덕후가 칼을 만들기 까지' -나이프갤러리 한정욱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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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덕후가 칼을 만들기 까지' -나이프갤러리 한정욱 관장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3.03 1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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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제련 복원과 전승에 대해 말하다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한국 전통문화의 중심지인 서울 인사동, 이곳에서도 눈에 띄는 독특한 가게가 있다. 바로 다양한 도검을 소개하는 '나이프갤러리'이다. 가게에 들어서니 입구에서부터 갖가지 도검이 즐비하다. 부엌칼, 조그만 나이프부터 구르카족의 쿠크리, 필리핀의 발리송 등 유명한 단검과 서양검, 일본도, 한국도, 철퇴, 도끼, 창, 화살 등 다양한 무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이프갤러리를 운영하는 한정욱 관장님은 소위 말하는 '칼덕후'이다. 어릴 때부터 육십이 넘은 지금까지 꾸준히 칼을 공부했고 모아왔다. 그의 진가는 1997년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에서도 드러났다. 범인을 잡는 데에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여 진범을 잡은 것이다.

그는 또한 전통적으로 우리가 도검을 만들던 방법인 사철제련을 복원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나이프갤러리 한정욱 관장
나이프갤러리 한정욱 관장

한정욱 관장님과 나이프갤러리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나이프갤러리를 운영하며 도검을 만드는 한정욱입니다. 나이프갤러리는 2000년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수집해온 1000점의 칼로 시작했고 현재는 약 5000여 점에 이릅니다. 나이프갤러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 칼을 볼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사실 칼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전부 소규모고 음지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최초로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부엌칼부터 도, 검, 나이프, 창 그리고 국내부터 일본, 중국, 서양, 중동의 것까지 모두 한곳에 모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칼 매니아가 된 계기에 대해

중학생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칼을 쓰게 됐는데, 그때부터 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칼을 수집하게 됐어요. 성인이 되서도 마찬가지였죠. 2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는데, 직장이 칼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칼은 여전히 저에게 중요했고, 근무시간 외에는 계속 칼에 시간을 쏟아왔죠.

그렇게 틈틈이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수십 년간 다양한 칼을 모았고 직장을 퇴직한 후에는 모은 1000점으로 갤러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칼 수집만 한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칼을 사용할 줄도 알아야죠. 그래서 몇 가지 전통 검술도 오랫동안 수련해왔습니다. 또한 칼을 만들기도 했고요.
 

갤러리 내부
갤러리 내부

칼을 만드는 방법은 누구에게 배운건가요

누군가한테 배운 것이 아닙니다. 독학으로 터득한 것입니다. 칼을 만들기 위해 아주 다양한 국내와 해외 자료를 모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순수하게 제가 터득해 나간 겁니다.


무형문화재 환도장, 장도장 등 전통도검을 만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분들과 차이점이 있나요

현재 전통 도검을 만드는 사람이 전국에 열명 조금 넘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전통 도검 만드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제철소에서 생산된 철판을 구입해서 그걸로 칼을 만들어요. 사실 엄밀히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죠.

이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복원품도 마찬가지예요. 형태는 비슷할지 몰라도 절대 완벽한 고증이라 볼 수 없어요. 제작 과정에서 기술적으로도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이유로 결국 현대적 기술을 도입한 거죠. 한가지 사례로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검도 비용 때문에 현대 기술을 사용한 불완전한 복원품입니다.

자연 속에서 직접 뛰어다니며 철을 구하고 직접 가공해서 칼을 만드는 사람은 제가 아는 한, 저와 이은철 도검장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은철 도검장은 주로 철광석을 캐다 제철하는 과정을 통해 칼을 만듭니다. 한국의 전통 방법인 사철제련 방식을 복원하여 칼을 만드는 사람은 저 말고 찾기 힘들 것입니다.
 

사철
자석과 채로 걸러낸 사철(좌)과 해변에서 발견되는 자연상태의 사철(우)

사철제련방식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철 가공은 철광석에서 순수한 철을 뽑아 강철을 만드는 제철입니다. 반면 사철제련이라는 것은 철이 섞인 모래를 제련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철제련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칼을 만들어온 방법입니다. 백제가 일본에 전해준 '칠지도', 무령왕의 '환두대도' 등 유명한 칼도 다 사철제련으로 만든 거예요.

철광석이야 광산에서 구하면 되지만 사실 사철제련은 해변 등에서 구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죠. 하지만 1톤의 철광석에는 보통 10~20kg의 철을 뽑는데 사철은 30~40%는 뽑아낼 수 있어요. 또 철광석에는 불순물이 많아요 사철에서 모은 철이야말로 더 강하고 야무지죠 왜 그럴까요?

사철은 풍화에 의해 철광석이 부서지고 바닷물과 섞이는데, 바닷물에 오래 있으면 쇠는 부식되잖아요? 배의 바닥도 계속 다시 보수를 해주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 사철은 바닷물 속에서도 살아남은 겁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 불순물은 빠지고 티탄 함량이 높은 질좋은 철이 남은 거죠.

우리나라의 도검은 '사철제련' 그리고 '접쇠'로 대표될 수 있어요. 접쇠란 쇠를 접고 꼬면서 강도를 증가시키는 겁니다. 종이를 계속 접으면 더 질기고 강해지죠? 접쇠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접쇠를 일본도를 만드는 고유 방법으로 아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우리가 접쇠를 전해준겁니다. 물론 중동에도 패턴 웰딩이라는 비슷한 기술이 있지만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이 방법을 알았습니다.

유럽에서는 사철제련을 거의 몰랐어요. 유럽의 칼은 접쇠 대신 그래서 무조건 두들기는 단조방법으로 불순물을 제거했고 강도가 약하니까 더 넓고 두꺼워졌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칼은 훨씬 가벼우면서도 단단합니다. 최고의 칼 제작 기술을 갖고 있었던 거죠.

ㅏ
사철에서 제련하여 추출된 덩어리
제련된 사철강괴 단면
제련된 사철강괴 단면

사철제련 방식을 어떻게해서 직접 복원을 하시게 된건가요

원래 저도 사철제련 방법이 있다는 것은 몰랐어요. 그러다가 알고 지내는 한 민속학자 분께서 얘기해주셔서 그때 처음 알게 된 거예요. 그분께서 "우리나라는 원래 이 방법을 사용했다. 한번 직접 복원해보지 않겠나?"라고 권유를 하셨어요. 그래서 흥미를 갖게 됐죠.

쉽지는 않은 작업이었죠. 사철제련과 관련된 문헌과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를 뛰어다녔어요. 또한 좋은 사철을 찾기 위해 정말 전국을 샅샅이 뒤졌어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사철제련을 복원시켜 전통 도검을 그대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 특허도 취득하게 됐습니다.


가장 뛰어난 칼을 만들었던 나라인데, 현재는 왜 도검이 발전하지 못하나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정말 철 강국이었어요. 가야와 신라는 최고의 철기를 만드는 나라였죠. 일본에도 사철제련으로 칼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고요. 어찌 보면 '일본도'도 한국 덕분에 탄생했다고 할 수 있죠. 현재도 포항제철소가 세계 최고의 제철소가 되었잖아요. 정말 우리 민족은 철의 DNA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점점 조선 말기부터 국방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사철제련은 맥이 끊기고 말았어요. 특히 조선은 국가가 철저히 무기를 관리했어요. 군인에게 필요할때만 무기를 나눠주고 다시 반납한거죠. 반면 일본은 사무라이가 스스로 칼을 소지했고, 민간 차원에서도 칼 시장이 활성화됐어요. 직접 정부 차원에서도 칼만드는 장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비교가 너무 되죠.
 

제작과정
사철제련에 의한 전통 도검 복원 작업
사철로 만든 대도
사철로 만든 대도

현재도 우리나라만큼 이렇게 도검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는 나라는 드물어요. 조선이 망한 후에도 변한 것은 없어요. 일본인들도 총포도검법 등으로 철저히 억압했고, 그게 오늘까지 이어진 거죠. 이렇게 규제를 하는데 도검 문화와 시장이 발달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게 안타까워요.

스페인에서는 칼 문화가 발달해서 장식칼과 중세검 등을 수집하는 경우도 많고 직접 칼을 만들어보는 아마추어도 많아요. 미국 역시 수렵문화가 발달해서 칼이 익숙하죠. 스위스는 빅토리녹스 등 세계적인 칼 브랜드가 있죠. 그리고 일본도를 보세요. 일본도는 일본 고유의 문화콘텐츠이자 세계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계인들이 앞다퉈 고가에 사가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칼에 대한 규제를 치안과 연관시키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먹고 사람을 해치게 하려면 식칼로도 충분해요. 지금 규제되는 15cm 이상의 장검 소지를 허용한다고 범죄가 늘어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무슨 사고가 나면 문제를 칼로 돌립니다.
 

일본도
일본도

현재 기술 계승 과정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지금까지 10명 정도의 제자가 거쳐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어요. 사철제련 방식은 굉장히 일이 고되거든요. 시간도 많이 걸리죠 .저는 이 방식으로 만드는 전통 도검을 주문받으면 4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라도 많이 벌면 좋지 그렇지도 않아요. 사철제련으로 만든 전통 도검을 굳이 찾는 사람이 없죠. 그러니 당연히 배우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저도 점점 갤러리 운영이 힘들어요. 아들이 제 일을 돕고는 있지만 제가 굳이 제 업을 물려줄 생각은 없어요. 저도 알거든요. 이걸로 먹고살기는 힘들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굳이 사철제련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죠 힘들고 수익도 안되는데 저는 왜 이 방법으로 계속 칼을 만들까요? 몇몇 사람들은 제철소에서 첨단 기술로 만든 '특수강'이 훨씬 뛰어난데, 도대체 왜 굳이 그렇게 직접 밖을 돌아다니며 직접 원료를 채취해서 힘들게 칼을 만드냐고 해요. 실제로 수많은 다른 전통도검 장인들조차도 저처럼 안 하죠.

맞아요. 당연히 전통 방법이 현대의 제철 기술을 따라올 수 없죠. 근데 그건 아셔야 해요. 몇몇 사람들은 자꾸 현대의 잣대로 과거를 평가하는데, 당시 기준에서 사철제련으로 만든 칼은 최고로 강했어요. 마찬가지로 일본도가 사실 약한 칼이라고 깎아내리는 분도 있는데 당시 조선군과 중국군은 일본도의 강력함에 맥을 못 추었어요.

옛 문화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다고 무조건 버릴 수 있나요? 문화를 경제성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사철제련을 복원했다는 무슨 자부심이나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사철제련 방법으로 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계속 즐기고 있어요.
 

ㅇㅇ
전통 도검들
서양의 무기들
서양의 무기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사철제련의 맥이 끊길텐데, 국가의 지원은 없었나요

2015년에 제가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해 심사를 봤는데 두 가지 이유로 탈락하고 말았어요. 첫 번째는 제가 어떤 계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다른 무형문화재 장인은 대를 이어가며 보존 계승하고 있는데 저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전승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는 그때 문화재청과 정부 관계자들이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저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다시 끊어지겠죠. 그렇지만 이제는 뭐 아쉽지도 않습니다. 체념한 거죠.

저는 75살까지만 칼을 만들고 깔끔하게 은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7년 정도 남았네요. 갤러리 운영 역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철강괴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한정욱 관장
사철강괴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한정욱 관장

한정욱 관장의 갤러리 운영과 칼 제작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한때는 불법무기판매죄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조폭과 연계되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지금까지도 돌고 있다.

험난한 노력 속에서 무일푼으로 사철제련 방법을 복원하고 특허까지 취득했으나, 국가에서는 도검 제작과 계승에 무관심하다. 이웃 일본은 국가의 지원 하에 수백 명의 장인이 일본도를 만들고 있으며 그 일본도가 세계에서 고가로 팔려나가고 있다. 반면 한때 최고의 칼을 만들었고 일본에도 기술을 전수해준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에서 전통 도검을 만드는 장인은 전국에서 열몇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마저도 전부 고령이다. 특히 전통 방식인 사철제련으로 완벽히 재현한 칼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이지 어쩔 수 있겠냐'는 말에 본 기자는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얼마나 그동안 수많은 노력과 실패가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그 체념과 달관이 이해가 간다. 그렇기에 그의 미소 속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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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하라 2020-03-19 12:58:26
정말 안타깝습니다. 문화재청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일본에 가서 느낀점은 일본이란 나라는 자국 문화를 정말 소중히 하고 아끼고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가 더 뛰어난데 왜 우리는 우리 문화를 홀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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