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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의 모든 것 ①] 남자의 로망, 멋진 '도검(刀劍)'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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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의 모든 것 ①] 남자의 로망, 멋진 '도검(刀劍)'에 대해서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4.0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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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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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남자들이라면 어린 시절, 검을 든 전사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게임에서 멋진 소드 아이템으로 캐릭터를 꾸며봤을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도 무협 소설을 즐겨읽고, 교과서에 칼 그림으로 낙서하던가, 혹은 아이들과 밖에서 칼싸움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도검(刀劍)은 이렇듯 냉병기 중에서는 가장 멋진 무기이다. 도검의 종류도 다양하고, 도검을 다루는 여러 무술과 유파도 여러 가지이다. 무협소설에서도 도검은 영웅을 상징하는 무기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실제로도 왕과 지휘관들은 다른 일개 사병보다 훨씬 화려하고 멋진 도검을 지니면서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냈다.

삼국지연의의 관우가 사용한 '청룡언월도', 영국 아서왕의 '엑스칼리버', 월나라 왕의 '월왕구천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구사나기의 검',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마검인 '다인 슬레이프' 등 신화·소설 혹은 실제 역사에서 상징적인 도검이 등장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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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을 숨긴 칼집과 코등이, 칼자루 / pixabay

상징으로 활약한 도검의 특징과 구분

그런데 생각보다 도검은 대규모 전투에서 그렇게 많이 사용되지 못했다. 아주 일부 근접전 양상을 제외하면 활과 창 등 사거리가 긴 병기가 전투에서 더 유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도검은 제작 과정에서도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소비되고 다루는 법도 어렵다. 그래서 도검은 그 멋에 더 집중하여 의례용 또는 상징으로 많이 활약했다.

도검(刀劍)이란 단어는 베기 위해 한쪽에 칼날이 있는 도(외날)와 가운데에 쌍날이 있어 찌르기에 좋은 검(양날)을 합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도와 검은 명확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칼날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비율에 따라 혼합되고 좀 더 적합한 부분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양날검이 더 유용해서 많이 쓰였다.

도검은 크게 '칼날'과 '칼집', '칼자루'로 구성된다. 여기서 더 세분화하면 칼날 끝인 슴베부터 시작해서 칼날로 쭉 이어져오며, 칼날과 자루의 경계인 넓직한 코등이가 있다.

도검은 전투용과 수렵용·무속용·호신용·의례용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길이에 따라 장검과 단검으로도 구분하지만, 길이와 모양 그리고 휜 정도 등 아주 다양한 요소에 따라 많은 도검이 나온다. 또한 단순한 무기의 기능을 넘어 색을 칠하거나 보석을 박거나 혹은 글귀, 문양 등을 새겨 장식하면서 상징 또는 예술품으로도 취급된다.
 

반달돌칼 / 국립민속박물관
반달돌칼 / 국립민속박물관
월왕구천검 / 위키피디아, Siyuwj
월왕구천검 / 위키피디아, Siyuwj

석기와 청동, 철기까지 이어져온 도검

가장 최초로 만들어진 칼은 돌을 날카롭게 다듬어 그대로 쓰거나 나무를 자루로 끼워 사용한 석기시대의 돌칼 혹은 석검이었을 것이다. 이 칼은 무기나 연장 등 다양한 역할을 한 인류 최초의 몇 안 되는 도구이다. 돌칼은 사실 칼이라고 하기도 힘든 조악한 형태였지만 석검은 돌을 갈아 자루와 칼날을 만들어 그나마 형태를 갖추었다.

청동기시대에 탄생한 청동 검은 현대의 강철검에 비교하면 그 내구성은 비교가 되지 않으나, 석기에 비하면 그 위력은 훨씬 증가하였고 살상용으로 충분했기에 본격적으로 전쟁 무기로 사용되었다. 1967년 중국 호북성에서 출토된 '월왕구천검'도 구리와 주석으로 만든 청동검인데, 월나라 왕인 구천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철기시대에 들어서 점차 철을 사용하게 되지만, 철 제련은 청동보다 더 고온을 필요로 하기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더 까다로운 일이었다. 초창기에는 이렇듯 제련 기술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합금 제련을 알지 못했기에, 순수한 철광석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렇기에 철광석의 품질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고, 운이 나쁘면 청동과 비슷한 수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철광석의 생산량은 청동보다 월등하였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더 강력한 철기가 나왔다. 결국 이 철기로 칼, 창, 화살 등 무기를 제작하였고 곧 철기 무기가 청동을 대체하게 된다.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변천 과정은 시기와 형태의 차이가 있지만 세계의 보편적인 발전 형태였다.
 

쇠를 두들기는 다놎 / pixabay
쇠를 두들기는 단조 / pixabay

철기로 도검 제작하는 방법

청동 검은 주로 녹인 구리와 주석을 틀에 붓고 굳히는 주조를 사용했다. 반면에 철은 가열하고 두들겨서 모양을 만드는 단조와 여러 차례의 열처리를 사용한다. 이 방법은 단순히 금속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닌 탄소를 조절하면서 금속의 강도와 경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이후에는 날을 가는 그라인딩으로 마무리한다.

자연 상태에서 나오는 철광석은 불순물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제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처음에 주로 사용된 방법은 돌과 흙으로 굴뚝과 가마를 만들고, 아래에 풀무 등으로 바람을 넣어주며 숯 등의 연료로 내부를 가열시킨다. 그리고 숯과 철광석을 위에서 넣어주고, 불완전 연소를 거치면 일산화탄소가 내뿜어져 나와 철광석의 순도가 올라간다. 그리고 이를 꺼내서 두드리는 단조와 접고 꼬는 접쇠(patten welding) 방법으로 가공한다.

이후, 1000도 이상의 고온을 낼 수 있는 기술이 생기고, 더 두꺼운 벽돌로 쌓고 열풍로와 예열 장치 등을 갖춘 용광로가 생겨나면서 더욱 강한 철을 더 빠르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철을 고온에 달구고 단조와 4단계 이상의 열처리 과정(노멀라이징·담금질·템퍼링·아닐링)을 거치면서 탄소 함유량을 조절해낸 강철은 강도가 가장 뛰어났다.

한편 접쇠 방법은 강도가 제각각인 쇠를 같이 꼬고 접으면서 칼을 만드는 것인데, 단일한 강도의 쇠를 만들 수 없어서 사용한 방법이다. 이것은 마치 종이를 계속 접으면 더 찢기 힘든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이후에 균일한 강철이 발명되면서 굳이 접쇠를 하지 않고 단조만으로도 더 쉽고도 강한 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철가루가 섞인 흙 / pixabay
철가루가 섞인 흙 / pixabay

도검을 만드는 전통 제작 방법, 사철 제련에 대해

칼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쇠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일반적으로는 철광석 등을 채취하여 이를 추출 및 가공하는 제철(製鐵)을 흔하게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 전통적으로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은 모래 속에서 철을 채취하여 사용하는 사철(沙鐵) 이었다.

모래 속에는 일정량의 철 가루가 함유되어 있다. 이 철 가루는 화성암에 함유된 자철석이 풍화 작용에 의해 모래에 함께 섞인 것이다. 바닷가, 호숫가, 하천 등에 층을 이루어 퇴적된다. 철 종류는 주로 자철석이지만 적철석, 갈철석, 석영 등도 있다. 철가루로 이뤄진 사철 광산도 있으나, 많지는 않으며 일반 모래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래에 자석을 대면 철가루가 들러붙는다고 한다.

사철 기술은 예로부터 철기를 만드는 데에 가장 많이 쓰인 기술이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세종대왕 대에 석철광(철광석) 산지는 15개 읍이었으나, 사철광 산지는 21개 읍이었다고 전한다. 일본 역시 사철 제련을 통해 칼을 만들었는데, 중국, 한반도에서 사철 기술을 전해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백제가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유명한 칠지도 역시 사철로 만든 것이었다.

사철 기술을 전수받은 일본은 사철을 가열해서 덩어리지게 만들고 이를 단조(두들김)해서 칼을 만들었다. 사철 제련은 불순물을 분리하는 과정이 철광석 제련보다 더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였다. 힘든 방법이었지만, 사철의 불순물인 티타늄과 바나듐은 그만큼 녹이 덜 쓸게 해주는 기능을 하여 강철이 나오기 이전에는 가장 좋은 기술이었다.
 

'백옥 금은장 사각첨자도'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종군作
'백옥 금은장 사각첨자도'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박종군作)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명맥을 이어나가는 현대의 도검

17세기 이후부터 개인 화기가 발전하면서 전투에서도 화기의 비율이 커지기 시작하였고, 다른 냉병기도 마찬가지였지만 도검 역시 쇠퇴를 맞이하게 된다. 오늘날 현대전에서 유일하게 쓰이는 냉병기는 '총검'이다. 총 앞부분에 단검보다 조금 더 긴 칼인 대검을 달아 근접전에서 찌르는 용도로 쓰인다.

그런데 특정한 어떤 도검은 다른 활, 창과는 달리 여전히 현대에도 많이 사용된다. 바로 짧은 단도인데, 이미 이 단도는 고려, 조선시대에도 개인이 호신용으로 소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창과 긴 장검은 반란의 위협으로 규제해야만 했으나 호신용, 수렵용 칼뿐만 아니라 조각칼, 과일칼, 식칼 등 일상생활에서도 쓰이는 칼마저 규제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쓰인 단검을 '장도'라고 하는데, 휴대와 사용이 간편하여 널리 사용됐다. 시대가 흐를수록 장도도 더 좋은 재료와 다양한 장식을 붙여 화려하게 만들어, 신분을 과시하는 용도가 되어갔다. 이 장도는 전문 장인인 장도장이 직접 제작하여 국가에 납품하거나 민간에도 판매했다.

오늘날 단검은 법적으로 길이 15cm 미만을 소지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은 허가가 필요하다. 주머니칼(잭나이프), 발리송, 맥가이버 칼 등 다양한 형태의 나이프가 제작되고 있으며 이들 칼은 이제는 대부분 공장에서 기계를 통해 대량생산된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평범한 일상의 칼이 아닌 희소성이 있으며, 아름다운 장식과 위엄이 돋보이는 도검에 대해 관심을 갖는 매니아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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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단검들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현대에도 다시금 주목받는 전통도검

특히 전통 도검은 전문 장인이 직접 일일이 수공예로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과 단순한 무기로서의 기능을 넘어 지배계급 등이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 등으로 쓰였기에, 화려하고 멋있는 것이 많다. 도검매니아라면 전통적인 도검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느새인가 사철 제련 기술의 명맥이 끊기고 말았으며, 이 기술은 현재 일본도만이 계승해나가고 있다. 오늘날 전통 도검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대부분은 현대적인 제련 방법으로 만든 것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검을 전통 방식을 사용해서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통도검제작소를 운영하는 홍석현 환도장 및 인사동에 나이프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한정욱 관장은 특히 오랜 노력 끝에 전통 사철제련 방법을 복원하여 옛 도검을 만들고 있다. 비록 비용이 많이 들고 여러모로 고된 작업이지만, 오랜 전통 방법을 복원시켜 우수했던 우리만의 고유한 도검을 구현해내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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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갤러리에 전시된 전통 도검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특히 한정욱 관장은 2009년 사철을 활용한 도검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10-2009-0088002)를 출원하기도 했다. 한정욱 관장은 출원한 제조 방법에 대해 "사철을 통해 병기를 제조하는 철기문화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 중 가장 중요한 문화이다. 특히 일본이 이룩한 철기문화인 일본도 역시 이미 우리가 전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정욱 관장의 도검 제작법은 단접 과정을 통해 사철의 불순물을 완벽히 제거하고 담금질할 때에는 진흙을 도포하여 칼의 변형을 막는다. 아울러 짚, 소나무 등 고유의 재료를 사용하여 특별히 제작한 제련로 등에서 만들어졌는데, 다른 어떤 기존 제작법과 비교해도 부식에 더 강하고 강도가 좋은 도검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장인들이 피나는 노력 끝에 단절된 방식을 복원해낸 것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별다른 지원이 없는 것은 굉장히 아쉬운 일이다. 전통 문화 복원과 계승에 기여한 그 공로가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 이상 도검은 무기로 사용될 수 없으나, 도검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현대인을 사로잡는다. 또한 전통 도검 제작 방법은 분명 우수했던 우리의 문화였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만이 우리가 전수해 준 기술을 잘 간직하고 있다. 문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옛날 문화의 보존과 전승의 탄탄한 기반 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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