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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의 모든 것 ②] 한국에도 고유한 명검이 있다? '조선 환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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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의 모든 것 ②] 한국에도 고유한 명검이 있다? '조선 환도'에 대해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4.10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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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일본도, 서양에는 롱소드가 있다면 한국에도 조선 환도가 있다!
고유한 모양과 매는 방법을 갖춘 조선 환도··· 우리 문화 콘텐츠로 잠재력있어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각국에서 다양하게 발전한 도검

세계의 문화가 다양한 것처럼, 도검도 나라마다 종류가 다양하다. 도검은 전장의 지휘관, 높은 계층 등에서 위엄을 드러내는 용도, 의장용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특히 지방분권 체제가 자리 잡았던 일본 혹은 중세 유럽에서는 사무라이와 기사 같은 특정 전사 계층이 자신을 표현하는 개인 무기로서, 도검을 소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도는 세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칼이다. 일본도에는 일본의 고유한 제작법과 형태, 그리고 오랜 역사가 담겨있다. 일본도는 일본 사무라이의 강인한 정신을 상징하며, 어떤 것도 잘라버린다는 예리함과 강인함이 유명하다 하지만 칼 자체의 독특한 아름다움도 매력을 끌어 세계의 칼 마니아들이 필수적으로 수집한다.

또한 일본도 외에도 네팔 구르카족의 단검인 '쿠크리', 유럽 기사들이 사용한 '사브르', '롱소드', 중동 지역의 휘어진 검인 '시미터', '샴쉬르' 등 각 지역에는 고유의 전통 칼들이 존재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칼은 없을까 궁금하다. 우리나라 역시 생각해보면 뛰어난 칼인 칠지도를 일본에 전해주는 등, 예로부터 우수한 도검 제작 기술을 가진 나라가 아니었는가.

사실 우리는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칼보다는 활쏘기를 중시했다. 중앙집권체제가 강했던 역사와 한반도 지리의 특성상, 공성전과 수성전 형태의 전투가 많았기 때문에 근접전에 쓰이는 도검은 활보다는 등한시됐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덕목의 소양으로 일상적으로 활쏘기가 행해졌지만, 평화의 기간이 지속되면서 도검 사용은 더욱 쇠퇴했다. 
 

한국 도검의 구조
한국 도검의 구조 /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환도의 칼집, 칼날, 코등이, 칼자루 / 국립문화재연구소
칼집 위에 있는 잠금장치인 비녀장은 칼집을 넣을때, 코등이의 구멍에 걸려 고정된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대표적인 도검, '조선 환도'란 무엇인가

하지만 우리를 대표할만한 고유한 도검은 분명 있었다. 그것을 꼽자면 바로 '조선 환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환도는 조선시대 당시에는 모든 국내외 전투용 장검을 환도라고 뭉뚱그려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들어진 환도는 오랜 역사에 걸쳐 독자적인 제작 방법을 발전시켜 왔으며, 고유한 칼로 자리 잡게 됐다.

환도(環刀)는 칼집이 있고 여기에 고리와 끈을 드리워 칼자루가 등 뒤로 향하도록 허리춤에 찼다. 그래서 요도(腰刀) 또는 패도(佩刀)라고도 부른다. 이 패용 방식을 띠돈매기라고 하는데, 띠돈은 칼집에 연결된 고리가 허리띠에 연결된 것이다. 이는 일본도의 차는 방법과 다르다. 

보통 사극에서는 그냥 손으로 들고 다니거나, 칼자루가 앞을 향하게 허리띠에 직접 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다. 칼을 뽑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띠돈 고리는 360도 자유롭게 회전이 가능해 쉽게 뽑을 수 있다. 물론 일본도와 달리 양손으로 뽑아야만 했으나 이 방식은 활동이 편리하고 특히 말을 타는 기병이 효율적으로 칼을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환도는 주로 베는 용도인 외날을 가진 곡도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가볍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며 일본도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휜 각은 일본도보다는 더 곧았고 길이도 좀 더 짧았다. 칼날의 모양은 다양했으나, 일본도같은 육각 구조보다는 경사면을 갈은 배형 모양이 많다.

또한 일본도는 칼을 칼자루에 고정하기 위해 대나무 못을 박는 메쿠기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와 달리 우리 환도는 '비녀장'이라는 잠금장치를 사용했다. 칼을 넣을 때, 칼 코등의 양쪽에 구멍이 뚫려 있어, 칼집에 달린 긴 막대기로 고정이 된다. 또한 조선 중기부터는 내부에 장착한 버튼 클립식을 사용해 자동으로 맞물리게 했다.

 

사극에서 고증된 띠돈매기 /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캡처
사극에서 고증된 띠돈매기 /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캡처
매는 방법을 재현한 병사들 / 위키피디아
매는 방법을 재현한 병사들 / 위키피디아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환도의 역사와 변천

환도 이전 삼국시대에서는 환두대도(環頭大刀)가 널리 쓰였다. 환두대도는 고리자루큰칼이라고도 불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삼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당시 고대 동아시아에서 흔히 사용된 무기이다. 환두대도는 찌르는 형태에 가깝고, 손잡이 끝부분이 둥근 형태이다. 고리와 끈이 달린 환도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환도라는 단어는 '고려사'에서 충렬왕 3년인 1277년, 환도 1천 자루를 만들게 했다는 기록으로 처음 언급된다. 아마 북방민족 사이에 유행하던 외날 곡도가 고려로 처음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초기의 조선도는 조선 5대왕 문종 대에 표준화되었다. 문종실록에 따르면 환도 규격이 보병용은 전체 73.63cm(칼날 53.63cm)이며, 기병용은 65.6cm(49.6cm)이라고 했다. 이는 일본도보다 훨씬 짧은 편이다. 이렇듯 환도가 짧고 띠돈매기로 차는 형태는 활쏘기에 방해받지 않기 위함이며, 전투에서 활쏘기에 비해 부수적으로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일본도에 영향을 받아 환도가 다시 길어지게 된다. 전쟁 당시에 조선군은 일본군의 능숙한 검술에 많은 피해를 보았고, 체계적인 검술과 도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이를 깊게 연구하였다.

특히 1790년인 정조 14년에 편찬한 공식 무예 훈련 교범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따르면 조선검의 크기는 칼날 3척 3촌, 칼자루는 길이 1척, 무게 1근 8냥이라고 기록되었다. 이 책에는 명나라의 제독검과 쌍수도, 일본의 왜검(일본도) 등을 다루는 방법도 함께 수록되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군대는 화승총의 비율이 높아져, 다시 환도는 짧아졌고 의장용으로 용도가 바뀌어간다.
 

한쪽에만 날을 세웠고, 등쪽으로 약간 휘었으며 칼자루는 어피로 장식했다. 위아래 유제테를 두르고, 칼자루 두군데에 못을 박아 슴베를 고정했다. 테 아래로 두개고리 유제장식 부착, 칼날에는 광사두우(光射斗牛) 음각 / 국립민속박물관
한쪽에만 날을 세웠고, 등쪽으로 약간 휘었으며 칼자루는 어피로 장식했다. 위아래 유제테를 두르고, 칼자루 두군데에 못을 박아 슴베를 고정했다. 테 아래로 두개고리 유제장식 부착, 칼날에는 광사두우(光射斗牛) 음각 / 국립민속박물관
전체적으로 어피를 씌우고 칼집 위아래 유제테 鍮製 둘름 아랫부분 끈을 달게 2개 고리장식 타원형 칼코에 운문 투각 잠금장치 부착 자루에는 매듭술을 꿸 수 있는 구멍 / 국립민속박물관
전체적으로 어피를 씌우고, 칼집 위아래 유제테를 둘렀다. 아랫부분 끈을 다는 2개 고리장식와 타원형 칼코에 운문 투각 잠금장치를 부착, 자루에는 매듭술을 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 국립민속박물관

환도의 종류와 제작에 대해

환도의 종류는 일반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평범한 환도부터, 12년마다 제작하여 순금을 새기고 왕이 지녔던 칼인 '사인검(四寅劍)', 칠성 문양이 새겨졌으며, 궁궐 무관들이 차고 다닌 '칠성검(七星劍)', 임금을 호위하는 무사들이 찼으며, 백은으로 장식하고 주홍색으로 칠한 '별운검(別雲劍)' 등 다양하다.

세종실록에서 환도는 칼집은 어피(상어가죽)로 싸고, 주황색 또는 검은 칠을 하며, 두석 장식은 백은·황동을 사용하고 붉은 끈과 술을 드리우며, 띠는 사슴 가죽을 사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환도를 만드는 장인은 환도장(環刀匠)으로 불렸다. 병기 제조를 맡은 관청인 군기감에 소속되어 칼을 제작했다.

칼날은 주로 두들기는 단조 방법, 중앙에 뽕쇠라는 약한 쇠를 넣고 겉을 강한 쇠인 시우쇠를 둘러 만드는 단접으로 만들었다. 또한 칼집은 두 개의 나무로 모양을 만들고, 풀로 붙인다. 그다음에는 상어가죽, 한지와 삼베 등을 풀에 발라 감쌌고, 옻칠을 하였다. 또한 조각을 통해 칼집과 코등에 문양을 새기기도 한다.

오늘날 조선환도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62호인 홍석현 환도장이 계승해나가고 있다. 홍석현 환도장은 또한 한국전통도검제작소를 운영하며, 꾸준히 전통도검을 연구·제작 및 판매하며 계승해나가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이 주관하여, 우수한 우리 공예품을 뽑는 공예대전 등에도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여, 조선 환도를 널리 알리고 있다.

조선 환도는 제작법과 매는 방법, 그 심미적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이 어느 나라의 검과도 구분되는 우리 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도검이다. 하지만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도 조선 환도를 아는 경우가 많지 않다. 먼저 사극 등의 콘텐츠에서도 조선 환도에 대한 제대로 된 고증이 필요하다. 다양하고 멋진 우리 조선 환도를 등장시켜,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분명 '조선 환도'의 잠재력을 잘 활용한다면, 다른 일본도나 롱소드 등의 유명한 도검처럼 우리 만의 독특한 문화 콘텐츠로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석현 장인의 작품 / 문화재청
홍석현 장인의 작품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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