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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④] 원근법의 창시자, 마사치오와 우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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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④] 원근법의 창시자, 마사치오와 우첼로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15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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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회화의 기본이자 그림의 사실주의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원근법•••
르네상스의 두 예술가에 의해 창안,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도 감동시켜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미술을 잘 모른다 해도, 원근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근법은 눈에 보이는 3차원 세계의 거리감을 2차원의 그림에 그대로 반영해서 그리는 것으로 서양 회화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며, 동서고금 존재했다. 하지만 유럽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몇몇 혁신적인 화가들에 의해 체계화됐다.

원근법을 창안한 화가라면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1397~1475)와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를 들 수 있겠다. 이들이 시작한 원근법은 후대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도 이들 선배들의 작품에 감탄하여 적극적으로 원근법을 활용했고, 수많은 화가들도 동참했다.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 예수 위에는 성부 하나님, 양 옆에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 그리고 바깥에는 그림의 주문자인 도메니코 렌지와 그의 아내이다 / 위키피디아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 예수 위에는 성부 하나님, 양 옆에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 그리고 바깥에는 그림의 주문자인 도메니코 렌지와 그의 아내이다 / 위키피디아

원근법을 처음 회화에 적용한 마사치오

원근법은 멀리 있는 사물은 더 작아 보인다는 간단한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간단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처음 찾아내고 나아가 실제 작품에 활용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사실 원근법의 원리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앞서 소개한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이다. 그리고 마사치오는 이후에 이것을 회화에 적용했다.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The Trinity)'는 1428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벽화로 그려졌다.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안료를 덧칠하는 프레스코화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원근법을 처음 활용한 것으로 그동안 전례가 없었던 놀라운 회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마사치오는 그림을 수학적으로 체계화했다. 예수와 마리아를 내려다보는 성부의 머리 위에 모든 선들은 하나의 소실점으로 위치한다. 또한 명암과 색조의 효과를 활용하여 각 층위의 공간의 깊이가 달리 느껴진다. 덕분에 벽화는 마치 하나의 3차원적인 예배당 공간처럼 보인다. 이 방법을 투시 또는 선 원근법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작품이 너무 입체적이어서 벽에 구멍을 내서 만든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마사치오는 수많은 장인 조합과 공방에서 활동하며 많은 장식 작업을 맡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 삼위일체를 만든 해에 28살이라는 나이에 사망했다. 누군가 이 어린 천재를 시샘해 독살했다는 소문도 있다.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업적을 남겼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산 로마노의 전투 첫번째 장면 / 위키피디아
산 로마노의 전투 (피렌체군을 이끄는 니콜로 다 톨렌티노) / 위키피디아
산 로마노 전투 (미셸레토 다 코티뇰라의 반격) / 위키피디아
산 로마노의 전투 (미셸레토 다 코티뇰라의 반격) / 위키피디아
베르나르디노 델라 차르다에 대한 승리
산 로마노의 전투 (베르나르디노 델라 차르다에 대한 승리) / 위키피디아

원근법에 미쳐버린 화가, 우첼로

동시대에 살았던 파울로 우첼로는 마사치오의 원근법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산 로마노의 전투'는 원근법과 단축법이 곁들여진 작품이다. 그가 즐겨 쓴 단축법은 쓰러진 병사들의 시신을 정면이 아닌 비스듬하게 바라보게 하는 방법으로 현장감을 더했다.

작품 곳곳에는 은박을 얇게 덧입혀서 인공적으로 반짝이는 효과를 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백미는 독특한 원근법이다. 작품을 빽빽이 메운 병사와 말, 사물들이 각기 다른 각도와 크기, 길이를 가지면서 원근법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는 철저한 수학적 계산과 기하학적 표현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은 3부작의 거대한 규모였기 때문에 1435년에서 1440년까지 장기간 동안 그려졌다. 피렌체를 지배하는 코시모 데 메디치는 자신의 친구인 톨렌티노를 찬양하고 피렌체군의 승리를 찬양하기 위해 그림을 의뢰했다. 우첼로가 피렌체의 제일 가는 가문의 주문을 받은 것을 보면, 우첼로도 당시 피렌체에서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 / 위키피디아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 / 위키피디아

우첼로는 로렌초 기베르티의 공방에서 조각과 그림을 배웠고 1415년에 독립했다. 이때 배운 금속세공 기술 덕분에 그의 작품에는 단순한 회화 작품만이 아닌 공예적인 요소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한동안 우첼로는 베네치아에서 모자이크공으로 활동했고, 1425년에는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 제작에도 참가하기도 했다.

우첼로는 수학자 안토니오 마네티에게 기하학과 투시도법을 배우면서 원근법 공부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첼로의 원근법 사랑은 집착 수준에 가까웠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 기하학적으로는 뛰어나지만, 굉장히 인위적인 느낌이 난다. 원근법에 집착한 나머지 색채와 조형적인 아름다움, 전체적인 그림의 자연스러움과 통일감을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우첼로는 밤낮으로 투시도법 연구에 매달렸고 식사도 빼먹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다른 화가들의 사실적인 그림과는 너무 달랐고, 당시에 너무 비현실적이라면서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만이 그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고 원근법을 연구하게 됐다. 역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에 영향을 준 원근법의 대가들

우첼로의 비현실적인 표현 방법은 오히려 후대에 재평가 받았다. 400년 후에는 우첼로의 영향을 받아 입체파와 초현실주의가 탄생했으며,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등 근·현대 회화 거장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이렇게 보면 우첼로의 예술은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수 있겠다.
 

'낙원에서의 추방', 1426~1427년 / 위키피디아
'낙원에서의 추방', 1426~1427년 / 위키피디아

또한 마사치오는 70년 이후 태어난 미켈란젤로에게 영향을 줬다. 고집불통의 성격으로 알려진 미켈란젤로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 마사치오였다고 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를 표현한 마사치오의 '낙원에서의 추방'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데에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르네상스는 몇몇 예술가들만이 이끌어간 것이 아니었다. 또한 원근법을 비롯한 수많은 발명도 갑자기 어느 한 명한테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몇몇 천재가 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천재들을 낳는 것은 아닐까?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변혁이 수많은 천재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한 시대의 발명과 천재들은 계속해서 후대에도 영감을 전해준다. 그리고 후대의 또다른 천재들은 그 업적을 이어가고 계속 발전시키도록 한다. 500년 전의 이러한 발견이 이제는 당연하게 쓰이는 오늘, 지금도 수많은 후배 화가들이 마사치오와 우첼로의 뒤를 이어 계속해서 더 나은 예술을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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