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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⑥] 그림 그리는 성직자, 프라 안젤리코••• 종교적이지만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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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⑥] 그림 그리는 성직자, 프라 안젤리코••• 종교적이지만 인간적인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29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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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인문 양식의 융합을 보여준 종교화들
경건한 수도사이자 가장 뛰어난 화가였던 안젤리코의 예술에 대해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중세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사람들의 인상이 창백해 보이고 하나같이 무표정이다. 그리고 평면적이고 딱딱한 인상을 준다. 당시 시대의 그림은 대부분 종교적인 의미와 상징을 담거나 혹은 왕의 권위 등을 표현했다. 그렇기에 장엄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젤리코의 예술, 르네상스와 중세의 융합

르네상스 시대에는 좀 더 인간적이고 밝은 예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최근 학계에서는 르네상스와 중세의 명확한 구분을 지양하고 있다. 중세라고 무조건 경직되고 억압된 시대였던 것도 아니고 고대 문화를 무시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르네상스도 기독교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대가 아니었다. 마녀사냥, 종교 전쟁 등은 르네상스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됐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이 시대에 세계를 보는 눈이 넓어지고 여러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아주 수많은 천재 예술가가 이 수백 년 사이에 나타났고 현대의 우리에게까지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 흥미롭다. 이들은 반교회적인 인물들도 있었지만, 기독교의 시각을 더 폭넓게 발전시킨 경우도 많았다. 종교의 권위가 이후에도 계속 유럽을 지배한 것을 보면 이들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나갔다.
 

프라 안젤리코의 초상화 / luca signorelli 作, 위키피디아
프라 안젤리코의 초상화 / 루카 시뇨렐리(1440~1450) 作, 위키피디아

종교는 장엄하고 성스러워야만 할까? 좀 더 인간적이고 온화할 수는 없을까? 르네상스에서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많이 사용했다. 그리스의 신들은 기독교의 신과는 달리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고 실수를 하고 감정이 있는 인간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에 적합한 주제였다.

하지만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의 그림은 기독교적이면서도 온화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안젤리코는 주로 가톨릭 종교화를 그렸지만 르네상스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권위적이고 딱딱한 종교화가 아닌 온화하고 인간적인 그림으로서 새로운 융합을 보여준 것이다.

다른 르네상스 예술가들과 달리 프라 안젤리코는 어릴 때부터 도미니코 수도원에 들어가 활동한 성직자였다. 안젤리코는 수도사로 생활하면서도, 화가로서 도제 교육을 받았고 성직자와 화가 두 가지의 직업을 갖게 됐다. 그리고 금세 그의 재능이 알려져 대형 제단화 등의 작품 제작을 의뢰받았다.
 

산 마르코 성당의 수태고지 / 위키피디아
산 마르코 성당의 수태고지 / 위키피디아

안젤리코가 남긴 작품과 예술 세계

안젤리코의 작품 중 그의 정수가 담긴 가장 대표작인 작품은 수태고지(Annunciation)이다. 수태고지란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가 성령의 아이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장면을 말한다. 기독교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기에 많은 화가들이 주제로 사용했다.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안젤리코는 약 15점의 수태고지를 그렸는데, 이 중에서도 산 마르코 수도원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메디치 가문의 명령으로 세워진 이 수도원에서 안젤리코는 1436년부터 1445년까지 9년 동안 다양한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안젤리코의 작품이 이곳에 워낙 많은 덕분에 오늘날에는 산 마르코 수도원이 프라 안젤리코 박물관으로 변경됐다.

안젤리코는 수태고지를 그리면서 원근법 등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더 사실적인 표현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학적인 분위기도 잃지 않았다. 수태고지의 푸른색 부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나는 최고급 광석인 청금석 안료로 만든 것이다. 안젤리코가 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마음껏 획기적인 기법을 사용한 것을 보면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도 영향을 줬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 위키피디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 위키피디아
코르토나 제단화 / 위키피디아
코르토나 제단화 / 위키피디아

이 시기,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그린 또 하나의 그림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작품을 보면 예수님 오른쪽 팔 밑의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있는데, 바로 안젤리코 자신이었다고 한다. 또한 1432년에서 1434년 사이 그려진 코르토나 제단화는 건축적인 원근법을 사용하여 더욱 세련되게 그려졌다.

1450년 완성한 '마돈나 델레 옴브레'도 그의 가장 멋진 프레스코화 중 하나이다. 그림자의 마돈나라는 뜻을 가진 이 작품은 권좌에 오른 성모와 아기 예수 및 당시 안젤리코 시대의 유명인이었던 8명 성인들의 대화를 묘사하고 있다. 작품은 황금빛 벽감과 인물의 금빛 광체를 효과적으로 명암 처리하여 조화를 이룬다.
 

마돈나 델레 옴브레 / 위키피디아
마돈나 델레 옴브레 / 위키피디아

종교를 불문하고 신앙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안젤리코의 그림

안젤리코 작품의 특징은 풍부한 색채와 사실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안젤리코는 마사치오의 원근법을 적극 사용했고, 이를 통해 입체감과 거리감, 공간감을 표현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이전 중세 미술의 인위적인 화려함이 아닌 더 풍부한 색채를 통한 자연스러운 묘사를 중시했다. 이 같은 그의 화풍은 40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된다.

안젤리코의 표현은 절대불변의 권위와 웅장함보다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으로서 신적 존재를 온화하고 너그러운 존재로 표현했다. 종교에 인간성을 부여한 것이다. 중세의 고딕 전통과 르네상스 사실주의가 융합된 그의 그림은 가톨릭과 신교도는 물론이며, 종교와 무관한 사람에게도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바사리의 책에 따르면 "이 헌신적인 수도사는 기도하기 전에는 붓을 들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릴 때는 언제나 볼에 눈물이 흘렀다"라고 나온다. 19세기 미술비평가인 존 러스킨도 그를 '화가가 아닌 영감을 받은 성인으로 불러야 한다'라고 했는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안젤리코의 작품은 이후 세속주의를 중시한 계몽 시대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19세기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고딕 미술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재평가되기 시작한다. 1920년에는 산 마르코 수도원이 이탈리아 정부 소유가 되면서 프라 안젤리코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1955년에는 안젤리코 사망 500주년을 맞아 바티칸과 산 마르코에서 전시가 열리는 등 많은 사람들이 안젤리코를 조명하게 된다.
 

니콜리나 예배당의 프레스코 벽화 (1447~1449) / 위키피디아
니콜리나 예배당의 프레스코 벽화 (1447~1449) / 위키피디아

모든 예술가의 보호자가 될만한 안젤리코의 정신

안젤리코의 삶은 신앙생활 혹은 병자를 돌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평생을 보냈다. 이와 같은 안젤리코의 경건한 품성을 높이 평가한 교황 유게니우스 4세가 그를 피렌체 대주교로 임명하려 했으나, 안젤리코는 중책을 맡을 능력이 안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안젤리코는 범죄를 저지르며 살았던 벤베누토 첼리니(앞으로 소개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고집이 강해 수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겪었던 미켈란젤로와는 180도 다른 인물이었다. 또한 다른 수많은 세속적인 르네상스 예술가들과 비교해도 가장 온화하고 신앙적인 예술가였다.

현대에 들어서도 안젤리코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1982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를 시복(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에게 복자 칭호를 허가하는 교황의 공식 선언)하고 모든 예술가, 특히 '화가의 보호자'로 선포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의 삶은 의외로 조용하고 지루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셀은 위대한 삶도 지루한 부분이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여야 행복해진다고 덧붙였다. 안젤리코 역시 한평생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지만, 경건한 신앙생활과 그림 작업으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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