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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⑦] 평생 짝사랑하던 여인을 그린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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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⑦] 평생 짝사랑하던 여인을 그린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8.05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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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탄생, 봄 등 유명한 보티첼리의 작품 속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한 여인
바로 보티첼리의 짝사랑이었던 시모네타, 요절했지만 한평생 보티첼리의 예술에 등장
비너스의 탄생 / 픽사베이
비너스의 탄생 / 픽사베이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비너스의 탄생'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인 비너스(아프로디테)의 탄생 장면을 다룬 회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그린 작가는 모를지라도 그림 자체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작가인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비너스의 탄생 이외에도 봄(Primavera), 수태고지, 성모와 아기 예수 등 수많은 유명 작품들을 남겼다.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바다에서 탄생한 비너스를 오른쪽 봄의 여신이 맞이하고 왼쪽에 있는 서풍의 신은 바람을 불어준다. 그런데 그림의 묘사는 무거운 종교화는 물론이고 다른 원근법과 해부학을 따르는 르네상스 그림과도 다르다. 보티첼리만의 자유롭고 독특한 윤곽선을 통해 우아한 아름다움과 관능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여인의 초상', 보티첼리가 그린 시모네타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이상적인 여인의 초상', 보티첼리가 그린 시모네타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비너스의 탄생'의 모델이자, 보티첼리의 짝사랑이었던 여인

원래 이 그림은 메디치 가문이 자신의 별장을 꾸미기 위해 의뢰한 것이다. 그런데 비너스의 모델이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바로 시모네타 베스푸치(Vespucci Simonetta, 1453~1476)였다. 이 여성은 보티첼리의 영원한 짝사랑이기도 했다.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가 평생을 사랑한 여자라니, 도대체 어떤 여성이었을까?

보티첼리는 이 여인을 만나고 한눈에 반했다. 시모네타는 이미 수많은 피렌체 남성들이 흠모하고 있을 정도로 인품과 미모를 두루 갖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렌체에서 제일 가는 권력가인 메디치 가문 인물인 줄리아노 메디치의 연인이었고, 베스푸치 가문에 시집을 갔다. 상당히 남자관계가 복잡했던 것 같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는 입장이었고, 설사 그렇지 않았더라도 메디치 눈밖에 날 정도의 힘은 없었다. 감히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모네타는 흔쾌히 보티첼리에게 그림 모델이 되어주었고 보티첼리는 자신의 작품에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모네타는 폐결핵으로 인해 고작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보티첼리는 이때 31살이었다. 보티첼리는 그녀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그림 속에 시모네타를 담아낸다. 한평생 그 짝사랑의 감정을 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성모와 아기 예수 및 여섯 성자들(1470~1472) / 위키피디아
성모와 아기 예수 및 여섯 성자들(1470~1472) / 위키피디아

파란만장했던 보티첼리의 생애

보티첼리의 원래 이름은 '알렉산드로 디 마리아노 디 반니 필리페피'이다. 산드로는 세례명을 줄인 말이고, 보티첼리는 '작은 술통'이라는 뜻이다. 보티첼리는 피렌체의 한 가죽공예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어려서는 금세공사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18세 때부터 프라 필립포 리피라는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다.

또한 보티첼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배출한 베로키오의 공방에서도 견습생으로 활동했다. 보티첼리는 여기서 만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둘은 견습생만으로는 생계를 잇기 힘들어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라는 식당을 차리기도 했다. 결국 실패했지만 두 거장은 여러 창의적인 요리를 시도했다고 한다.

보티첼리는 이후 1470년에 독립된 공방을 차린 장인으로 활동했다. 특히 그의 재능은 피렌체의 권력자인 메디치 가문의 눈에 들어와 다양한 신화와 종교를 주제로 한 초상화, 벽화 등의 작품 의뢰를 받았다. 당시 메디치 가문 덕분에 보티첼리는 시모네타와도 알고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1482년에는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초청으로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렸다.

하지만 보티첼리는 말년에 르네상스를 반대한 종교 광신자였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신봉하면서 조금씩 변했다. 1497년에는 사보나롤라가 주최한 '허영의 불꽃' 행사에 동참해 자신이 그렸던 누드화 및 이교도적(그리스 신화) 그림을 부끄럽다면서 모두 불태워 버린다. 이 당시 그린 그림은 점차 불안하고 우울하며 신비적인 경향을 보인다.

1504년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설치 장소를 심의하는 위원회에 친구 다빈치와 함께 출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에는 죽을 때까지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바사리의 기록에 따르면 질병에 시달려서 몸이 너무 쇠약해져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고 전해진다. 보티첼리는 죽음이 다다르자, 시모네타의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프리마베라(봄) / 위키피디아
프리마베라(봄) / 위키피디아

시모네타의 흔적이 드리워진 보티첼리의 작품들

비너스의 탄생 다음으로 유명한 그의 작품으로는 바로 '봄(Primavera)'이 있다. 이 그림은 1478년 메디치 가문의 주문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기존 사실주의와 원근법적 공간 구성에 편승하는 대신, 독특한 윤곽선과 미묘한 곡선, 온화한 리듬감을 주어 새로운 화풍을 창안했다.

꽃이 만발한 저녁놀이 깃든 숲속에 사랑의 신 에로스를 거느린 비너스가 가운데에 서있고 비너스를 중심으로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 수많은 미의 여신과 꽃의 여신들이 그려졌다. 이 그림의 비너스 역시 시모네타를 모델로 한 것이다. 보티첼리가 시모네타를 떠나보낸지 약 2년 후의 일이었다.
 

전쟁의 신 마르스(우리에게 아레스로 잘알려진)를 비너스가 사랑의 힘으로 잠재워 시모네타와 사랑의 힘을 찬양했다 / 위키피디아
전쟁의 신 마르스(우리에게 아레스로 잘 알려진)를 비너스(시모네타)가 사랑의 힘으로 잠재워 사랑의 힘을 찬양했다 / 위키피디아
코지모 메디치의 메달을 든 남자의 초상 / 위키피디아
코지모 메디치의 메달을 든 남자의 초상 / 위키피디아

1483년에는 역시 시모네타를 비너스로 등장시킨 '비너스와 마르스', 시모네타를 떠나보낸 지 10년 후인 1486년에는 최고의 역작, '비너스의 탄생'을 완성했다. 보티첼리 작품 중에서도 '봄'과 '비너스의 탄생', 이 두 작품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을 찾는 관광객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작품이자, 르네상스의 대표적 아이콘으로서 자리 잡았다.

보티첼리의 그림에는 시모네타의 흔적이 정말 많이 보인다. 물론 꼭 그런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지모 메디치의 메달을 든 남자의 초상(1475)'는 코지모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데치가 모델일 것으로 추정된다. 독특한 배경과 세부 묘사, 생생한 입체감이 특징이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유혹, 성모자상 등 종교화도 많이 그렸다.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함 / 위키피디아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함 / 위키피디아

1490년대의 작품은 기존 쾌활하고 밝은 분위기와 달리 점차 불안정하고 긴장감이 두드러졌다. 1495년 그린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함'은 강렬한 절망감이 인물의 표정과 몸짓, 신체의 곡선으로 생생히 전달된다. 이 작품을 주문한 사람들이 바로 사보나롤라를 추종하는 피아뇨니파라고 한다.

보티첼리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쩐지 다 무표정하다. 특히 시모네타가 그렇다. 그의 그림은 친구 다빈치, 그리고 다른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과 달리 여전히 중세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기존 중세적 그림과도 다르다. 오히려 보티첼리는 시모네타의 한결같은 표정을 통해 기독교와 구분되는 이상적 아름다움과 초월적 영원을 드러냈다.

현실에서는 짧게 살다 갔으나 짝사랑한 여인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로서 표현한 보티첼리, 짝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지만 이제 보티첼리의 손길에서 시모네타라는 덧없는 한 인간이 영원히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여인으로 남게 됐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에게도 이 짝사랑 이야기는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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