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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⑤] 안토니오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길러진 천재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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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⑤] 안토니오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길러진 천재 예술가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22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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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베로키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보티첼리 등 수많은 르네상스 예술가 길러내
피렌체 최고의 공방을 운영하며 제자들의 꿈을 키워준 막후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다빈치의 스승은 안토니오 베로키오

르네상스만이 아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위대한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Vinci, 1452~1519), 그의 재능 자체의 위대함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재능의 발현도 환경 즉 여러 교육과 도움이 함께 해야 꽃피울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부모님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사이였다. 말하자면 혼외 자식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변호사였으나, 다빈치는 혼외 자식이었던 만큼, 직업을 물려받을 수 없었다. 또한 아버지는 다빈치를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다. 대신 그의 숙부가 항상 다빈치에게 자연을 관찰하고 탐험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이 다빈치의 이후 예술 활동에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빈치는 가족들에게 예술 재능을 인정받았고 좀 더 나이를 먹고 나서는 피렌체의 안토니오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1435~1488)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베로키오가 이 위대한 다빈치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 우리는 다빈치는 알아도 베로키오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물론 비교가 될만한 재능은 아니다. 하지만 다빈치가 뛰어났을 뿐이며, 베로키오도 르네상스를 이끈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다빈치를 시기하지도 않았고 그의 재능이 더 꽃피워질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스도의 세례 / 위키피디아
그리스도의 세례 / 위키피디아

이탈리아 권력자들의 의뢰로 다양한 조각을 한 베로키오

베로키오는 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펼쳤다. 아버지에게는 점토 공예와 가마 다루는 법을 배웠고, 안토니오 디라는 금세공사에게는 금세공을, 그리고 도나텔로에게는 조각을 배웠다. 그의 전문 분야는 회화가 아닌 조각과 금세공이었다. 하지만 그림에도 관심이 많아 1470년에서 1472년 사이, 18살에 불과했던 다빈치와 함께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회화 작품을 제작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다빈치의 그림이 너무나 뛰어나, 베로키오가 자신은 다빈치를 따라올 수 없다며, 붓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세례 이후에도 조금씩 그림을 그렸다. 단지 처음부터 전문분야가 회화가 아니었을 뿐이며, 조각과 금세공이 수익적으로 더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도나텔로는 메디치 가문의 총애를 받았던 조각가임을 앞서 설명한 적이 있다. 그의 제자였던 베로키오도 도나텔로 사후 자연스럽게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가 되어 다양한 작품 의뢰를 맡았다. 피렌체 최고의 권력자의 지원을 받아 베로키오의 공방도 날로 번창했고 수많은 제자가 모여들었다.
 

돌고래를 안은 소동상 / 위키피디아
돌고래를 안은 소동상 / 위키피디아
베로키오의 다비드상 / 위키피디아
베로키오의 다비드상 / 위키피디아

1470년, 메디치 가의 별장인 빌라 칼리지를 위한 청동 분수에 '돌고래를 안은 소동상'이 세워졌다. 이 소동상은 왼다리로 중심을 잡고 서있는 모습을 안정감 있고 경쾌하게 표현했다. 1476년 제작한 청동상 '다윗'은 그의 스승 도나텔로가 남긴 다윗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둘 다 다윗을 소년으로 표현했지만(미켈란젤로의 우람한 근육질의 청년 다윗과는 다르게) 베로키오의 것이 인체의 비례와 근육의 표현이 더 선명하다. 베로키오는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을 위해 해부학과 인체를 깊이 연구했다.

이외에도 1476년~1483년 사이에 오르산미켈레 교회의 청동 군상 '성 토마스의 회의'을 제작했고 1481년에는 베네치아 정부와의 계약으로 '콜레오니 장군 기마상'을 엄격한 사실주의로 표현했다. 수많은 정치가들이 믿고 작품 의뢰를 맡겼던 만큼, 베로키오 만큼 당대에 잘 나갔던 예술가도 없었던 것 같다.
 

콜레오니 장군 기마상 / 위키피디아
콜레오니 장군 기마상 / 위키피디아

베로키오가 길러낸 수많은 르네상스의 예술인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개인의 작품 활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렇지만 그 외에도 아주 다양한 예술가를 제자로 두었으며, 이들이 르네상스 예술을 이끌어갈 수 있게 했다. 베로키오의 업적은 이러한 제자 교육과 공방 운영에서 빛을 발한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1449~1494)도 베로키오의 제자로서 프레스코화에서 명성을 떨쳤다. 세련되고 섬세한 묘사와 화풍이 특히 돋보이며, 시스티나 성당 벽화 제작에도 참가했다. 사실 기를란다요는 생전의 인기와 달리 미술사 전체적으로는 그리 뛰어난 업적은 없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청출어람의 예가 또 나온 것이다.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50~1523)는 역시 당대 피렌체에서 가장 인기 많은 화가였다. 베로키오에게 독립하고 피렌체와 페루자 두 곳에 공방을 운영했는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맑고 깨끗한 색조, 균형 있는 공간 구성과 원근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페루지노는 점점 같은 작품을 반복 제작하여 비방도 많이 받았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그에게 혹평을 날려 격분한 페루지노가 그를 고소했던 사건도 있었다. 나중에는 페루지노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화의 일부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으로 교체되는 굴욕을 겪었다.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그리스도', 피에트로 페루지노作 1481~1482 추정 / 위키피디아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그리스도', 피에트로 페루지노作 1481~1482 추정 / 위키피디아

이외에도 베로키오는 루카 시뇨렐리, 로렌조 디 크레디 등 다양한 예술가를 길러냈지만, 다빈치 다음으로 가장 명성을 떨친 그의 제자라면 '봄(primavera)',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산드로 보티첼리(Snadro Botticelli, 1445~1510)를 꼽을 수 있겠다. 보티첼리도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도제로서 일했다.

보티첼리는 베로키오가 사실적으로 근육을 묘사하는 방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470년 독립하여 자신의 예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스승처럼 사실주의에 몰두했으나, 후에는 봄과 비너스의 탄생처럼 고대 그리스·로마와 신화적 주제를 중심으로 독특한 윤곽선과 온화한 리듬감이 넘치는 화풍을 구축했다. 보티첼리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천재의 재능은 막후의 든든한 조력자에 의해 발휘된다

베로키오는 탁월한 공방 운영 능력을 갖췄다. 공방은 날로 성장했고 항상 주문이 밀려 있었다. 베로키오 공방에서 사람들은 공동 작업과 분업 체제로 효율적으로 작품들을 만들었다. 또한 문하생들은 그의 체계적인 교육으로 금속세공, 테라코타, 회화 등 다양한 예술의 기초는 물론 기하학, 인체학 등도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었다.

당대의 다빈치는 오히려 베로키오는 물론 그의 다른 제자들보다 궁핍했다. 초창기에 특히 심했다. 다른 베로키오 공방 제자들은 메디치 가문과 교황, 다른 도시국가 군주들의 후원과 끊임없는 작품 의뢰를 받았다. 하지만 이에 비하면 다빈치가 받았던 대우는 초라했다고 볼 수 있다.
 

1504년 미켈란젤로와의 대결로 그렸던 앙기아리의 전투 벽화는 제대로 마르지 않고 녹아버려 실패로 끝났다 / 위키피디아
1504년 미켈란젤로와의 대결로 그렸던 '앙기아리의 전투', 결국 벽화는 제대로 마르지 않고 녹아버려 실패로 끝났다 / 위키피디아

다빈치가 수많은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겼던 일은 유명하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공작의 기마상', '앙기아리 전투',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이 지금은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시도한 걸작으로 평가받으나, 당시에는 실패했거나 미완성으로 남았기에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빈치는 베로키오의 지도하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세례'에는 다빈치의 대표 기법인 템페라 기법(계란 노른자와 안료를 섞는 방법) 및 오일을 사용하는 유화 기법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다른 르네상스 화가들이 주로 쓰던 프레스코나 수채화와는 전혀 다른 이 방법을 마음껏 시도해본 것을 보면 베로키오가 다빈치의 다양한 도전을 응원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쟁쟁한 제자들에 가려진 예술가라 할 수도 있으나, 베로키오가 없었다면 그 쟁쟁한 제자 예술가들이 원래도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재능의 발현은 운과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천재의 재능은 혼자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닌, 막후의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하다. 베로키오의 업적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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