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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역사 이야기 3] 기계혁명과 포드 시스템, 대량생산의 시작방직기와 방적기,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가속화된 대량생산 체제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9.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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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산업혁명 이전만 해도 인류가 사용하는 물건은 대부분 수공예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수공예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수천 년, 수만 년을 이어온 것이다. 대량생산된 규격품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지만 현재의 모습이 나타난건 200년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수공예(핸드메이드)의 정의는 다소 애매할 수 있다. 산업혁명(기계혁명) 이전이라고 하더라도 초보적인 수준의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가내수공업에서 발전해 분업과 정해진 규격에 따라 물건을 만드는 공장제 수공업(메뉴팩처)도 존재했다.

하지만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 이전에는 어떠한 제작 방법도 결국 주체가 사람의 손기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모든 것을 전담해야 한다는 본질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출처 pixabay

면공업을 발전시킨 방직기와 방적기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에는 이 본질 자체가 뒤바뀌었다. 공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기계들이 주체가 되어 물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적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인간은 그저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 감시를 하거나 생산 과정의 아주 몇몇 부분에만 관여하면 되었다.

산업의 기계화는 18~19세기에 급격히 진행되었다. 먼저 산업혁명의 시작을 선두적으로 이끈 발명품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방적기와 방직기이 있다. 방적기(紡績機)는 목화 등에서 실을 뽑아내는 기계였고 방직기(紡織機)는 이 실로 옷감을 짤 수 있는 기계이다.

당시 면공업은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였다. 특히 영국은 인도의 면직물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고심했다. 인도의 뛰어난 장인이 만드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수공예 면직물이 영국으로 들어오면서 수많은 영국의 직물 수공업자들을 파산시킨 것이다.
 

19세기 플라이 셔틀 [출처- 위키피디아]

1733년 존 케이가 처음으로 '나는 북(flying shuttle)'이라는 방직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한 손으로 북을 잡고 그것을 날실로 밀어 넣은 다음, 다시 한 손으로 받아 씨실로 만들었다. 그런데 케이의 방직기는 양쪽에 북통을 설치했는데 이 속에 스프링이 내장되어 있어 이것을 가죽끈으로 잡아당기면 자동으로 북이 튕겨나올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이전에는 여럿이서 수작업으로 옷감을 만들었던 것이 이제는 혼자서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직기 덕분에 실의 수요가 급격하게 부족해지게 된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1765년 제니가 방적기를 발명하게 된다. 제니 방적기는 여러 개의 방추를 사용하는 물레인데, 실을 일정한 굵기로 계속해 뽑아낼 수 있었다.

이후에도 아크라이트가 1769년에 수력 방적기를 개발하였으며, 크롬프턴은 두 방적기의 장점을 조합하여 1779년에 뮬 방적기를 발명하면서 개량이 계속 이루어졌다. 이들 방적기와 방직기의 발명은 면직물을 아주 빠르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방직기와 방적기의 발명은 면직물 산업을 근본적으로 뒤바꾸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기계를 작동시키는 증기기관의 발명

산업혁명의 절정은 역시 '증기기관'이라 할 수 있다. 증기기관은 수증기를 동력으로 삼아 기계를 작동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이러한 원리는 사실 고대에서부터 연구를 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헤론은 물그릇의 물을 끓어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 위에 있는 구형 장치가 회전하는 증기기관을 만들기도 했다. 

이외에도 예전부터 증기기관에 대한 꾸준한 다양한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는 결국 일회성에 그쳤고 재미있는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근대적인 증기기관의 발명은 상용화를 통해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근본적으로 산업 자체를 뒤바꾸었다.

17세기는 연료가 목탄으로 석탄으로 대체되는 시기였다. 1698년 영국의 기술자인 세이버리는 증기를 응축시켜 나타나는 기압차로 움직이는 펌프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다. 또한 프랑스의 파팽은 1690년에 수증기를 이용하여 실린더 내의 피스톤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기관을 만들었다.
 

헤론이 발명한 원시적 형태의 증기기관, 에올리오스(aeolipile) [출처- 위키피디아]
증기의 힘으로 회전되어 피스톤 운동을 하면서 동력을 발생시키는 증기기관 [출처- 위키피디아]

영국의 대장장이인 뉴커먼은 세이버리와 협업하여 실린더 내에 증기를 도입하여 피스톤을 상승시키고 다시 증기가 냉각하면 실린더 내의 압력이 저하되어 피스톤을 대기압으로 내리누르는 원리를 토대로 1712년에 대기압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이 기관은 드디어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1763년 제임스 와트는 뉴커먼 기관이 증기를 낭비하고 있어 효율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했다. 실린더에 냉수를 넣어 증기를 냉각시키는 대신, 분리된 응축기를 만들어 실린더 안의 수증기를 관을 통해 뽑아내고 실린더 바깥에서 냉각시킨 것이다. 이 방법은 기존 증기기관보다 열효율이 3~4배 이상 향상되었다.

와트의 발명으로 이 증기기관은 엄청난 파급을 불러왔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개량되었다. 와트는 피스톤의 상하운동을 모두 동력에 활용한 복동식 기관을 개발했고 차동톱니바퀴를 이용한 플라이휠로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기존 단순한 배수펌프로 쓰이던 증기기관이 이제는 일반적인 동력원으로써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자동차, 철도, 선박, 공장 기계 등 거의 모든 근대 문물의 핵심으로 이용된 것이다.


대량생산, 포드시스템의 탄생

이러한 방직기와 증기기관의 발명은 당시 사회를 근본부터 뒤집어 놓았다. 이들 기계의 발명은 곧 다른 수많은 산업과 과학에도 영향을 미쳐 새로운 첨단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또한 기존 수공업과 농업을 몰락시켰고 임금노동자와 자본가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경제를 탄생시켰다.

특히 이러한 자본주의와 첨단 기술은 필연적으로 이에 알맞은 새로운 조직을 갖춘 시스템도 등장시켰다. 바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포드 시스템(ford system)이다.
 

1913년 미국 노동자들이 포드 자동차를 위해 마그네토와 플라이휠을 조립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포드 시스템은 1903년 설립한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대량생산 시스템을 말한다. 포드 시스템은 모든 부품과 제품을 규격화 및 표준화했고 이로 인해 제품을 기계로 자동 생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률적으로 이루어졌다.

너무나도 놀랍도록 효율적인 이 시스템은 혁신 그 자체였다. 인건비와 원가, 생산속도와 공정 등 그 모든 것을 획기적으로 감축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곧 포드 시스템은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 보편화된다.

포드 시스템은 기존의 작업이 '사람에게 일을 준다'라는 관념을 '일을 사람에게 준다'라는 것으로 뒤바꿔 버렸다. 말하자면 더이상 많은 사람도, 숙련된 장인도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기계의 단순한 자동 작업 만으로도 좋은 물건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이 가져온 인간 소외와 분노

이러한 모든 변화는 인류가 수만 년을 지켜왔던 수공예를 단숨에 무너트렸다. 결국 기존 수공예로 생업을 유지하던 사람들은 이러한 기계와 자본가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기계화가 불러온 비인간화와 획일화에 대해 두려움을 표출하였다.

이러한 분노는 1811년부터 1817년까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시킨 '러다이트운동',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 붕괴와 계급 투쟁을 선언한 '공산주의' 등으로 표출화되었다. 방직기를 만든 존 케이와 방적기를 만든 아크라이트 역시 다른 수공업자들의 무수히 많은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기계화로 인한 비인간화를 비판한 영화 모던타임즈 [영화 캡처]

또한 수많은 지식인의 작품에서도 기계화에 대한 두려움이 보인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는 기계화로 인한 비인간화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헉슬리의 소설, 멋진신세계(1932)는 미래의 세상을 포드를 숭배하고 인간 조차도 공장에서 획일적으로 만드는 무서운 세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무수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은 역사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대세'였다. 또한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과 그로 인해 촉발된 자본주의는 다양한 진보를 불러오면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량생산으로 초래된 부작용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계속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대량생산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현대에서 다시 핸드메이드의 가치도 점차 주목받고 있다. 획일화된 대량생산에 지친 현대 소비자들이 다시 장인의 손맛이 담긴 제품을 찾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기계혁명과 과학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었지만 핸드메이드 역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번 확산시키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둘의 조화를 맞출 수 있을까? 우리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와 미래를 균형 있게 설계할 수 있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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