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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역사 이야기 1] 가정과 함께한 핸드메이드, '가내수공업'농업사회를 살아간 우리 조상의 생활품을 직접 만든 근간, 가내수공업에 대해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8.2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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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일어나기 이전까지 우리의 조상들은 오랫동안 농사를 주업으로 삼았다. 당시의 농업사회는 서민 대부분이 농사에 매달려야만 근근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당시 가장 중요했던 사회 단위는 '가정'과 '마을'이었다. 오늘날처럼 통신과 교육 수준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을 농사에 의한 자급자족으로 먹고살았기 때문에 가족과 마을 이웃들이 끈끈한 정으로 맺어져 많은 것을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살아갔다.

그런데 당시 농민들 역시 농사만으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박했던 시대였다고 할지라도 생활을 위해서 옷도 입어야 하고 그릇도 필요하고 농기구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구했을까? 상인에게 구입해서 이러한 물건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시절에는 시장경제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한산 모시를 짜는 여인, 직물짜기는 당시 부녀자들의 중요한 활동이었다. [문화재청 제공]

근대 이전 농업사회의 근간, 가내수공업

대부분 시골 마을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 역시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 혹은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가내수공업(家內手工業)이라고 한다. 이 가내수공업은 기계공업이 탄생하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조상의 삶을 지탱한 근간이었다.

가내수공업은 어떻게 보면 농업사회 이전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선사시대의 가내수공업은 더욱 순수한 형태였다. 농업사회에서는 미미하지만 분명히 공예를 주업으로 삼는 전문 장인도 존재했고 국가가 관여하는 수공업도 있었으며 물건을 교환하거나 사고파는 시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사회 역시 대부분의 당시 물건이 가내수공업을 근간으로 만들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농업사회의 가내수공업을 분류하면 ① 내직적 수공업 ② 부업적 수공업 ③ 전업적 수공업으로 나눌 수 있다.

 

담배 만드는 장인 / 김홍도 作
물레질하는 여인과 자리틀로 돗자리를 짜는 장인 / 김홍도 作

다양한 형태의 가내수공업

▲ 내직적 수공업은 부녀자, 노인, 어린이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공예를 말한다. 대부분의 성인 남성은 농사를 지어야 했고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가정에 남아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집안 살림과 더불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충당했다.

▲ 부업적 수공업은 말 그대로 부업으로 행하는 것이다. 농업, 어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틈틈이 시간을 내어 공예품을 만든다. 내직적 수공업과 부업적 수공업은 의류, 도기류, 짚풀공예, 목공예 등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다.

▲ 전업적 수공업은 전문 장인처럼 공예 그 자체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농업을 근본으로 삼는 사회에서는 전업적 수공업은 물론 그 비중이 미미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공예 수요는 앞에 말한 내직적 또는 부업적 수공업으로 충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업적 수공업은 주로 왕실 또는 귀족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전문 장인은 위의 두 수공업이 할 수 없는 좀 더 전문적인 영역인 금속 공예, 고급 도예, 유리 등을 도맡았다. 이러한 분야는 상류계층의 욕구에 맞춘 것으로 더욱 많은 기술과 시간을 투자해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냈다.

전업적 수공업을 하는 장인이 공예품을 만드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개인 공방에서 만드는 것으로 혼자서 혹은 가족 단위의 몇 명이서 해내는 가내수공업이다.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공예품은 자급자족, 국가에 납품, 시장 판매 등 다양한 용도로 유통된다.

다른 하나는 공장에서 더 체계적인 분업의 형태인 공장제 수공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가 또는 국가에서 공장을 세우고 장인을 고용하는 형태였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경공장(京工匠)과 유럽의 매뉴팩처(manufacture), 길드(guild) 등이 있다.
 

뜨개질하는 여인들 [출처-pixabay]

현대의 가내수공업

오랫동안 농업 사회를 이끌어온 가내수공업은 농촌사회가 기계혁명과 산업화로 인해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쟁체제로 변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대중은 임금노동자로서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이 소득으로 공산품을 구입하는 현대적인 소비자로 변신한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의 가정에서도 가내수공업의 모습을 아직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바느질과 뜨개질이 있다. 실과 바늘 등은 오늘날 가정에도 대부분 필수적으로 구비되어 있다. 또한 현대인들도 바느질과 실을 이용해 간단한 수선 정도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또한 지역적인 측면에서도 가내수공업이 중요하게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가내수공업이라는 요소를 지역 고유한 특색으로 삼아 고부가가치화하거나 관광화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한국의 담양군은 가내수공업을 근간으로 하는 죽공예가 여전히 지역의 중요한 산업이다. 또한 △ 목공예를 하는 독일의 자이펜 마을, △ 유리공예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무라노섬, △ 레이스 직물을 짜는 부라노섬 등도 주민들이 대부분 관련 공예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을 지역 이미지로 키워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울러 핸드메이드의 가치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핸드메이드 작가와 전통 공예 장인이 개인 공방에서 직접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이를 판매하거나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된 고민이 있다. 핸드메이드 제품을 어떻게 다른 공산품과 차별화하여 대중에게 어필할 것인가?

가내수공업이 오늘날에도 살아남은 것은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한 특성화 전략 덕분이다. 우리는 가내수공업이 쇠퇴한 대량생산의 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특별함과 개성을 중시하는 인간의 본능은 여전히 남아있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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