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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작가展] '대리석에서 인체를 해방시키다.'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8.10.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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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거장으로 불리며 조각, 회화, 건축 등 다방면에 재능을 꽃피운 전무후무한 천재 예술가이다. 특히 그의 조각은 지금까지도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독보적인 그의 영역이다. 지금도 위대한 조각가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미켈란젤로를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그의 천재성과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아주 어린 소년 시절부터 길에 널린 돌을 다루는 것을 좋아했고 90세가 넘는 나이 때까지 계속해서 끌과 망치를 놓지 않으면서 수많은 조각작품을 남겼다. 이미 소년 시절부터 그의 능력을 인정 받으며,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의 후원하에 교육을 받고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계단의 성모 @carulmare

그의 알려진 첫 작품인 계단의 성모는 겨우 16세라는 나이에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여러 의뢰를 받고 그 중에서 첫 전신 조각상인 바쿠스상, 십자가 처형 등의 작품을 조각했다.
 

피에타 상 @pixabay

이미 그는 24살 때 세계적인 걸작인 '피에타상'을 조각했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죽음을 표현한 이 작품은 고전주의적 형태와 자연주의적 균형미가 조화를 이룬 역작으로 평가되며 약 2m의 대리석을 2년 동안 조각해서 만든 것이다. 재료를 찾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위해 미리 점토 모형으로 여러번 제작하고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
 

다비드상 @pixabay

1501~1504년의 기간 동안 제작한 5m의 다비드상(다윗상)도 완성되자마자 당대에서 극찬을 받았다. 다비드상은 머리와 손의 크기를 유독 크게 만들었는데 상의 크기와 올려다보는 관람객의 원근법에 맞추어 시각적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크게 만들었다고 한다.
 

좌측 반항하는 노예상과 우측 죽어가는 노예상 @MOSSOT

1505년부터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에 설치하기 위한 작품으로 중심에 설치할 모세 작품과 양단에 놓을 죽어가는 노예, 반항하는 노예를 조각했다. '특히 죽어가는 노예상'은 근육의 안정감 및 고통으로 비틀린 표현, 운동감이 모두 어우러진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에도 4점의 노예상도 제작했지만 교황의 무덤을 제작하려던 계획이 변경되어 도중에 무산되고 말았다.

미켈란젤로는 노예상을 만들 때 대리석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노예가 보였기에 이를 해방시키고 싶어 돌덩이를 떼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고의 예술가는 대리석 안에 잠들어 있는 존재를 볼 수 있으며 그 존재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의무라고 했다.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천재성과 감각을 보여주는 명언이 아닐 수가 없다.

미켈란젤로가 사망한지도 500년이 가까워오지만 그의 재능을 뛰어넘는 사람은 나오지 못했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대중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는 불세출의 천재이면서 작품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어린 시절 공부를 하라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조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작품을 만들 때 그는 자는 것과 먹는 것까지 걸러가며 작업을 했다고 하니 재능 하나만으로 이런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닌듯하다. 미켈란젤로의 예술 사랑은 분야를 막론하고 핸드메이드 작가들에게도 롤모델이 될 것이다.

김강호 기자  cpzm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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