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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와 모더니즘, '수공예의 아름다움과 상업과의 타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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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와 모더니즘, '수공예의 아름다움과 상업과의 타협까지'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5.21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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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수공예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자 한 아르누보 운동,
결국 상업화와 자본주의를 필두로한 모더니즘으로 패러다임 넘어가
하지만 손작업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내가 사용할 물건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미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이것을 남에게 팔아서 돈을 벌고자 한다면 어떨까? 당연히 작품 하나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는 없다. 아무리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면 덜 예뻐도 빨리 만들어 파는 것보다 수익적인 효율은 낮아진다.

결국은 상업화의 길이냐, 순수한 예술의 길이냐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계가 없던 옛날에는 손으로 만드는 수공업 밖에 없었기에 이런 고민이 크지 않았다. 물론 그때도 순수미술과 공예품의 구분이 당연히 있었지만 그 격차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로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더 커졌다.

그래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근대 유럽에서는 기존 예술과 공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정립이 필요해졌다. 지금은 어느 정도 둘의 윤곽이 체계적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기존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던 시대였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혼란이 있어왔고 따라서 아주 중요한 논의와 다양한 흐름이 있어 왔다.
 

아르누보 양식의 가구들 / 플리커, Jean-Pierre Dalbéra
아르누보 양식의 가구들 / 플리커, Jean-Pierre Dalbéra

근대화와 산업혁명 속에서 예술도 변하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유럽은 18세기 말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양식이 위세를 떨쳤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 문화에 영감을 받은 신고전주의의 양식은 건축·회화·음악·공예 등에서 그리스 로마의 역사적 내용을 주제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영웅주의 및 엄숙함 등을 주로 다루었다.

신고전주의는 근대로의 진입과 표방을 의미하는 것과 같았다. 또한 신고전주의는 미술과 공예의 제도도 바꾸었다. 원래 기존 중세 시대의 화가와 공예가들은 공방과 도제제도에서 키워져왔다. 국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 자유로운 도시 길드의 공방에 장인(마이스터)이 도제를 교육하고 함께 작업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의 변화로 근대화와 중앙집권화가 성립됐으며, 이러한 제도가 급격히 사라졌다. 대신 국가 주도의 아카데미가 성립됐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제 국가가 통제하는 중앙집권적인 아카데미에 소속되고 정규교육을 받게 됐다. 또한 경제·사회적으로 봐도 19세기 산업혁명과 대량생산으로 기존 수공업 체제는 유지가 어려워졌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대량생산과 기계화로 인한 비인간화에 반대하여 기존 중세시절 수공예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미술공예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오래가지 못했으나, 유럽 전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후에도 수많은 예술 운동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사계절' / 위키피디아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사계절'(1897) / 위키피디아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1907) 금박을 이용해 독특하고 실험적인 표현을 시도했다 / pixabay

'새로운 미술', 아르누보의 흥기

대표적인 후계 운동을 찾자면 유럽에서는 19세기 말에 신고전주의를 대체한 아르누보(Art Nouveau)를 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는 '새로운 미술'을 의미하며, 오스트리아에서는 분리파, 독일에서는 유겐트슈틸로도 이어진 이 운동은 회화와 공예, 건축 등 예술의 다방면에서 기존 전통 예술의 관념을 크게 흔들었다.

아르누보는 윌리엄 모리스와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으로 특히 공예에 집중했다. 이미 순수미술 쪽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표현해나간 '인상파' 사조가 기존 흐름을 대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공예운동이 수공예로 만든 제품의 질을 극대화하여, 공산품에 대항하려고 했던 것처럼 아르누보 역시 공예품들의 아름다운 표현을 중시했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그림과 조각을 그대로 재현 및 묘사하는 것을 추구했으며, 경직되고 엄숙한 인공미를 좋아했다. 그에 반해 아르누보는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고자 했다. 특히 독특한 장식과 식물에서 따온 유기적 곡선 등을 애용했으며 자유로운 시도와 인간적인 표현을 좋아했다.
 

르네 랄리크의 유리 공예품 / 위키피디아
르네 랄리크의 유리 공예품 / 위키피디아

에밀 갈레, 돔 형제, 르네 랄리크 등 프랑스 유리공예가들은 굉장히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유리작품들을 만들어 아르누보를 꽃피웠다. 한편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화려한 색채와 관능적 이미지의 장식화를 그림으로서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 거장이 되었다.

또한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 역시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빼놓을 수 없다. 구불구불 곡선과 몽환적 이미지 등을 차용한 그의 건축물들은 당시에는 '저게 무슨 건축이냐!'라면서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의 수많은 작품이 세계유산이 되었고, 기존 건축의 형식을 뒤집어 독특한 예술 사조를 확립한 건축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르누보는 1900년 만국박람회 이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아르누보 관련 작품 활동과 전시가 성행했다. 아르누보와 미술공예운동은 순수예술과 실용품으로서의 디자인의 벽을 허물고, 수공예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되어가는 듯 했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발토 지붕 / pixabay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발토 지붕 / pixabay

아르누보의 쇠퇴와 현대 모더니즘의 성립

하지만 아르누보는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인, 10~20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만 유행했다. 그 이유는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의 실패와도 맥을 함께 한다. 수공예품의 질을 높이고, 더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결국 인건비의 상승과 작업시간의 증대로 인한 생산성의 하락을 불러온 것이다.

더구나 아르누보는 지나치게 장식에 치중하여, 아름답긴 했어도 합리적이지 못했고, 기능적인 부문을 무시했다. 결국 아르누보는 퇴폐적이고, 탐미적 성향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비관적으로 바뀐 유럽의 분위기도 한몫했으나,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정착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아르데코(Art deco)가 아르누보의 뒤를 이어 탄생했다. 하지만 아르데코는 아르누보와 달리 기차, 비행기, 라디오, 청소기 등 생활용품과 공산품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아르누보를 이었으나, 아르누보와 달리 자연미는 물론 직선, 대칭, 기하학, 추상적 장식 등을 활용했고, 수많은 예술 흐름을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전통적 수공예와 예술 그리고 대량생산의 타협을 이룬 아르데코는 모더니즘(Modernism)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었다. 모더니즘은 현대적 예술 질서의 정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예술가들 역시 모더니즘으로 대량생산과 현대적 재료를 받아들였으며, 자본주의와 물질문화의 흐름에 합류하게 된다.

수공예품들 역시 이제는 기능과 사회성을 중시한 간결한 디자인과 생산방법 등을 차용하게 되었다. 이는 미술공예운동과 아르누보의 끝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지난번에 소개했던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수공예를 포기하고 기계적 생산의 미학을 받아들이고, 산업디자인을 새롭게 탄생시킨 것도 같은 맥락의 흐름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전등 램프, 킴벌리사 제작 / 위키피디아
아르누보 스타일의 전등 램프, 뉴욕 킴벌리사 1890년대에 제작 / 위키피디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예술, 무엇을 택할 것인가?

아르누보의 쇠퇴는 결국 자본주의로 인한 상업화와 대량생산이 시대의 대세였음을 알려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 수공예 예술이 정말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와 상업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현대인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 만이 떠오르는 단어는 아니다.

실제로 모더니즘은 지나친 문화의 상업화와 비인간화로 인해 이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새롭게 떠올라 모더니즘의 폐해를 보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대세라고 하더라도, 시대는 계속 변화하게 되어있으며 기존의 관념에 대한 비판과 대안은 계속 나오게 되어 있다.

오늘날 핸드메이드와 DIY 등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도 그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정성을 들여 무언가를 만드는 것의 가치를 잊지 못한다. 또한 나만의 특별한 물건을 갖고 싶어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대량생산과 수공예, 예술과 산업의 양자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은 받아들이되, 각자가 가진 매력과 장점을 배척하지 않고 훌륭하게 융합해야 한다.

기존 수공업 체제가 대량생산으로 흐름이 넘어간지는 오래되었으나, 예술은 아직 작가의 손에서 탄생하는 것이 대세이다. 하지만 로봇과 인공지능, A.I의 발전으로 인해 현대 예술의 영역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미래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손으로 하는 작업과 작품의 가치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이 19세기 산업혁명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이 있다. 그것은 복고주의가 될지도, 새로운 기회가 되거나, 절충과 타협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시대의 흐름이 다시 부작용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택할 것인지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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