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핸드메이드 아트
카탈루냐의 위대한 건축 예술가, 안토니 가우디2026년 완공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 허가 떨어져, 그의 예술은 현재 진행중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6.25 13:43
  • 댓글 0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스페인 동북부에 있는 카탈루냐 지방의 독립 문제가 계속 되고 있다. 그동안의 갈등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카탈루냐는 오랫동안 스페인과 다른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곳이다.

카탈루냐인들은 개성이 강하고 예술에 뛰어났다. 특히 위대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카탈루냐의 자존심이며 상징 같은 존재이다. 카탈루냐 중심도시이자 가우디의 유산들이 모인 바르셀로나에 가서 가우디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면,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 [위키피디아 제공]

가우디는 1852년, 바르셀로나 남서쪽에 있는 레우스라는 도시에서 구리 세공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덕분에 가우디는 금속 세공 기술을 어릴 때부터 접하고 익혔다. 이후에는 철 세공업을 잠시 직업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가우디는 건축가를 강하게 꿈꿨다. 그리하여 바르셀로나 시립 건축 학교에 입학하여 건축을 공부했고, 26세에 건축사 자격증을 받은 후부터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펼치게 된다.
 

카사비센스 [xiquinhosilvaz]

기존 건축의 형식을 뒤집은 가우디의 작품들

가우디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된 첫 작품은 '카사 비센스(Casa Vicens)'이다. 타일공장을 운영하는 비센스가 개인 별장을  의뢰하여, 1888년 지어졌다. 개인용 별장이었을 뿐이지만 카사 비센스는 다른 수많은 가우디의 작품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되었으며, 카사(Cassa 스페인어의 주택) 시리즈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그의 경력에서 첫 작품인지라 그의 색깔이 비교적 강하지 않은 작품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당시 모더니즘 양식에 비교되는 혁명적인 양식과 그의 조형감각이 돋보인다. 건물은 당시 부지에 있던 노란 아프리카 금잔화와 야자수들을 모티프로 삼아 디자인에 활용했으며 타일, 벽돌, 잡석, 유리 등 다양한 자연의 재료를 이용해 지어졌다.

이후, 가우디는 평생의 후원자인 '에우세비오 구엘 백작(1846~1818)'을 만나게 된다. 1878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그의 전시를 보고 재능을 알아챈 구엘은 이후, 가우디에게 수많은 작품을 의뢰했다. 그는 가우디를 믿고 따랐으며 가우디 자신의 예술 정신을 거침없이 펼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된다.
 

구엘 저택 [Thomas Ledl]

그는 구엘의 이름을 딴 구엘 저택(Guell Palace)과 구엘 공원(Guell park)을 짓는다. 1890년 지어진 구엘 저택은 도자기, 대리석, 타일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해 지었는데, 각자 독특한 형태를 지닌 20개의 굴뚝, 용 문양을 만든 철제문, 곡선을 활용한 독특한 건물의 형상 등이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이룬다.
 

구엘 공원 [pixabay]
구엘 공원 도마뱀 조각 [pixabay]

구엘공원은 가우디 특유의 건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다. 사실, 가우디와 구엘은 처음에 이곳을 작은 단지 마을로 조성하려고 계획했으며, 1900년부터 1914년까지 오랫동안 시공을 진행했다. 하지만 가우디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했고 이후,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공원 곳곳에는 형형색색 모자이크 장식과 타일, 곡선의 미를 사용한 조각과 벤치 등 조형물과 부속 건물들이 공원의 분위기를 마치 동화 속 세상처럼 훌륭하게 연출해낸다. 가우디는 전체적인 설계뿐 아니라 이러한 세부적인 가구, 조형물을 직접 조각하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카사 밀라 [pixabay]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남긴 가우디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특히 '카사 밀라(Casa Mila)'를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꼽는다. 바르셀로나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이 건물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자 그의 예술적 정신이 가장 잘 녹아든 작품이다.

카사 밀라는 1906년 시작되어, 1910년에 완공됐다. 그는 이 건물을 기존 정형화된 일직선에서 벗어나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철과 석회암을 이용하여, 파도 같은 곡선 모양의 외벽을 만들어 입체적인 설계를 했다. 각 층의 내부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독특한 표현과 함께 그는 환기탑, 굴뚝까지도 그냥 두지 않고 직접 디자인했다. 이로소 완성된 카사 밀라는 마치 건물 자체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유로운 영혼이 담긴 가우디의 예술 정신

가우디는 당시의 예술 사조를 뛰어넘은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을 확립했다. 그는 기존 정형화된 직선, 사각형보다 기이한 곡선, 포물선 등을 활용했고 직접 독특한 장식과 조각을 함께 넣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그는 자연을 동경하고 사랑했으며, 자연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실제 재료 역시 자연의 돌과 흙, 유약을 묻힌 타일과 자기 등을 사용하는 것을 즐겨 했다.

이러한 그의 예술 철학은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선구적으로 지휘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도 그의 자유로운 정신을 담은 건축물은 파블로 피카소, 카잘스, 미로 등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당시 그의 작품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한때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독창성을 인정받아 그의 작품은 카사 밀라, 카사 비넨스,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을 포함한 7개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사그라다 파말리아 [pixabay]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 허가 허용, 그의 예술은 계속된다

그의 미완성 작품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성당 또는 성가족 교회라고도 부른다. 1882년 막 착공을 시작한 이 건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매년 450만 명이 찾는 스페인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시 당국으로부터 어떠한 허가도 받지 않은 채 건축을 진행했다고 한다. 물론 가우디는 당시 허가 신청을 내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그 사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다. 하지만 지난 7일, AFP통신과 BBC방송 등 외신의 보도에 의하면 137년 만에 드디어 바르셀로나시의 건축 허가를 받게 되었다.

그동안 건축을 진행해온 성당건축위원회 측은 136년 동안 허가 없이 공사를 진행한 데에 따른 벌금 성격으로 바르셀로나 시에 약 486억 원을 내기로 합의했다. 성당의 총공사비는 3억 7천400만유로, 한화 4천994억 원인데, 이 비용은 지금까지 기부금과 입장권 판매금으로 충당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의 사후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유골도 지하 납골당 안에 묵묵히 안치되어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의 예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저작권자 © 핸드메이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강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전통주의 구수한 매력 ①] '우리의 전통주란 무엇인가?'
[전통주의 구수한 매력 ①] '우리의 전통주란 무엇인가?'
장례식에 사용하는 '삼베수의', 일제의 잔재인 것을 아시나요?
장례식에 사용하는 '삼베수의', 일제의 잔재인 것을 아시나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