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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취향은?] 비단 위 진채화로 그려낸 전통과 현대의 만남 – 이창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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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취향은?] 비단 위 진채화로 그려낸 전통과 현대의 만남 – 이창민 작가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8.13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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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그림은 어디에 무엇으로 그릴 수 있다. 옷, 종이, 플라스틱, 유리, 돌까지 재료를 탓하지 않는다. 그 옛날 얼룩진 치마에 알알이 포도송이를 그린 신사임당처럼 말이다. 다양한 재료 중에서도 비단에 그림을 그리는 전통 채색기법을 진채(眞彩)라고 하며, 그 그림은 진채화(眞彩畵)라고 한다.

원단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많다. 동‧서양에서 부르는 이름과 채색할 때 사용하는 재료가 다를 뿐이다. 서양에서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등으로 그리는 유화, 동양에서는 비단에 안료를 이용해 그리는 진채가 해당한다.

이창민 작가는 진채(眞彩)를 사용해 옛것과 요즘 것의 조화로움을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는 “작업의 시작은 전통 회화의 현대적 발현에 대한 고민에서부터이다. 표현방식은 전통 채색기법인 진채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부분적으로는 표현의 확대를 위한 실험적 기법과 작업도 같이 시도해보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창민, 봉황흉배, 15×15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봉황흉배, 15×15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운학흉배(雲鶴胸背), 22×21.3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운학흉배(雲鶴胸背), 22×21.3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호표흉배(虎豹胸背), 20.8×21.5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호표흉배(虎豹胸背), 20.8×21.5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옛것과 요즘 것의 조화를 위해서는, 가장 기본 바탕이 되는 옛것을 잘 그려내야 할 것이다. 작가 역시 봉황과 구름, 학, 호랑이 등 흉배에 기본이 되는 형태를 그려냈다. 비단에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진한 색채와 분명한 그림의 형태가 매력적이다.

조선 시대 왕과 문무백관의 옷을 화려하게 장식한 흉배는 자수를 놓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입체감이 진채화로 표현한 흉배에서도 살아있다. 진하게 채색하는 것이 진채화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이창민, 기린흉배(麒麟胸背), 25×21cm, 비단에 가금, 2019 / 전은지 기자
이창민, 기린흉배(麒麟胸背), 25×21cm, 비단에 가금, 2019 / 전은지 기자

‘기린흉배’는 다양한 채색이 아닌, 가금으로 그려졌다. 모르는 상태에서 감상하면 이 작품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을 표현한 흉배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제 기린흉배는 대군의 옷에 달린 것으로, 금색 실로 자수가 놓여있다. 전통 채색기법인 진채를 사용하는 만큼, 작가가 얼마나 전통적인 부분을 많이 연구했는지 알 수 있다.
 

이창민, 예이제_GIORGIO ARMANI, 58×57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GIORGIO ARMANI, 58×57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LOUIS VUITTON, 55×54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LOUIS VUITTON, 55×54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BURBERRY, 60×50cm, 비단에 채색, 금,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BURBERRY, 60×50cm, 비단에 채색, 금,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CHANEL, 58×57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CHANEL, 58×57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작가는 전통 흉배에 명품 로고를 더해 색다른 흉배를 만들어냈다. 고금(古今), 옛날과 지금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 ‘예이제’라는 작품 제목이 왜 붙었는지 알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명품 로고가 전통 문양과 잘 어우러진다. 그야말로 요즘 감성에 적합한 작품이다. 전통과 현대적인 요소를 잘못 결합하면 어색할 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에서도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작품 자체의 표면적인 부분만 보면 멋진 작품이지만, 이창민 작가는 이 명품 흉배에 ‘경고’의 의미를 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두고 김수진 평론가는 “관직을 상징하는 흉배를 그와 비슷한 형상의 브랜드 로고로 바꾸어 일부 사람들의 비뚤어진 삶의 가치관을 표현하였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요즘, 명품관마다 몇 시간씩 대기할 정도로 줄을 선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어쩌면 작가가 그린 명품 흉배는 명품을 소유하려는 맹목적인 욕심과 허영심을 가진 이들에게 혹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갑질을 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는 꾸지람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창민, 예이제_고금경중(古今輕重), 20.8×21.5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고금경중(古今輕重), 20.8×21.5cm, 비단에 채색, 2010 / 전은지 기자

옛날과 지금의 결합은 ‘고금경중’이라는 책가도에서도 볼 수 있다. 4칸씩 2줄인 양쪽 책가도는 잘 보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사진상 왼쪽의 책가도는 붓, 벼루, 먹, 종이 등의 문방사우와 책, 도자기 등 옛것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의 책가도는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장난감이 놓여있는데, 왼쪽 책가도와 비슷하게 배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책꽂이를 표현하는가 싶었다. 작품 제목을 보면 옛날과 지금,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뜻을 좀 더 해석해보면, 옛것과 지금 모두 귀중하거나 하찮은 것은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비슷하다. 오래된 것은 하찮게 여겨서 쉽게 버리고, 새것은 귀하게 여기는 세태를 비판하는 듯하다.

그림 자체만을 보면, 단정하고 진한 색채에 눈길이 간다.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공감할 것 같은 장난감이 있어 재미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실제 책장이 있는 듯 표현된 부분이나 벽면 가득 크게 걸린 부분이 입체감을 더해 매력적이다.
 

이창민, 예이제_나는 새야!(왼쪽), 예이제_나는 꽃이야!(오른쪽), 각각 58×44cm, 종이에 채색, 은박 콜라주, 2021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나는 새야!(왼쪽), 예이제_나는 꽃이야!(오른쪽), 각각 58×44cm, 종이에 채색, 은박 콜라주, 2021 / 전은지 기자
기존의 문자도 / 전은지 기자
기존의 문자도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작가는 흉배와 책가도 외에도 문자도(文字圖)에도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글자에 의미 있는 내용이나 꽃 등을 그린 문자도는 그 자체만을 보아도 아름답다. 작가는 거기에서 발전해 글자를 따로 떼어내어 글자 안의 그림이 아닌, 그 자체가 그림이 되도록 했다.

비단이 아닌 종이에 채색한 점도 특징이지만, 기존의 문자를 각각 떼어내어 재해석했다. 한 자는 나무 위에 앉은 새, 또 한 자는 화분에 심어진 꽃이 되었다. 기존 문자도에 그려진 꽃을 그대로 이용해 새의 눈을 표현하거나 꽃이자 선인장을 닮은 식물이 되었다는 점이 신기하다. 누구나 문자도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느낌이다.
 

이창민, 예이제_검도 하는 아이, 61×50cm, 종이에 채색, 은박 콜라주, 2021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검도 하는 아이, 61×50cm, 종이에 채색, 은박 콜라주, 2021 / 전은지 기자
기존의 문자도 ‘복(福)’ / 전은지 기자
기존의 문자도 ‘복(福)’ / 전은지 기자

기존의 문자도를 분리해 표현하는 것에서 발전해, 글자의 한 획, 한 획을 떼어내어 전혀 다른 그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검도 하는 아이’는 문자도 ‘복(福)’에서 각각의 부분을 떼어내, 사람과 칼을 표현했다. 기존 문자도 속에 그린 꽃과 새는 살리면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 점이 ‘발칙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창민, 예이제_문자도[義] (왼쪽), 예이제_문자도[忠] (오른쪽), 각각 58×44cm, 종이에 채색, 은박, 2021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문자도[義] (왼쪽), 예이제_문자도[忠] (오른쪽), 각각 58×44cm, 종이에 채색, 은박, 2021 / 전은지 기자

의(義), 충(忠)은 옛날 신하들에게 강조되어 온 덕목 중 하나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믿음직하고 의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일을 행하라는 것이다.

당시 의와 충을 그린 문자도는 여러 동물 자체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작가는 글씨 안에 화려한 꽃을 그려 넣었다. 여기에 글자의 입체감을 돋보이게 작업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이창민, 예이제_복, 40cm, 비단에 채색, 2016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복, 40cm, 비단에 채색, 2016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달, 40cm, 비단에 채색, 2016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달, 40cm, 비단에 채색, 2016 / 전은지 기자

한글로 표현한 문자도도 있다. 처음엔 같은 한자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면 한글이다. ‘복’에는 6월부터 10월까지 피는 메리골드가 그려져 있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우정’도 있지만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뜻도 있다. 이런 꽃말의 의미를 담아 복이라는 글자에 새겨 넣은 것이 아닐까 싶다.

‘달’에는 토끼 2마리와 꽃이 그려져 있는데, 옛날부터 달에는 토끼가 살며, 그 토끼가 절구 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야기를 토대로 그린 듯하다. 비단에 그려졌지만 ‘달’이라는 글자와 그림이 선명하다.
 

이창민, 지켜줄게, 114×70cm, 비단에 채색, 2021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지켜줄게, 114×70cm, 비단에 채색, 2021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십우도, 93×71cm, 비단에 채색, 2021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십우도, 93×71cm, 비단에 채색, 2021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자화상(왼쪽), 미인도 부분 모사(오른쪽), 각각 50×34cm, 비단에 채색, 2020~2021 / 전은지 기자
이창민, 예이제_자화상(왼쪽), 미인도 부분 모사(오른쪽), 각각 50×34cm, 비단에 채색, 2020~2021 / 전은지 기자

이 3개의 작품은 진한 색채로 표현되는 진채화라고 보기에는 연한 느낌이다. 비단에 이렇게 투명한 느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켜줄게’는 평온하게 근심 걱정 없이 잠을 자는 아이의 모습은 채도가 낮지만, 그 위에 아이를 지키듯이 있는 인형들은 채도가 높다.

‘십우도’는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동자, 스님이 소를 찾는 과정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창민 작가의 ‘십우도’는 뭔가 다르다. 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공룡 인형 위에 앉아있고, 그 둘레에는 무지개가 떠 있다. 순수하고 맑은 아이의 동심을 표현한 것일까 싶다.

‘자화상’은 미인도를 오마주해서 그린 작품인듯하다.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자화상’의 여인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단발머리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인도’의 여인은 자신의 노리개와 고름을 잡고 있다. 현대의 여인들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만, 과거의 여인들은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없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 역시도 비단에 그려졌지만,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이 분명한 선과 색채를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는 옛날 것을 보면 촌스럽다고 했지만, 요즘은 레트로, 뉴트로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옛것과 요즘 것의 만남을 가장 트렌디하다고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이창민 작가의 그림은 가장 ‘핫’하고 ‘힙’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현대인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는 말처럼.

비단 위에서 표현되는 옛날 진채화가 지금의 것들을 만나 새로운 매력을 가지게 된 그의 작품에 묘하게 빠져들게 될 것 같다.

 

[나의 그림 취향은?] 시리즈는 독자들이 자신의 그림 취향을 알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의 색채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어찌 보면 많이 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본 시리즈는 색채가 뚜렷한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소개가 될 예정이며 작가들의 개인적인 삶보다는 작품에 집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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