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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또다른 중심, '계조당'··· 수공업 전통 방법으로 복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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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또다른 중심, '계조당'··· 수공업 전통 방법으로 복원된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3.04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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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때에 처음 창건한 동궁의 정당, 문종의 대리청정 용으로 활용돼
고종 때에 다시 건립하고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애환의 건물··· 110년만에 복원
계조당 권역 도감 개조도 문화재청 제공
계조당 권역 복원조감도 [문화재청 제공]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경복궁의 주요 건물 중 하나가 복원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왕세자의 공간인 동궁의 정당(正堂), '계조당(繼照堂)'에 대한 복원공사를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궐내의 동쪽에 자리 잡은 동궁(東宮) 권역은 왕세자의 공간이다. 외전과 내전을 갖춰 궁궐 속의 왕세자의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계조당은 신하가 왕세자에게 정기적으로 조하(朝賀, 조정에 나아가 하례함)를 드리고 진찬(進饌, 궁중 잔치)을 여는 등 동궁의 정당(正堂, 국정을 논의하는 장소)으로서 기능했고 조선 왕조의 권위와 후계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궁능유적본부는 경복궁 계조당 복원사업에 앞으로 2022년까지 3년간 총 82억 원을 투입하여 계조당의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과 맞배지붕 행각을 복원해 왕세자의 공간인 동궁 권역의 기본적인 궁제를 되살릴 계획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2018년 동궁 권역을 발굴조사해 건물의 적심 등 옛 계조당 터를 확인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계조당 권역 복원위치도 [문화재청 제공]

왕세자의 정당으로 활용된 '계조당' 

"1443년 5월 12일 왕세자가 조회 받을 집을 건춘문(建春門) 안에다 짓고 이름을 ‘계조당(繼照堂)’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32책 100권,

계조당은 1443년(세종 25년)에 처음 창건되었다. 이때는 세종이 훈민정음 개발에 한창인 때였는데, 그래서 세자인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그렇기에 왕세자를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문종은 여기서 서연(경서 강연), 일본 사신 접견, 조회, 잔치 등을 벌이는 등 또다른 근정전의 역할을 했으나 문종 즉위 이후에는 쓸모가 없어져 1452년 단종 즉위 이후 문종의 유언에 따라 철거되었다.

그런데 416년이 지나고 1868년(고종 5년) 당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주도하면서 사라졌던 계조당도 건립됐다. 왕세자가 조하(朝賀)를 받기 위한 동궁 내의 정당(正堂)으로 주로 이용했고 1891년(고종 28년)에 다시 고쳐 개건했다. 세종, 문종 때에는 동문 건춘문 안쪽에 있었으나 고종 때 지은 것은 동궁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10년경 조선 왕실의 권위를 지우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박람회인 조선물산공진회의 행사 공간으로 경복궁을 활용하면서 동궁의 주요 건물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현재는 1999년도에 복원한 자선당(資善堂,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거처하는 전각)과 비현각(丕顯閣, 왕세자의 집무실로 활용되는 건물) 만이 남아있다.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수공업 전통 방식으로 복원되는 계조당

동궁 복원의 핵심은 물론 동궁의 정당인 계조당이다. 특히 이번 계조당 복원은 전통 장인이 직접 ‘손으로 하는 가공’(인력가공)으로 진행되는데 수제전통 한식 기와, 철물, 소나무 등 전통재료와 부재를 수작업으로 만들고 결구, 조립 등 전통 공정으로 복원할 방침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한옥의 전통적인 건축 방법은 서양의 건물처럼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맞물려 짜 맞추는 결구법을 사용한다. 결구법은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아름다운 조형미를 나타낼 수 있다. 한편 공정은 무형문화재 장인인 '대목장'이 설계와 모든 시공을 주관하며, 소목장·단청장·석공·제와장·조각장 등이 서로 분업을 맡으며 협의하에 진행되었다. 

건축에 쓰일 주재료는 소나무다. 삼국시대에는 참나무가 건축에서 가장 많이 쓰였고, 한편 고려시대에는 느티나무를 주로 사용했고, 조선시대에는 소나무가 많이 쓰였다. 참나무와 느티나무는 단단하고 수명이 길었지만 점차 고갈되었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서 가장 구하기 쉬웠던 소나무 사용이 증가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정부가 직접 관리하면서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하지만 소나무 역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사라졌다. 일본은 비행기 연료와 목재를 사용하기 위해 소나무에 송진을 채취하고 벌채했고 6.25 전쟁 당시에는 폭격으로 많은 소나무 숲이 파괴됐다.
 

경복궁 계조당 터 발굴 모습 [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계조당 터 발굴 모습 [문화재청 제공]

특히 궁궐 기둥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거대하고 튼튼한 나무가 필요한데, 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번 계조당 복원 역시 양질의 나무를 확보하는 것이 큰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육조 가운데 토목공사와 공예, 야금 등을 담당한 공조(工曹) 부서가 있었는데, 이곳에 소속된 장인이 왕실 건축을 맡았다. 이번 복원작업 역시 전통방식을 사용하는 만큼, 국가에서 양성 및 인증한 석공, 제와장(기와 만드는 장인), 단청기술자, 목수, 철물공 등 문화재 수리 및 복원 기술자들이 총동원될 예정이다.

또한 궁능유적본부는 오는 5월부터는 사전 신청을 받아 공사현장 내부를 무료 공개한다. 이를 통해 국민과 함께하는 투명한 문화재 복원의 대표적 모범사례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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