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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건축가' 대목장, 전통으로 현대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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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건축가' 대목장, 전통으로 현대를 잇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8.03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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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건축의 모든 것을 관리한 대목장, 오랜 경험과 연륜 갖춰야 될 수 있어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옛날에 선조들은 으리으리한 궁궐과 사찰을 어떻게 지은 것일까. 그 당시에는 시멘트도 포크레인도 없었는데 말이다. 별다른 기계와 화학 재료가 없으니 일일이 손작업과 천연 재료를 이용해 지었을 터. 그 속엔 오랜 시간과 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었을 것이다.

건축의 규모는 그 어떤 수공예도 비교가 안될 만큼 거대하다. 때문에 수많은 손재주 있는 장인이 모여 분업하에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또한 이들 장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총지휘를 맡고 전반적인 설계와 실측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것을 담당하는 장인을 '대목장(大木匠)'이라고 한다.
 

전통건축 건설 현장 / 문화재청 제공
전통건축 건설 현장 / 문화재청 제공

대목장과 전통 건축

궁궐, 사찰, 전통 한옥을 짓는 일을 대목(大木)이라고 불렀다. 대목의 목(木)은 목재를 말한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성문과 성벽 그리고 서민의 단순한 초가집을 제외하면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대목장 외에도 소목장이라는 장인이 있었는데, 둘 다 나무를 이용한다는 점은 같았으나, 소목장은 큰 건물보다는 가구와 창호, 난간을 만들었다.

대목장은 설계, 시공, 감리, 유지 보수 등 목조건축의 전 과정을 책임진다. 그렇기에 전반적 건설 과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집을 짓는 목재 등 재료의 종류를 적절히 이해하고 조달하는 것 ▲건물 입지 선정 ▲배치 설계 ▲건물 조립 과정 ▲벽과 지붕 ▲기와 ▲단청의 제작과 시공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건축에 사용되는 목재는 주로 소나무와 느티나무였다. 고려 시대에는 주로 느티나무를 사용했으나, 조선시대에는 소나무가 많이 쓰였다. 느티나무가 소나무보다 튼튼했으나 고려 말기부터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건축 혹은 배 제작에 사용될 소나무를 조달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고 소나무 숲을 엄격히 관리하여 벌채를 금했다.

대목장은 좋은 나무를 선별하고 공급할 수 있어야 했다. 먼저 목재를 포함해 각종 부재와 공구, 치수를 산출한 내역서인 물목을 작성한다. 그다음에는 각종 도면을 작성한다. 하지만 예전 도면은 오늘날처럼 세밀하고 전문적이지 못해 간단한 칸수와 치수, 기둥, 위치만을 표시했는데, 때문에 대목장의 감각이 더욱 중요했다.

대목장의 지휘 하에 완성된 목조 건축물은 우리 한옥의 전통미와 고유성을 잘 표현한다. 우아하고 간결하면서도 소박하다. 한옥은 서양에서 못을 사용한 것과 달리 결구법을 사용한다. 결구법이란 나무와 나무를 조립하듯이 맞물려 짜 맞추면서 만드는 것이다. 과학적인 구조로 나무가 서로의 힘을 지탱할 수 있어 굉장히 튼튼하다.


대목장의 역할과 역사

대목장은 조선 후기부터 도편수(都邊首)라고 불렀다. 대목장의 지시를 받아 목수를 통솔하는 사람은 부감독관인 부편수(副邊首)가 있다. 대목장 밑에 부편수 몇명을 둔다. 그리고 큰 나무를 다듬는 목수, 나무를 잘라내는 기거장 등 수하 목수 등을 통솔한다. 전통 건축에서 대목수의 지휘를 받는 목수의 전통 명칭과 업무는 다음과 같다.
 

전통건축업무
전통건축업무 /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이외에도 기와를 만드는 제와장(현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단청을 그리는 단청장(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흙을 다루는 니장, 돌을 다루는 석공, 쇠를 다루는 야장, 기와를 시공하는 번와장(국가무형문화재 제121호) 등 다양한 장인과도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대목장은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장인이 사용되는 기법과 도구를 이해하고 총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대목장은 국가에서 주관하는 대규모 사업 또는 권력 있는 양반 가문의 건축을 담당해야 했기에 책임이 막중하다. 대목장은 아무나 할 수 없었다. 수십 년의 경력과 연륜이 필요했으며 그중에서도 눈썰미가 뛰어난 자여야만 가능했다. 공사현장에서 대목장의 목소리야말로 법과 같았고 책임과 권한이 막강해 대를 이어 직책이 전승되기도 했다.

통일신라에는 도시행정을 관장하는 전읍서(典邑署)에 목척(木尺)이라는 관직이 70명 있었는데, 이들이 목조건축을 주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려시대는 토목공사를 관장하는 선공시라는 관청에 목업이라는 벼슬이 있었다. 조선시대는 선공시가 선공감으로 이어져왔고 경국대전에 따르면 60인의 목장을 두었다고 한다.

세종대왕 당시 남대문을 재건하던 기록에 따르면 당시 대목은 정 5품 벼슬이었다. 조선이 기술자를 천시했던 점을 볼 때 대목장은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목장에게 벼슬을 주는 일이 없어졌고 점차 큰 건물을 짓는 일도 사라져 대목장의 맥도 끊어지게 된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 / 위키피디아
서울의 중심, 광화문 / 위키피디아
'안동 봉정사 극락전' / 문화재청 제공
'안동 봉정사 극락전' / 문화재청 제공

전통을 복원하는 현대의 대목장

오늘날 대목장은 1980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보유자는 이광규, 조원재였으며 두 장인의 사후에는 이들의 제자인 신응수가 1991년에 새롭게 보유자가 되었다. 이후 1997년에는 조원재 선생의 제자인 고택영 장인이, 2000년에는 최기영이 보유자가 되었다. 이 밖에도 여러 시·도무형문화재 대목장이 존재한다.

대목장은 2010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거두었다. 전통 한옥을 만드는 대목장의 가치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된 것이다. 특히 당시 11건의 우리 인류무형유산 중에 대목장은 유일한 만들기 분야였다. (이후 한산모시짜기(2011), 김장(2013)이 등재됐다.)

대목장은 현재 다양한 전국의 문화재를 복원하여, 잊혀졌던 우리 전통을 되살리고 있다. 국보 제1호 '숭례문'과 '광화문'은 물론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등 각종 국보 및 보물 문화재를 복원·수리해왔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목조건축은 아름다우나 목재의 특성상 손실도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쟁과 재해 등 수난 속에서 많은 문화재를 잃어왔다. 그렇기에 대목장의 역할은 아직도 막중하다. 조선시대에는 주요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였다면 이제는 과거와 현대를 잇는 역사의 복원자로써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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