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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갑니다' 1,200년 전, 울진 성류굴서 신라 화랑이 새긴 명문 발견삼국시대, 통일신라,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선조의 흔적이 한자리에 모이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4.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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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문화재청은 울진 성류굴에서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각석(刻石, 돌에 새긴 글씨) 명문 30여 개를 확인하였다.

울진군 관계자들은 지난 3월 21일 성류굴 내부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성류굴(주굴 길이 470m)에 들어갔다가 입구에서 230여 m 안쪽에 위치한 일반인 접근 제한 구역에서 여러 개의 종유석(석주, 석순)과 암벽 등에 새겨진 명문들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동굴 안에서 명문이 발견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울진 성류굴 [문화재청 제공]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석회동굴, '울진 성류굴(蔚珍聖留窟)'

1963년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된 울진 성류굴은 경상북도 울진군 선유산의 절벽 밑의 하천인 왕피천에 위치한다. 약 2억 5천만 년 전에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주굴 길이는 약 400m이며 전체 길이는 약 800m이다. 크고 작은 9개의 광장과 5개의 호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양각색의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이 경관을 이룬다.

성류굴은 고려 말엽의 학자이자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1298~1351)이 관동유기(關東遊記)라는 기행문에 성류굴을 둘러본 것에 대해 기록하면서 언급됐다. 성류굴이라는 명칭은 임진왜란 당시 불상을 이곳으로 옮겨 보호하였는데 성스러운 부처가 모셔져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탱천굴(撑天窟) 또는 선유굴(仙遊窟)이라고도 부른다.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사람들이 남긴 글자

울진군의 첫 발견 이후 문화재청 등 전문가들이 세 차례 추가 조사를 나갔으며 ‘신유년(辛酉年)’과 ‘경진년(庚辰年)’ 등의 연대를 나타내는 간지(干支), 통일신라 시대 관직명인 ‘병부사(兵府史)’, 화랑 이름인 ‘공랑(共郞)’, 승려 이름 ‘범렴(梵廉)’, 조선 시대 울진현령 ‘이복연(李復淵)’ 등 30여 개의 명문을 발견하였다.

‘신유년(辛酉年)’명과 ‘경진년(庚辰年)’과 같은 연대 명문은 국보 제147호 ‘울산 천전리 각석’에 새겨진 ‘을사년(乙巳年, 525년)’명과 비슷한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서기 798년에 새긴 ‘정원 14년(貞元 十四年, 원성왕 14년)’과 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명 등도 발견됨에 따라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그 이후 조선 시대까지 여러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오가며 계속해서 글자들을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은 석주, 석순, 암벽 등에 오목새김(음각)으로 만들었다. 글자 크기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자형이 똑바른 한자 서체인 해서체(楷書體)로 쓰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약간 흘려서 쓰는 서체인 행서(行書)도 일부 가미되어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울진 성류굴 내 각석 명문 - 정원 14년 무인 8월 25일 범렴행 [문화재청 제공]

울진 성류굴 명문의 뛰어난 학술적 가치

이번에 발견된 글자들에는 역사·문화 연구에 있어 진귀한 학술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① 먼저 정확한 방문 시기와 방문자가 표시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정원십사년 무인팔월이십오일 범렴행(貞元十四年  戊寅八月卄五日 梵廉行/정원 14년 8월 25일 범렴이 왔다 간다)’을 보면 ‘정원 14년(貞元 十四年)’이 중국 당나라 9대 황제 덕종의 연호인 정원(785~805)인 것으로 보아 동굴 방문 시기는 서기 798년, 신라 원성왕 14년인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명문에 화랑 이름인 ‘공랑(共郞)’, 승려 이름 ‘범렴(梵廉)’ 등 방문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곳이 오랜 세월에 걸쳐 화랑들이나 문인, 승려 등이 찾아오는 유명한 명승지였으며, 심신을 단련하는 수련 장소로도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울진 성류굴 내 각석 명문- 공랑(共郞) [문화재청 제공]

② 서기 524년 세워진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 나타나는 해서체(楷書體)와 동일한 서체를 보이고 있으며, 성류굴에서 발견한 것 중에는 모래시계 모양의 다섯 오(⧖, 五)자도 3개나 발견되는데 이는 서예사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 의미가 크다.

③ 이곡(李穀)의 관동유기에는 장천(長川)’이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하였는데, 그동안은 ‘긴 하천’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번에 성류굴 명문에사도 ‘장천(長川)’명이 발견되면서, 울진에 있는 하천인 ‘왕피천’의 옛 이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화재청은 한국 고대사 자료가 희소한 작금의 현실 속에서, 이번에 확인된 다양하고 수많은 명문들이 신라의 화랑제도와 신라 정치‧사회사 연구 등을 위한 중요한 사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각석 명문에 대한 실측과 탁본, 기록화 작업 및 동굴 내 다른 각석 명문에 대한 연차별 정밀 학술 조사와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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