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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의 변천사 ①] 가죽과 직물로 만든 갑옷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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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의 변천사 ①] 가죽과 직물로 만든 갑옷에 대해
  • 차연정 기자
  • 승인 2019.09.19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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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물과 생가죽에서부터 무두질한 가죽 갑옷, '두정갑'과 '면제배갑'의 발명까지

[핸드메이커 차연정 기자]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체온을 조절하고 각종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의복을 입어왔다. 오늘날에는 화학 기술로 만들어진 다양한 합성 재료들이 있었으나 초기의 의복은 주로 동물의 가죽, 뼈 혹은 식물에서 나오는 재료, 금속 등으로 만들었다.
 

인류 역사에서 끊이지 않았던 전쟁 [출처-pixabay]

격렬한 전투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갑옷

의복은 평상시 일상에서 입는 용도 이외에도 특수한 활동을 위해서,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려는 의도, 종교적인 의식을 위한 용도 등 아주 다양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전투를 위해 입는 갑옷의 제작은 특수하다 볼 수 있다.

인류는 선사시대에도 사냥을 하거나 혹은 맹수의 위협에 대비해야 했으며 사람들끼리도 서로 전쟁을 일으키고 싸웠다. 그런데 평소에 생활할 때에 입는 직물 옷으로는 칼과 화살, 창, 둔기 등의 '냉병기'로부터 충분히 몸을 보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더 단단하고 두꺼운 갑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했다.

오늘날 현대에는 냉병기가 몰락하고 화약 무기를 의미하는 '열병기'가 대세가 되었기에 굳이 두껍고 무거운 갑옷을 직접 수공예로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현대전에 대비해 첨단 기능을 갖춘 의복을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갑옷은 아주 오랫동안 인류가 만들어온 중요한 물건이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천 과정을 겪어왔다. 중요한 유물이자 문화재인 갑옷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와 환경의 변화와 마주하여 당시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했으며, 어떻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가죽 옷을 입은 기사 [출처- pixabay]

가죽 갑옷의 탄생과 발전

처음에 사람들은 보호를 위해 천을 여러 겹 껴입었다. 하지만 직물 만으로는 보호구로서 충분하지 않았으며 대신 두꺼운 가죽을 활용한 갑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원시인들은 생가죽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건조된 생가죽은 젤라틴과 지방질 성분이 말라붙어 천에 비해 월등한 방어력을 제공했다.

하지만 생가죽은 습기와 세균 등에 오래 노출되면 금방 부패되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가죽을 제련하는 기술을 발전시킬 필요를 느끼게 된다.

신석기 시대부터는 가죽을 무두질한 '레더 아머(leather armour)'가 만들어지게 된다. 무두질은 가죽공예에 쓰이는 기본적인 공정이다. 먼저 물로 가죽을 씻고 잿물과 탄닌, 기름 등을 발라 털과 지방 및 단백질 성분을 제거한다. 그다음 불을 때워 나오는 연기에 가죽을 그을리는 훈제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가볍고 방수가 잘 되며 부패하지 않는 단단한 피혁이 완성된다.
 

건조 중인 늑대 가죽 [출처- pxhere]

무두질을 마친 이 피혁에 기름칠 또는 옻칠을 하면 더욱 단단한 가죽을 만들 수 있다. 옻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인 옻칠은 동양에서 많이 사용된 도료로 방부제, 광택, 방수 등의 기능을 했다. 유럽에서는 석유에서 나온 찌꺼기인 파라핀을 섞은 기름에 가죽을 여러 번 삶아 더 강해진 '보일드 레더 아머(Boiled Leather Armor)'를 만들었다.

동물의 가죽은 소·말·코끼리·코뿔소·악어·곰·호랑이·늑대 등 다양한 종류를 이용했다. 그런데 가죽 갑옷도 완전한 방어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베는 공격에는 뛰어났지만 찌르는 공격에는 상당히 취약함을 보였다. 결국 가죽 갑옷은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는 단단한 금속 갑옷으로 점차 대체되면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천과 가죽이 보호구 재료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금속은 분명 갑옷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재료와 제작 공정의 특성상 가격에서 부담이 많다. 또한 기능적으로도 단점이 없지 않았다. 금속은 방어력이 강하지만 시끄럽고 무거웠기에 은밀한 작전이 쉽지 않았고 강한 충격을 일으키는 둔기류에도 다소 취약함을 보였다.

전투 상황에 따라서는 기동력과 은밀함을 갖춘 가죽이 오히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실제로 1241년 벌어진 리그니츠 전투와 모히 전투에서 몽골군은 가죽을 위주로 만든 갑옷을 입어 기동력을 향상시킨 경기병을 운영한 덕분에 금속으로 중무장한 유럽 보병을 이길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몽골 기병 [출처-pixabay]
청나라의 두정갑 [출처- 위키피디아, BrokenSphere]

직물과 가죽, 금속의 콜라보, '두정갑'

이후, 금속과 가죽의 단점을 모두 보완하기 위해 '두정갑(頭釘甲)'이라는 갑옷이 만들어졌다. 두정갑은 천이나 가죽을 바탕으로 옷을 만들되 철판 조각을 사이사이에 두정못으로 박으면서 함께 누빈 것이다. 주로 소와 돼지가죽을 사용했으며 가죽에 옻칠을 하여 방수 효과를 높였다.

두정갑은 기존 갑옷들에 비해 수리 및 생산의 용이성이 좋았으며 방어력도 충분했다. 말하자면 순수한 금속, 가죽, 천 갑옷의 단점을 모두 보완한 퓨전 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두정갑의 시초는 아시아의 북방민족에게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몽골인들이 이 두정갑을 유용하게 사용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에도 전파했다. 특히 중국과 조선에서도 두정갑을 보편적으로 입었다.

하지만 강력한 화기가 발달하기 시작하자 점차 금속과 가죽은 나란히 밀려나기 시작한다. 대신 기존에 보호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던 직물이 다시 부활하기 시작한다. 화기 앞에서 가죽과 금속은 무력해졌으며 경제적 측면에서도 직물에게 밀려 효용성이 떨어진 것이다.
 

면제배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및 제공]

조선이 만든 최초의 방탄복, '면제배갑'

서구의 위협에 시달리던 19세기 조선에서는 흥선대원군의 명령에 따라 1867년, 김기두와 강윤이 '면제배갑(綿製背甲)'이라는 독특한 면 갑옷을 발명했다. 이들은 수많은 실험 끝에 면과 삼베를 13겹으로 꿰매면 서양인들의 총탄도 뚫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실제 신미양요(1871) 당시 미군의 증언에 의하면 총에 맞은 조선군이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 면제배갑은 불에 약하고 굉장히 덥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이 갑옷은 당시 미군이 노획하여 가져갔으며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렇듯 갑옷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천과 가죽, 금속 등 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종류로 만들었다. 갑옷들에 담겨져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무수히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역사와 기술 발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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