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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의 변천사 ③] 갑옷 끝판왕, '판금갑'의 등장과 갑옷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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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의 변천사 ③] 갑옷 끝판왕, '판금갑'의 등장과 갑옷의 몰락
  • 차연정 기자
  • 승인 2019.10.02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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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최종병기, 강철로 만든 '플레이트 아머', 그 변천과 몰락에 대해

[핸드메이커 차연정 기자] 선사시대에서부터 중세 시대까지의 갑옷의 역사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갑옷들이 등장한 역동적인 시기였다.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렀고 전쟁의 승리를 위해 더욱 효율적인 기술과 무기를 동원하고자 했다. 물론 갑옷에 대한 연구와 개발도 여기에 포함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들이 놓인 환경과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효율적이고 강력한 갑옷을 개발했다.
 

출처-pixabay

갑옷의 결정체, 판금갑의 등장

중세 말기에 이르면 지금까지의 갑옷들을 뛰어넘어 냉병기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갑옷의 결정체가 등장한다. 바로 강철로 만든 '판금갑(板金甲)'이다. '플레이트 아머(plate armour)'로도 불리는 판금갑은 강철로 전신을 빈틈없이 보완하면서 방어력과 편안한 움직임을 모두 가능하게 했다.

플레이트 아머는 금속 제련 기술 발전과 관계가 깊다. 강철은 철과 탄소가 만나 더욱 단단해진 합금이다. 강철은 예전부터 만들어졌으나 중세의 대장장이들은 철을 고온에 달구어 망치질을 하는 단조로 탄소 함유량을 조절했고 담금질을 여러 번 하여 열처리된 더욱 질 좋은 강철을 만들 수 있었다. 강철은 웬만한 냉병기의 공격은 모두 무력화할 수 있을 만큼 강했다.

판금갑은 셀릿, 아흐메, 바르부타 등 얼굴 전체를 덮는 투구와 가슴을 덮는 흉갑, 배를 덮는 배갑, 건틀릿 장갑, 팔꿈치, 신발, 다리 등 신체의 전 부위를 나눠 각자 강철판으로 만들고 각 부분을 리벳(금속을 잇는 대갈못), 끈, 경첩, 버클 등으로 연결하여 전신을 둘러쌌다.

판금갑이 너무 무거워서 움직임이 심하게 둔해지며 혼자 말을 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과장된 이야기이다. 물론 초창기 갑옷은 더 무겁기도 했지만 점차 제련 기술의 발달로 갑옷의 실제 무게는 18kg~25kg 정도로 줄었으며 전신에 분산됐고 관절 별로 유연하게 제작되어 웬만큼은 민첩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판금갑 부위들 [출처- pixabay]

유럽에서 활약한 판금갑

판금갑은 중세 유럽 기사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갑옷이다. 실제로 판금갑은 유럽에서 특히 크게 발전했다.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했던 동양 국가와 달리 중세 유럽은 오랫동안 지방분권화된 봉건체제하에서 군대의 상비화, 정예화에 더 힘을 기울일 수 있었을 것이다. 오스만 투르크 역시 판금갑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대체적으로 쇄자갑을 고수했다. 또한 중국과 조선에서는 두정갑을 주로 사용했다.

플레이트 아머는 15세기부터 완전한 한 벌의 형태가 개발되었다. 이후 유럽 전역에서 애용하는 갑옷이 되었다. 각 유럽 왕실에서는 직접적인 지원으로 공방을 세우고 장인들을 모아 최대한 대량으로 플레이트 아머를 생산하도록 했다. 15~16세기의 유럽 군대는 많으면 전체 군대의 60%가 이 판금갑으로 무장하기도 했다.

물론 플레이트 아머의 전신 세트 가격은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때문에 굳이 전신을 가릴 필요가 없는 궁수와 석궁수 혹은 가난한 병사들은 전신이 아닌 일부 부위만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판금갑을 생산하는 대장장이들

플레이트 아머의 종류

플레이트 아머는 나라마다 다양한 양식으로 생산됐다. 고딕 양식의 독일 갑옷은 인체의 곡선을 배려한 디자인으로 움직임이 편했으며 강판에 선을 새기는 플루팅으로 예술적인 아름다움도 더한 갑옷이었다.

고딕양식 [출처- 위키피디아]



밀라노 양식은 둥글둥글한 라인과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형태로 비싸고 하나하나 예술성을 가미하여 단품으로 만든 고딕 양식과 달리 대규모 공장에서 분업체제로 대량생산됐다. 이렇게 독일과 이탈리아가 당시 판금갑 제작을 주도하였으며 이후 장인들이 각 유럽으로 건너가 전파했다.

이탈리아형 판금갑 [출처- 위키피디아]

영국에서는 이들 이탈리아와 독일의 양식을 절충하여 그리니치 왕립 공방에서 만든 그리니치(Greenwich) 양식의 갑옷이 쓰였다. 이 갑옷은 점차 영국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했으며 이후에는 금과 은 등을 도금하거나 그을림, 자수 등을 통해 아름답게 장식했고 전투보다 마상용 경기 등에 쓰이게 된다.
 

막시밀리안 아머 /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막시밀리안 아머(Maximilian armour)는 16세기 초 신성로마제국에서 개발된 것이다. 역시 이탈리아와 독일형을 절충하였고 여러 곳에 세로로 된 홈이 파여져 있는데 이는 여러 공격을 튕겨낼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며 무게도 가벼워졌다.
 

후방 부싯돌로 발사하는 수석식(수발식) 소총 [출처- 위키피디아]

화기의 발달로 시작된 갑옷의 몰락

판금갑은 활과 창, 칼 및 망치, 철퇴 등 둔기류 조차도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러한 판금갑의 발전은 이를 공략할 무기의 발전도 촉진시켰다. 미늘창과 장대도끼(폴엑스), 폴암, 워해머 등의 무기는 판금갑의 취약한 부분을 공략하거나 큰 충격을 주기 위해 쓰였다. 물론 이런 무기로도 판금갑에 타격을 입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열병기(화약무기)가 발달하게 되자 강력한 판금갑도 점차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물론 초창기의 핸드캐논 및 화승총 등의 화기들은 판금갑을 뚫을 만큼의 폭발력이 없었으며 위력이 좋다 하더라도 무겁고 제작과 사용이 불편하여 널리 쓰이지 못했으며 판금갑은 계속해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부터 점차 강력한 대포와 수석식(부싯돌을 사용하여 격발하며 위력과 사격 속도를 향상시킴) 머스킷 소총 등이 양산되자 아무리 강력한 재질의 갑옷이라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는 판금갑만의 문제가 아닌 기존 모든 갑옷의 종말이기도 했다. 18세기까지도 판금갑은 일부 귀족 및 장군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장식용으로 쓰였으나 이후에는 이마저도 사라졌다.
 

현대의 군인들 [출처-pixabay]

갑옷으로 알 수 있는 역사의 교훈

오늘날에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탄모와 강력한 합금 소재를 사용한 방탄복 등을 신체 일부에 착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현대 군인들이 입는 군복은 옷의 단단함보다는 기동성, 활동 기능, 위장 등의 다른 요인을 우선으로 고려해 제작됐으며 기법과 재료는 일상생활 의복과의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

수천년간 인류는 기존 의복에 한계를 느끼고 더 단단하고 견고한 방어복을 만들어 입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강력한 화기로 인해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이제는 병사의 장비에서 수공예로 만드는 그 어떤 것도 필요 없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강력한 화력을 가진 열병기와 미리 적을 식별 및 파악할 수 있도록 장착하는 첨단 전자 장비일 뿐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갑옷은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갑옷의 변천사를 보면 당시의 경제, 사회, 과학, 기술 등 모든 것이 수많은 인간의 의지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지식은 현재와 미래를 파악하고 내다보는 데에도 중요한 자산이 된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새로운 소재와 첨단기술로 전신을 보호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투복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미래에 대한 예상을 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상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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