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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과 생애를 담은 자유로운 그림, 빈센트 반 고흐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흐의 이야기, 그의 작품 세계는 어떠했을까?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06.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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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의 자화상', 1889 650x540cm 캔버스에 유채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대중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화가가 아닌가 싶다. 그러한 이미지는 그의 비극적이었던 생애와 그로 인해 전해지는 이야깃거리들이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흐의 죽음에 사용된 권총, 2억 1300만원에 낙찰

지난 19일 AFP 통신에 따르면, 파리의 경매회사 '옥시옹 아르-레미 르 퓌르'가 경매에 부친 7㎜ 구경의 리볼버 권총이 16만 2500유로(약 2억 1300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이 권총은 지난 1890년 고흐가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여인숙 주인으로부터 빌려 자살할 때 쓴 권총이라고 한다. 프랑스 총포사 '르포슈'가 제작한 것으로, 1965년 오베르의 벌판에서 발견됐다. 경매를 주관한 '옥시옹 아르-레미 르 퓌르' 측은 "감정 결과 반 고흐 사망 시점과 이 권총이 땅속에 묻히기 시작한 시간이 정확하게 일치하기에 고흐가 사용했던 권총일 확률이 매우 높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권총이 고흐가 사용한 권총이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고흐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반 고흐 기념관은 성명을 내고 "자살이라는 비극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최근에는 고흐가 자살한 것이 아닌 살해당했다는 '타살설'도 제기되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오늘날에도 고흐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그 이유는 대중이 고흐의 삶에 대해서 많이 알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중산모를 쓰고 커피를 마시는 노신사', 1882, 소묘 49.5x28.5cm [위키피디아]

반 고흐, 그림에 영혼을 쏟아 바치다

그런데 그에 반해, 사람들은 정작 그의 작품 세계와 내면의 예술 정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

지금도 유명한 미술 박물관에서는 필수적으로 고흐의 그림을 수집하며 경매에서도 어마어마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이렇게 고흐가 인정받는 이유는 고흐가 단순히 미친 화가가 아닌, 20세기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화가이기 때문이다.

고흐가 제대로 그림을 시작한 것은 사실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고흐는 어린 시절에도 그림을 그렸고 구필 화랑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곤충과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고 신학을 배워 목사가 되고자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것은 만 27세였던 1880년이다. 이때부터 10년 동안 그의 대부분의 작품을 남기기 시작한다.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와 파리 등을 오가며 미술 교육을 받기도 하였으며 고갱, 베르나르 등 다양한 화가와 교류하며 함께 작업을 했다.
 

'감자먹는 사람들' 1885, 82x114cm 캔버스에 유채 [위키피디아]

초창기 그가 그린 유명한 그림은 1885년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그는 탄광에서 설교사로 일하는 등,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며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감자먹는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한 사람들을 표현한 대표적인 그림이었다.

또한 그동안 소묘 또는 목탄화를 주로 그렸던 고흐는 이때부터 유화도 그리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열애에 실패하고, 가족과 갈등을 겪는 등, 수많은 개인적 난항을 겪기 시작하지만 고흐는 꾸준히 예술가의 꿈을 키워가며 동생 테오의 후원 아래 그림을 갈고닦는다.

파리와 안트베르펜에서 체류하는 동안에는 좀 더 다양한 화가와 교류하며 밝은 색채, 빛의 효과를 탐구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 판화에 깊은 감명을 받은 고흐는 판화의 소재와 원근법, 기법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남부 도시, 아를로 이주한 고흐는 이때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고흐의 수많은 역작들이 이 시대 이후로 나온 것들이 많다.
 

'해바라기' 1888, 캔버스에 유채 [pixabay]
'붉은 포도밭' 73x91cm, 캔버스에 위채 1888 [pixabay] -고흐 생전 유일하게 팔린 유화이다.

고흐 그림의 특징

그는 물감을 짜내서 바르거나 걸쭉하고 거칠게 쌓아올리면서 입체감을 표현하는 '임파스토 기법'을 즐겨 썼다. 또한 일렁이는 붓 터치와 강렬하고 밝은 빛깔 등이 그의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 된다.

얼핏 고흐가 즉흥적인 감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오랫동안 스케치를 하며 그림을 준비했다. 그리고 자연과 풍경 등 그가 좋아하는 소재를 직접 바라보면서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을 좋아했고 기억이나 생각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반면 그의 친구이자 같은 '후기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폴 고갱은 경험과 상상을 그림에 녹여내는 것을 좋아했고 형태, 색의 왜곡을 즐겨 사용했다. 둘은 이러한 예술관과 성격의 차이 때문에 많은 다툼을 겪었으며, 결국 이러한 갈등은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되는 그 유명한 사건으로까지 이어진다.
 

'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채 73.7x92.1cm 1889 [pixabay]
'까마귀가 있는 밀밭' 101x51cm, 캔버스에 유채, 1890 [위키피디아] -고흐가 생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으로 알려졌다

후기인상주의는 사실 어떠한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적 집단이었다기 보다는, 인상주의에서 나아가 각자 개성적 방법을 모색하는 흐름일 뿐이었다. 둘은 공통점보다 각자 자신의 개성이 너무나 뚜렷한 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고흐가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았거나 순응했다면 지금과 같은 그의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화풍과 기법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흐의 생애 자체가 사실 전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언제나 구속에서 벗어나 나만의 새로움과 자유를 만들어 가고자 했다.

고흐의 그림에는 스토리가 있다. 우리가 고흐의 이야기를 다른 화가들에 비해 유난히 잘 아는 것도 그의 특별한 이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 나아가, 그의 그림은 기존 그림과 달리 그 자체의 기법과 모습보다 자신의 내면과 생애를 모두 담아냈다는 것을 이해해야 제대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김강호 기자  cpzm78@handm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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