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커스터마이징 오피니언, 칼럼
[그림을 말하다] 그림 속 풍경 "Pont Van Gogh", 바라본다는 것미처 알지 못했던, 지나고 나서야 보인 그곳의 풍경, 흔적
  • 이황 기자
  • 승인 2019.08.01 18:24
  • 댓글 0
프랑스 아를 시가지/ 이황 기자

[핸드메이커 이황 기자]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를

지중해가 가까운 프랑스 남부 지방엔 아를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아를은 옛 로마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관광명소인데, 고흐가 아를에서 요양하며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아를을 찾은 관광객들의 눈에는 고흐의 흔적보다는 원형경기장이나 공중목욕탕 같은 로마 유적이 더 멋져보인다. 사람들은 고흐가 그린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감상하고 고흐가 머물렀던 곳의 흔적들은 지나쳐버린다.
 

'랑글레의 도개교', 빈센트 반 고흐作, 1888 [출처 위키피디아]

폰트 반 고흐(Pont Van Gogh) "Pont"는 프랑스어로 다리를 의미한다. 즉 폰트 반 고흐는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다리라는 뜻이다. 폰트 반 고흐는 원형경기장과 옛 성벽이 남아 있는 구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원형경기장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을 따라 남서쪽으로 걸어간다면 40분에서 50분 정도 걸린다. 고흐가 아를에서 머물던 노란 집(지금은 남아있지 않다)이 아를 역 근처인 것을 감안하면 고흐가 폰트까지 걸어가기엔 먼 거리다. 고흐가 멀리 나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아를의 도개교 /이황 기자

도개교를 찾아서

사진은 필자가 찍은 도개교 사진이다. 도개교는 배가 지나갈 때 다리가 분리돼 올라가고 배가 지나가면 다시 연결되는 다리를 말한다. 그리고 위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도개교다. 이 그림은 보통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도개교가 아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린 도개교 그림은 아를의 도개교처럼 집게발 모양이 아니다. 또한 아를의 도개교 그림은 고흐가 자신의 화풍을 개발해낸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내가 프랑스 파리 공항에 도착하여 파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떼제베를 타고 곧바로 아를로 향한 까닭은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를에서 6일을 지내며 고흐가 찾아다녔던 장소를 돌아다녔고 마지막으로 간 곳이 바로 도개교가 남아 있는 폰트 반 고흐였다.

사진 속 도개교는 고흐가 살던 시절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원래 장소로부터 2km 떨어진 곳에 관광용으로 복원된 것이다.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원래 도개교는 1930년 아치형으로 다시 건설되었고 그 아치형 다리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시멘트 다리로 교체되었다.

도착한 그곳엔 빈센트 반 고흐의 도개교 그림 팻말이 꽂혀 있을 뿐 관광객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고 있었지만 꼭 시간 때문만은 아닌 듯싶었다. 
 

원형경기장 /이황 기자

아를에서는 고흐의 흔적보다는 로마 유적을 중심으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고흐의 흔적이라고 해봐야 별개 없다. 구시가지 원형경기장 근처에 있는 고흐의 카페테라스에 찾아가서 커피를 마셔도 별 감흥이 없다. 그저 노란색 벽이 보기 좋은 카페일 뿐이다. 누구나 원형경기장을 올라가 내려다보는 아를의 풍경을 선호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찾아간 고흐의 흔적 "Pont Van Gogh". 그러나 나는 결국 실망하고 말았다. 고흐의 흔적을 찾아 먼 곳까지 날아왔건만 한국에서 고흐의 그림을 찬찬히 감상할 때의 감동은 없었다. 인적이 끊긴 곳일 뿐이었다. 고흐가 그림에서 보여준 화려한 색채나 붓 터치는 과장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필자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아를의 날씨와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고흐가 그린 그림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던 것이다. 고흐는 결코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결국 인상주의 화가다. 인상파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깔을 연구하는 화풍이다. 빛과 색깔에 매료된 화가가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릴 거라고 믿기는 힘들다.



고흐의 눈으로 보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2개월이 지나고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사사키 미쓰오와 사사키 아야코 부부가 쓴 「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라는 책이다. 사사키 부부는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풍경과 그림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또한 고흐가 생전에 남긴 편지를 토대로 고흐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부부는 고흐가 그림을 그린 장소에 갔을 때 영적인 분위기의 강렬한 빛을 느낄 수 있다고 그랬다. 내가 느낀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 / 예담 출판

이 책에서 고흐는 원형경기장 같은 역사적 건축물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원형경기장을 그려도 그 속 관중들을 더 생기 차게 그린다. 이 이유에 대해서 사사키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이들 건축물에는 고흐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 없어 모티브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고흐는 색채 없는 회색 돌에는 흥미가 없었다. 고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 점은 자주 논의되는데 여기에 고흐의 본질이 있으며 사람들을 사로잡고 그들의 영혼을 뒤흔드는 시점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길가에 핀 엉겅퀴 하나를 봤을 때 거기서 씩씩한 삶을 발견하면 그림으로 표현했다. 또 아무것도 아닌 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철도 등에서도 비애에 찬 인생의 무대를 보았고 그것을 그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폰트 반 고흐를 보고도 무감각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고흐가 풍경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점과 감각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고흐의 흔적만을 따라갔던 것이다. 이 책에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도 수록되어 있는데 다음은 그 중 일부 내용이다. 

“드디어 마주하게 된 지중해는 고등어 같은 색을 띠고 있다. 초록색, 보라색, 그런가 하면 언제 파랗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빛의 반사 정도에 따라 그 다음엔 분홍색, 그리고 회색으로 변하곤 했다”

 

랑글레의 도개교 다른 그림 빈센트 반 고흐作, 1888

인상파 화가답게 고흐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깔에 관심을 가졌다. 바다는 늘 파란색이 아니다. 파도가 부서지면 하얀색을 띠고, 햇빛에 노랗게 변하기도 하며, 바다 깊은 곳은 검푸르스름하기도 하다. 혹은 에메랄드빛을 띌 때도 있다. 고흐의 색깔에 대한 관심은 결국 세심한 관찰을 통한 사실적 구현으로 이어진다. 고흐는 결코 환상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우리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색깔이 변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서 사물을 그냥 지나친다. 본인의 시각만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 판단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마차가 다니고 배가 지나다니며 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그 시절의 도개교 풍경과 관광용으로 복원된 지금의 풍경은 다르다. 내가 찍은 사진과 고흐가 그린 그림을 단순 비교해 가며 이것이 사실적이고 이것은 비사실적이고 그런 것들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소에 서서 그 장소를 가만히 바라본다면 그리고 세밀하게 변하는 색깔을 관찰한다면 고흐의 그림이 얼마나 사실적인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황 기자  berrylh@hanmail.net

<저작권자 © 핸드메이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황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전통주의 구수한 매력 ①] '우리의 전통주란 무엇인가?'
[전통주의 구수한 매력 ①] '우리의 전통주란 무엇인가?'
장례식에 사용하는 '삼베수의', 일제의 잔재인 것을 아시나요?
장례식에 사용하는 '삼베수의', 일제의 잔재인 것을 아시나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