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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얼굴, 예술가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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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얼굴, 예술가의 자화상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8.06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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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모습을 투영한 다양한 자화상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화가의 작품 주제는 다양하다. 여러 가지 모티브에 의해서 작가는 화폭에 특정한 세계를 담는다. 주로 예술가의 시선에 의해 주제가 그림에 표현되고 다양한 기법이나 영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작품이 완성된다. 외부적인 모습을 관찰하는 작품들이 워낙 많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의 얼굴을 그렸던 화가들의 이야기다. 
 

꽈리가 있는 자화상, 에곤 쉴레,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꽈리가 있는 자화상, 에곤 쉴레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자화상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그려낸 것을 뜻한다. 스스로 화폭 위에 표현해낸 예술가 개인의 초상화라고 볼 수도 있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그만한 의미와 내포된 작가의 의도가 있기 마련이지만 자화상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아름다운 외형에만 집중한 작품보다 자화상이 더 특별한 것은 어쩌면 화가 개인의 자아를 투영한 그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관점으로 그려졌던 예술가의 자화상 

자화상이 특별한 이유는 화가의 관점에서 보는 외부적 세계가 아닌 작가 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많은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작품으로 남겼는데 이는 하나의 예술 작품 그 뒤에 작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어 더욱 의미가 있다. 

예술가들이 자화상을 남기는 방법도 다양했다. 사실적인 표현에 집중해서 자신의 모습을 화폭 위에 그려나간 화가도 있으며, 어떤 화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내면의 심리상태를 추상적으로 담아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화가가 추구하는 작품성이 자화상에 온전히 담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므로 한 예술가의 생애 전반을 보여주는 도구로써 자화상을 감상할 수 있다. 
 

2. shutterstock
예술가들은 자화상을 다양한 이유로 그렸다 /shutterstock

또한 자화상을 자신의 자전적인 삶을 보여주기 위해 그렸던 예술가도 있다. 예술가로서의 인생이나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의 모습을 테마로 작품을 완성해 가며 시대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때로는 화가로서 가지고 있는 자긍심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자화상을 택하기도 했다.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가 꼭 거창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화가는 인물화를 연습하기 위해 수없이 자기 자신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어떤 화가는 모델을 구하기 어려워 스스로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동료 예술가와의 우정 혹은 재정적으로 자신을 지원해줄 다른 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자화상은 이렇듯 예술가들에게 특별한 모티브가 되는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화상은 시야를 통해 볼 수 있는 외부적인 환경을 화폭 위에 담는 것 이상으로 인간의 내면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실하게 돌아볼 수 있는 소재로서 매력을 가진다.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내면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예술가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는 영역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의 모습을 투영한 자화상  

독일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당시 평판 유리가 등장하지 않았던 시기로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볼록한 거울을 통해 보이는 얼굴을 그려야만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볼록한 거울은 왜곡을 통해 상이 맺혀 사실적인 표현이 어렵지만 그의 자화상 작품은 그의 얼굴을 그대로 담은 듯 섬세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3. Albrecht Dür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뒤러는 서양 최초로 독립 자화상을 그린 화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판화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미술 영역 전반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가 1493년 작으로 남긴 자화상 ‘스물두 살의 자화상’이 최초로 화가 스스로의 얼굴을 담은 그림이다. 이 자화상은 자신의 얼굴을 정혼한 약혼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렸다고 추측한다.
 

5. 스물 두 살의 자화상 Albrecht Dür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스물 두 살의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뒤러는 그 후에도 정면의 모습을 담은 독립 자화상을 여러 점 그렸다. 그의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1500년 대 작인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이 있다. 이 자화상을 통해서 화가 개인이 예술에 관해 어떠한 의미를 적용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화폭에는 화가 자신으로 보이는 남성이 갈색 모피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곱슬머리를 하고 있고 손은 그림의 하단 중앙에서 옷깃을 잡고 있다. 언뜻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그림은 중세 성화 속에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자화상 속 포즈도 그리스도가 세상을 축복하는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뒤러 개인이 자신을 대단히 신성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예술가로서 화폭에 새로운 세상을 표현하는 순간에는 화가도 절대자의 모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4.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 Albrecht Dür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신비한 성화의 느낌을 담고 있으나 그럼에도 자화상 자체는 상당히 사실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며 그는 인물화 외에도 자연이나 동물 등 다양한 주제를 화폭에 담으며 작업했다. 무엇보다 자화상이라는 영역을 하나의 완전한 예술 세계로 독립시킨 그는 위대한 화가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빛의 화가로 유명한 ‘렘브란트 반 레인’은 네덜란드의 화가로 풍경화나 역사화, 초상화, 판화 등을 다양하게 그렸다. 그는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부터 단체 초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스스로 얼굴을 그린 자화상은 더 눈길을 끈다. 일단 자화상 작품이 워낙 많다. 그 수만 해도 거의 100점에 가까운데 현대에도 자화상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라고 표현할 만큼 다양한 자화상 작품을 남겼다. 
 

9. 니콜라스 박사의 해부학 수업, Rembrand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니콜라스 박사의 해부학 수업, 렘브란트 반 레인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자화상의 숫자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렘브란트의 인생이 자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초기 작품은 그의 젊은 모습을 담고 있다. 젊은 예술가로서의 패기와 자신감이 드러났던 초기작을 지나며 중기에는 부와 명예를 거머쥔 화가의 모습으로, 후기로 갈수록 돈을 잃고 가난에 빠져 고독한 삶을 살게 되는 늙은 자신의 모습까지도 그림 위에 그린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화가다. 이는 비단 외형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삶이 담겨 있는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함께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렘브란트의 수많은 자화상은 자전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6. 23살의 렘브란트. Rembrand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23살의 렘브란트. 렘브란트 반 레인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7. 34세의 렘브란트. Rembrand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34세의 렘브란트, 렘브란트 반 레인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8. 63세 렘프란트가 사망하기 전 그린 마지막 자화상. Rembrand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63세 렘프란트가 사망하기 전 그린 마지막 자화상, 렘브란트 반 레인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독특한 것은 대부분 예술가의 자화상이 정적인 느낌을 주는 가운데 렘브란트는 다양한 표정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다. 또한 이러한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은 그의 초상화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다양한 표정을 한 자신의 모습을 여러 작업을 통해 그리면서 인간이 가진 복합적인 내면의 심리를 초상화에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렘브란트를 떠올릴 때 빛과 그림자라는 키워드를 생각해낸다. 실제 그는 명암의 대비를 통해서 그림을 표현해내며 그로 인해 극적인 효과를 느끼게 한다. 이는 렘브란트 자신의 자화상에서도 두드러지는 점이다. 


자화상, 예술가의 내면을 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의 자화상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있다. 그는 여러 점의 풍경화 대작을 그린 가운데 자신의 영혼까지 감동을 주는 것은 오직 인물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인물화가라고 지칭했던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듯하다. 

그는 주로 인물을 그리길 좋아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모델을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작가 본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은 이와 연관이 있다. 때론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그려내기도 했다. 

그는 초기 활동부터 꾸준히 자신의 모습을 화폭 위에 담았으며 43점의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고 한다. 물론 그가 초상화를 많이 그린 이유로 꼭 모델의 부재만을 꼽을 수는 없다. 그는 자화상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인물의 내면 그 기본적인 가치에 많은 뿌리를 두고 작업에 임했다. 
 

밀짚모자를 쓴 반 고흐의 자화상. Vincent van Gogh,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밀짚모자를 쓴 반 고흐의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실제 고흐가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도 사진가가 포착한 모습이 아닌 심도 있는 나의 초상을 탐구하는 중이라고 전하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색이나 기법으로 표현하며 화폭 위에 자신의 내면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화상을 그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그가 그리고 싶어 했던 인물화의 기초를 다졌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점묘화는 아니지만 짧은 선들로 이뤄진 고흐의 작업 형태는 자화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섬세하게 자신의 얼굴 하나하나를 표현했다기보다 마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듯 짧은 터치가 돋보인다. 
 

10. 1889년 고흐의 자화상. Vincent van Gogh, Public domain, via
1889년 고흐의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Public domain, via

후에 고갱과 다툼으로 인해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귓불을 잘라버리는 고흐는 그 모습도 그림을 통해 남기게 된다.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은 지금까지도 유명한 자화상 작품으로 현대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당시 동생 테오에게 보내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라고 알려졌다. 
 

11.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Vincent van Gogh,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자신의 삶 속에서 느끼는 내면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화가가 또 있다. 바로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다. 그는 여러 점의 초상화나 자화상, 풍경화 등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멕시코 예술의 독창성과 독자적인 영역을 확립해 더 유명한 화가다. 그의 작품을 보면 민족적인 표현과 색채가 매우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그는 여성 화가로서 자신의 삶과 경험을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칼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자화상이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그는 약 50점 이상의 다양한 자화상 작품을 남겼다. 그는 실제 사실에 환상적인 요소를 접목하여 그림을 그렸고 작품 대부분이 그의 일생의 여러 사건을 보여주는 하나의 자전적인 일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화상, 프리다 칼로, flickr
자화상, 프리다 칼로 /flickr

다소 화려하고 상징적이며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체로 초현실주의 작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본인은 이를 원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의 현실에서 얻은 소재들을 통해 그림의 모티브로 활용했다. 그녀는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얻었고 16살에는 인생을 바꾸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또한 멕시코 벽화 운동의 중심이었던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이 역시 그녀에게 결과적으로 아픔을 겪게 하는 경험이 된다. 남편의 불륜은 칼로를 정신적으로 고통에 빠지게 했고 유산과 불임 등의 사건 역시 칼로가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됐다. 

그는 자신의 독특하면서 아름다운 외모 역시 자화상에 담을 뿐만 아니라 불행 역시 하나의 모티브로 여겼다.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고통과 괴로움을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15. 부러진 척추 - Frida Kahlo, libby rosof, Flickr
부러진 척추, 프리다 칼로 /Flickr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다소 난해한 듯하면서도 민족적인 색채가 뚜렷하고 상징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일생 동안 화가 자신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괴로움과 신체적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개인 내면에 자리 잡은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여성 화가 최초, 누드 자화상을 그리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다. 근대 여성 예술 운동에서 그가 미치는 영향은 빼놓을 수 없으며 서양 미술사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여성 화가이기도 하다. 파울라는 31살에 출산 후 생애를 마감한다. 짧은 일생이었으나 그는 생전 유화와 드로잉 작품을 합해 1,800여 점의 작품을 그렸다. 그중 누드 자화상은 총 6점이다. 
 

자화상,파울라 모더존 베커,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자화상, 파울라 모더존 베커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파울라는 독일 현대 미술을 이끈 화가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으나 당시 그의 예술 활동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독일 화단의 보수적인 성향에 의해서 여류화가였던 파울라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또한 생전에는 고작 3점의 그림을 판매하는 것에서 그쳤다고 한다. 

특히 독일 나치는 파울라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작품을 퇴폐 미술로 분류한다. 나치 정권은 독일 예술의 전통성을 위협하는 예술가들을 퇴폐미술가로 지목했는데 파울라가 이에 분류된 것은 여성으로서 누드화를 그린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파울라의 작품이 인정을 받게 되면서 여성 화가 최초로 이름을 건 미술관이 개관되기도 했으며 그는 짧은 생애 속에서 시대의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는 공동체 화가들이 그리는 자연주의적 그림보다는 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의 몸을 모티브로 관심을 가진다. 이는 파울라가 여성의 신체를 화폭에 담아내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16. 자화상, 호박색 목걸이 반신2. Paula Modersohn-Beck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호박 목걸이를 한 반신 누드 자화상, 파울라 모더존 베커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는 파리로 가서 그림을 배우는 과정 중 여러 거장의 작품에 영향을 받으며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적 작품성을 확장해 나간다. 파리에 체류하면서 세잔, 폴 고갱의 그림과 로댕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또한 독일의 시인 릴케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비록 파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강렬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작품 ‘호박 목걸이를 한 반신 누드 자화상’은 그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여성 작가 미술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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