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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누가 이들을 거지로 만들었나···'거지방'이라는 슬픈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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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누가 이들을 거지로 만들었나···'거지방'이라는 슬픈 유행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04.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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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도 금값이 되어 가는 요즘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요즘은 거의 모든 물가가 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민들의 유일한 낙이라는 소주 한 병도 이제 8,000원의 시대다. 19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대한주정판매는 소주의 주정을 만드는 원료인 타피오카 전분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주정가격을 평균 9.8% 올렸다. 주류 업계에서는 이번 주정 가격 인상으로 인해 소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입 모은다.

식당을 가면 으레 공깃밥은 1,000원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니다. 서울 시내를 중심으로 공깃밥 한 개 1,500원, 많게는 두 배인 2,000원을 받는 곳도 있다. 물가가 오르고 밥 한 그릇을 만드는 데 드는 인건비도 비싸지니 공깃밥 가격도 자연스럽게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요즘 MZ세대들뿐만이라 통칭하지 않아도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는 게 흔해졌다. 무지출 챌린지라는 말이 떠돌고, 이제 점심은 배달을 시켜 먹는 것보다 도시락을 싸 다니는 게 흔해졌다. 밥 한 끼에 만원, 크게는 그 이상 써야 하니 이제는 그 돈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식당에서 15,000짜리 국밥을 먹느니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거나 저렴한 도시락을 먹는 것도 흔하다.

단순하게 돈으로만 따져 봤을 때 15,000원을 쓰는 것보다는 7,000원만 쓰면 어쨌든 한 끼는 해결되고 돈도 그만큼 절약되니 말이다. 자연히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모든 것에 가성비를 따지고 물건에 해당하는 돈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따진다. 옛날엔 천 원만 내도 해결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5천 원, 만원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그만큼을 덜 쓰게 되고 지출을 줄이는 데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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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에 아스파라거스는 이제 사치다 /flickr

물가는 잡힐 생각도 없고, 잡힐 기미도 안 보인다. 그렇다고 삶을 내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 힘들어져도 어쨌든 살아야 하니 사람들은 나름의 방법을 또 찾는다. 무지출 챌린지라는 이름 아래 대형마트에서 음식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그동안은 물을 사 마셨어도 이제는 물을 끓여 먹는다. 도시락도 하나하나 재료를 사는 게 더 비싸니 냉동 도시락을 구매하고, 지인들과 공동구매를 해 값을 줄이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참고로 이것은 본 기자의 이야기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파스타는 2,000원 언저리에 살 수 있고, 큰 맘 먹고 올리브유 큰 것 하나와 마늘을 산다. 저녁마다 오일 파스타를 해 먹으면 한 일주일 정도는 저녁밥에 들어가는 돈을 아낄 수 있다. 밥을 사 먹는 건 비싸고, 냉동 도시락은 질리고, 밀가루나 라면은 매일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고, 그나마 재료가 덜 들어가는 오일 파스타는 극단적으로 모든 재료를 생략해도 올리브유만 있으면 되니 다른 반찬도 필요 없어 자주 먹는다.
 

티끌 모아 언젠가는 태산을 꿈꾼다 /김서진 기자

앱테크라는 이름 아래 어플로 포인트를 긁어 모으는 일도 이젠 흔하다. 사람들은 어플이나 페이 등으로 포인트를 모으는 것을 일명 '온라인에서 폐지 줍는다'고 부른다. 퀴즈를 풀거나 일정 거리를 걷거나 매일 출석 체크를 함으로써 하루에 일정 포인트를 열심히 모으면 나름 쌓인다. 은행 어플에서 모이는 포인트는 나중에 현금화할 수 있으니 어쨌든 하루하루 포인트를 모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티끌 모아 티끌 같지만 안 하느니보단 낫기 때문이다. 
 

버블티를 먹고 싶지만 돈이 없을 때, 그럴듯하다 /인터넷 커뮤니티

절약이라는 노력을 해 봐도 암담한 현실이지만, 젊은 세대들 중 일부는 이 암담함을 오히려 희화화하며 어떻게든 즐기는 모양새다. 4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등장한 '거지방'은 어느샌가 우후죽순 방이 만들어지며 사람들의 열렬한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원래 '거지방'은 한 달에 지출을 어느 정도 할지에 대한 기준을 정해 두고 지출한 비용을 메모해 공유하며 어떤 지출을 했는지에 대해 반성(?)을 하는 방이었다.

거지방 또한 이전 유행했고 지금도 암암리에 유행 중인 무지출 챌린지의 취지와 비슷하다. 돈을 아낄 수 있다면 아껴 쓰고 쓸데없는 지출은 줄이자는 의도다. 그러나 최근에는 온라인의 오픈 톡방에서 만난 사람들이 소위 '쓸데없는 지출'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것이 아닌 유쾌하게 꾸짖는 방식으로 변화하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은 돈을 주고 사먹는 게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거지방이라는 톡방 안 사람들은 한 달 동안 쓸 예산을 정하고 소비할 때마다 기록하며 서로 절약하기를 촉구한다. 개중에는 자신은 이런 식으로 돈을 절약한다며 일명 꿀팁을 주기도 한다. 오픈 채팅방에 '거지'나 '거지방'만 검색해도 수많은 방이 뜨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원래 취지야 돈을 절약하는 방법을 서로 알리고 좀 더 지출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절약이라는 것보다 서로 유쾌하게 노는 '놀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는 글들만 봐도 기상천외한 절약 방법보다 서로 어떻게 하면 더 웃기게 타박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받아칠 수 있는지에 대한 문화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사실 지금의 거지방은 2017년 물의를 일으켰던 한 연예인의 이름을 딴 '영수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과 비슷해 보인다. 시청자의 소비 내역이 적힌 영수증을 보고 해당 사용자의 경제 습관을 분석하는 내용의 이 프로그램은 진행자가 과소비나 불필요한 소비를 했을 때 '그레잇', 또는 '스튜핏'이라 지적하는 것으로 큰 유행을 끌었다.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지금의 거지방과 비슷한 형식으로 저마다 이런 소비에 대한 평가를 물어댔고 대답을 해 주는 소비자들은 '그레잇'보다 '스튜핏'을 훨씬 더 많이 외쳐대며 저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해당 프로그램의 취지도 합리적인 소비는 필요하지만 돈은 최대한 안 써야 하며 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붙임머리는 사치다 /인터넷 커뮤니티
포타는 포스타입의 준말로 개인이 직접 글을 쓰거나, 남이 쓴 글을 유료로 보거나 포인트를 충전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답변은 남이 쓴 글을 보는 데 돈을 쓰지 말고 본인이 직접 글을 쓰란 이야기 /인터넷 커뮤니티

지금도 욜로와 플렉스를 외치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특히 젊은 세대들은 고물가 시대를 맞아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지를 잘 안다. 그래서 거지방에 들어가 있는 인물들은 스스로 자조적일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버블티 한 잔을 매일 사 먹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버블티 대신 물을 마시라 하고,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반을 갈라 점심과 저녁에 걸쳐 나눠 먹는 팁을 서로 전수한다.

거지방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그 꾸짖음이 마냥 따가운 게 아니라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오기 때문에 거지방이라는 장소가 유지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스니커즈에 구멍이 나기 전까지는 새 신발을 사지 말라고 단호히 말하고, 자격증 시험을 위해 문제집을 사야 한다는 말에는 얼마든지 돈을 쓰라는 말이 공존하는 곳이 거지방이다.

누구나 지금 이 현실이 힘든 것을 안다. 아껴야 한다는 것도 알고, 매일 맛있게 마셨던 커피 한 잔을 이제 2주에 한 번 마셔야 하는 것도 안다. 팍팍해진 현실 속 거지방에 모인 이들은 돈이야 당연히 아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서로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한다. 어쩌면 힘든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재미있게 꾸짖고 때로는 독려함으로써 아주 잠깐이나마 현실의 힘듦을 웃음이나 재미로 생각하고 싶은 움직임인지도 모른다. 
 

우거우거!! /인터넷 커뮤니티

현실이 뼈저리게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노력한다. 거지방에서는 모두 익명이라 정확히 서로가 어떤 상황인지는 몰라도 느끼는 것은 다들 비슷하다. 스스로를 거지라고 칭하는 그들은 본인이 거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떤 거리낌도 없어 보인다. 이들이 왜 자신을 거지라 칭하며 거지방이라는 장소를 만드는지에 대한 것을 뼈저리게 헤아려야 하는 건 과연 누구여야 할까.

스스로 자신들을 거지라 하며 자조적으로 노는 이 모습들은 이들을 뒤덮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더 씁쓸한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돈을 아끼면서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는 것보다 돈을 아끼면서 조금이라도 덜 절망적일 수 있도록,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거지방에 스스로 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지독하게 차가운 현실과는 참 대조적이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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