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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화기의 발전', 핸드캐논과 화승총, 소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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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화기의 발전', 핸드캐논과 화승총, 소총까지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24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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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형의 포신으로 발사하던 단순한 방법에서 방아쇠, 조준기 등을 갖춘 개인 화기로 발전
개인 화기의 발달은 세계의 역사를 뒤집었다
15세기 초의 핸드캐논 / 위키피디아
15세기 초의 핸드캐논 / 위키피디아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일찍부터 화약을 무기로 사용했던 중국의 기술은 세계 곳곳에 전파됐다. 유럽에 화약이 전파된 것은 13세기 몽골군의 유럽 침략에 의해서였다. 몽골군은 송나라와 금나라에서 사용한 진천뢰, 화창 등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를 받아들여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똑같이 사용했다.

1241년 동유럽을 침공한 몽골군은 리그니츠(발슈타트)에서 폴란드 기사단과 전투를 벌였다. 당시 폴란드의 기록에서는 몽골군이 불을 내뿜는 무기를 사용했으며, 가스가 흘러나와 폴란드군이 이를 알지 못하다가 다수의 사상자를 내었다고 나온다.


유럽에서 발명한 최초의 화기, 핸드캐논

아시아에서 전해진 화약에 유럽인들도 깊은 인상을 받았고 나름대로 사용해보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무기는 핸드캐논(hand cannon)이다. 14~15세기에 나타난 이 무기는 유럽에서는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이면서 모든 개인 화기의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핸드캐논은 총이라기보다는 작은 대포에 가깝다. 사실 화승총의 발명 전까지는 대포와 총의 구분은 애매했다.

중국의 화창과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손잡이는 목재로 구성됐고 포신은 금속을 주조해 만들었다. 핸드캐논은 화약을 많이 사용하여 파괴력이 강했으나 반동이 매우 심했다. 심한 반동으로 어깨나 가슴에 부상을 입을 염려가 있었기에 지지대 등을 사용하거나 성벽에 고정시켜 사용했다.

사용 방법은 많은 화약과 탄환을 총구에 넣고 다진다. 그다음, 심지에 불을 붙여 구멍에 넣어 점화시켜 발사했다. 방아쇠나 조준기가 없어 정확한 조준과 발사 타이밍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 만들어진 핸드캐논 중에는 손잡이 하나에 총신을 여러 개를 만들어 붙여 쏘는 종류도 있었다. 이것은 참신한 시도였으나 장전이 너무 오래 걸려 금방 도태됐다.
 

핸드캐논 사용을 묘사한 그림 / 위키피디아
핸드캐논(총통) 사용을 묘사한 그림 / 위키피디아
승자총통(보물 제648호) / 문화재청
승자총통(보물 제648호) / 문화재청

한국의 핸드캐논, 총통

한국에서는 서양의 핸드캐논과 비슷한 무기로 승자총통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총통 종류는 다양한데 지자총통, 현자총통, 천자총통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천자총통은 길이 1m가 넘은 큰 화포였고 다른 총통도 대포에 좀 더 가까웠다. 승자총통만이 휴대가 가능한 개인화기였다.

승자총통은 끝에 나무 손잡이를 끼워 들고 발사한다. 총구에 화약과 흙을 함께 넣어 잘 섞고 다진다. 그리고 탄환을 넣고 다시 흙을 잘 다져 흘러내리지 않게 한다. 그리고 불붙인 심지를 넣어 격발한다. 이 과정이 상당히 번거로워 미리 장전된 여러 승자총통을 준비하기도 한다. 탄환은 주로 쇠구슬 여러 개를 사용했다.

고려 시대에 최무선이 원나라에서 화약 기술을 들여왔고 각종 총통과 진천뢰를 날리는 완구를 만들어 왜구를 격파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총통은 조선시대까지도 쓰였는데, 대장장이들이 주로 청동 주물 합금을 녹이고 틀에 부어서 굳히는 주조 방법으로 만들었다. 특히 승자총통은 보병들의 전투에서는 임진왜란에서 조총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많이 쓰인 개인화기였다.
 

화승총의 구조 /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화승총의 구조 /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화승총의 발명, 개인화기 체계의 시작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자. 유럽인들은 핸드캐논의 단점을 연구하고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렇게 15세기 후반에 화승총을 발명해낸다. 기존에 단순한 통 형태에 가까운 총신에 화약을 넣고 점화시켜 탄을 날리는 핸드캐논과 달리 화승총은 손잡이, 조준기와 방아쇠를 달아 드디어 총기의 기본적 형태를 갖추게 된다.

노끈으로 된 화승(심지)을 불에 붙여 화문에 갖다 대면 총신 내에 화약이 점화되어 탄환이 발사된다. 기존에는 일일이 손으로 심지를 불을 붙이고 구멍에 넣었지만 화승총은 불붙인 화승을 미리 끼우고 방아쇠를 당기면 연결된 용수철과 물림쇠인 용두가 탄력을 받아 움직여 화문(화약실)에 접착하여 점화시키는 반자동 구조이다.

화승총(조총)을 쏘는 과정을 보면 ① 총구에 화약을 넣고, 나무 꼬질대로 비벼주며 ② 납으로 만든 탄을 넣어 꾹꾹 밀어 넣는다. ③ 그리고 다시 종이를 총구에 넣어 밀어넣고 ④ 방아쇠 위의 화문개를 열고 점화약을 넣어 살짝 흔들어 총열에 흘러가게 한다. ⑤ 그리고 화문개를 닫고 불을 붙인 심지를 끼운다. ⑥ 다시 화문의 덮개를 열고 조준하여 발사한다.

화승총은 핸드캐논보다 명중률이 상승했다. 발사하는 속도도 숙련된 사수의 경우, 1분에 2~3발이 가능해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유럽은 이렇게 화약을 이용한 다양한 무기를 개발했는데, 이제 거꾸로 이 무기를 동양에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화승총, 홍이포, 불량기포 등이 그것이다. 홍이포는 중국에서 붉은 머리를 한 오랑캐(네덜란드인)의 대포라는 뜻으로 지어져 널리 사용됐다.

 

 

꾸준히 개량되어 소총에 이르다

포르투칼인에게 조총을 받아들인 일본은 적극적으로 조총병을 육성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에서도 주력무기로 채용했다. 서양에서는 화승총을 '머스킷(musket)'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점차 유럽에서는 화승(심지)를 쓰는 기존 매치락 대신 부싯돌의 마찰로 점화를 일으키는 수석식(플린트락)을 사용하게 된다.

플린트락은 화승을 따로 사용하지 않아 좀 더 편한 방법이었지만, 사실 두 방식이 큰 차이는 없었다. 조선에서는 부싯돌이 많이 생산되지 못한 이유도 있었으나, 부싯돌의 불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플린트락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어쨌든 당시 머스킷 총은 비가 오면 플린트락이든 매치락이든 모두 사용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창병, 기병이 보조해 주어야 했다. 조선의 총병은 칼을 찼지만 유럽에서는 총에 총검을 달아 총을 보완하기도 했다.

평지가 많았던 유럽에서는 특히 총병 비율이 계속 높아졌고 이에 따라 전열보병 방식이 탄생하게 된다.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패트리어트 늪속의 여우'는 17~18세기 서구의 전투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전열보병은 열을 짠 총병들이 열마다 교대로 사격과 장전을 반복하여 적에게 강력한 화력을 퍼붓는 전술이다. 유럽에서는 이렇게 총기 활용이 늘어났고 개량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이후 19세기 초반 유럽에서는 부싯돌 대신 구리에 뇌홍을 담은 뇌관을 발명된다. 공이가 이 뇌관을 때리면 자동으로 불을 점화함으로 발사되는데, 사격과 장전 속도가 빨라지고 비 오는 날에도 사용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총에 강선을 파고 유선형 탄환을 만들었으며 뒤로 장전하는 후장식으로 개량해 점차 소총(라이플)의 형태로 발전한다.

꾸준한 기술적 진보를 이뤄진 소총으로 무장한 서구 군대가 19세기부터 동양을 침략해왔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화기는 그때까지도 계속 화승총의 형태에 머물렀다. 그리고 서구의 소총과 군함, 대포 등에 충격을 받아 조선, 청나라, 일본은 각각 이 신무기를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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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플 소총 / 픽사베이

무기 발명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

무기는 사람을 살상하는 폭력적인 도구이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람들은 무기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연구가 사회와 기술의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기술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 했다. 현대 국가의 국방력도 그 나라의 기술 수준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이다.

무기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어떻게 더 빠르고 강하게 만들지, 효율성과 생산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걸 위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발명의 역사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과도기를 거쳤다. 우리는 이러한 고민과 행동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뒤에는 기술자와 수공업자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죽어간 군인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장인들이 모여 도자기, 의류, 생활용품 등 온갖 수공예품을 만드는 '경공장'이라는 관서가 있었다. 무기를 제작하는 군기시도 이 경공장에 속해 있었다.

경국대전을 보면 군기시에 소속된 장인이 가장 많았다고 하니 무기 제작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군기시에는 화살, 활, 칼, 창을 만드는 다양한 장인이 소속되었는데, 특히 화약무기는 화약을 만드는 화약장, 금속제품을 만드는 야장(冶匠, 대장장이), 쇠를 단련하는 연장(鍊匠), 동과 철을 주조하는 주장(鑄匠) 등이 각기 협업하에 만들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들 장인들은 평상시에도 일정량의 무기를 만들어 비축해야 했고 전시에는 더욱 고강도의 노동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무기의 역사를 살펴보며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해준 당시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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