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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잘쏘는 민족의 전통을 잇는 전통장(箭筒匠), 아름다운 화살통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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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잘쏘는 민족의 전통을 잇는 전통장(箭筒匠), 아름다운 화살통을 만들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2.03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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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부터 함께 이어온 화살통과 장인의 역사
전통장이 만든 다양한 화살통 [문화재청 제공]
전통장이 만든 다양한 화살통 [문화재청 제공]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이순신 장군의 강직했던 성품을 알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579년 이순신은 종 4품의 훈련원 봉사로 근무했다. 근무 당시 이순신의 상관인 이조전랑 서익이 자신의 측근을 특진시키려고 하는 것을 이순신은 반대했고 결국 서익의 눈 밖에 났다. 그렇게 상관에게 찍힌 이순신은 종 8품으로 강등당한다.

이후 병조판서 유전이 이순신을 만났는데, 차고 있는 멋진 전통을 보고 그것을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화살통은 이순신의 장인인 방진이 사위에게 직접 만들어준 것인데, 이순신 입장에서는 정승에게 잘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까짓 전통 하나쯤 드리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다만 이것 하나로 저와 정승께서 더러운 이름을 얻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말을 들은 유전도 다시는 화살통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전통이 도대체 어떤 물건이길래 정승이 탐낼 정도였을까? 전통(箭筒)은 화살통을 의미한다. 화살을 넣고 다니는 화살통은 궁술을 위한 필수 도구였으며 전쟁, 수렵, 놀이 등 다양한 상황에서 궁술 활동을 위해 만들었다. 아울러 그 전통을 만드는 장인을 전통장(箭筒匠)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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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성의 필수 소양이었던 궁술 [단원 김홍도의 그림]

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궁술과 화살통

활과 화살은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중석기시대부터는 보편적인 무기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화살통도 비슷한 시기에 함께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재료의 특성상, 오랜 세월로 인해 썩어 없어져 직접적인 유물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고구려의 벽화 그림 혹은 신라, 백제 고분에서 화살통을 꾸몄던 꾸미개 등 전통과 관련된 흔적이 나온다.

고려시대에는 무기 제작을 맡은 수공업 부서인 군기시(軍器寺), 내궁전고(內弓箭庫) 등이 있었으며 이들 부서에 활집을 의미하는 궁대를 만드는 궁대장(弓袋匠)이 예속되었다고 한다. 고려의 궁대장은 활집과 화살집을 모두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경공장과 외공장, 군기시, 공조 등의 부서에서 활과 화살, 화살통을 제작했는데, 이때 화살통을 만드는 장인을 통개장(筒介匠)이라고 불렀다. 조선에서는 궁술이 남자가 갖추어야 할 육예(六藝)로 여겨졌다. 따라서 왕실과 양반 및 일반 양인들도 궁술을 연마했고 전통도 마찬가지로 널리 만들어졌다.
 

동개 [국립민속박물관]
동개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전통(화살통)의
전통(화살통)의 구조

전통 화살집의 종류로는 목재로 만드는 전통 외에도 동개(筒介), 시복(矢箙)이 있다. 동개는 천과 가죽, 시복은 주로 돼지 가죽 등으로 주머니를 만들고 사슴 가죽으로 띠를 만들어 허리에 차 사용했다. 제작이 간편하고 화살을 뽑는 과정이 신속해서 주로 전투용으로 쓰였다. 반면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긴통 모양의 전통은 놀이·연습용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나의 물건을 남보다 더 돋보이고 특별하게 꾸미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물론 군사용으로 사용된 시복과 동개는 수명이 길지 않았으며, 장식보다 기능이 중요시 여겼다. 이에 반해 전통은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도 더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단순한 도구가 아닌 예술 공예품으로서의 특성이 강했다.


다양한 전통의 종류와 제작 방법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화살통을 사용해 전통 또한 신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제작되었다. 가장 흔한 것은 역시 대나무로 만드는 죽전통이었으나 오동나무로 만든 각전통, 자작나무 등으로 만든 화피전통, 종이로 만든 지전통도 있다. 양반 이상의 계층은 더욱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거북껍질로 만든 대모전통, 상어 가죽으로 만든 교피전통, 나전칠기로 장식하는 나전칠전통 등을 들 수 있다.

가장 흔했던 죽전통을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면, 죽전통은 주로 2년 이상 된 맑은 녹색의 왕대나무(왕죽)를 사용한다. 대나무는 밑동부터 위로 90~97cm 정도로 자른 것을 그늘진 곳에 2년 동안 저장하면서 결을 삭힌다. 그리고 묽은 양잿물에 3일 정도 담그거나 삶아서 기름(진)을 뺀다.
 

만드는 도구 / 2019 궁시통 전시 권희정기자
만드는 도구와 재료  / 2019 궁시통 전시 ⓒ권희정기자
전통에 밑그림 그리기 [문화재청 제공]
전통에 밑그림 그리기 [문화재청 제공]
용목조각 [문화재청 제공]
용목(뚜껑)조각 [문화재청 제공]

 

그 후, 몸통 속에 막혀있는 마디를 제거하고 껍질에 문양 조각과 주칠 및 흑칠을 한다. 마개는 나무로 따로 만들어 아교나 민어풀로 붙이고 대나무 못을 박고 그다음 놋쇠판을 다시 대고 박는다. 덮개는 입구 둘레에 맞게 나무를 깎아 조각과 칠을 하고 끈을 달 수 있는 고리목을 만들어 붙인다.

다음으로 많이 만들어진 지전통은 종이를 꼬거나 종이를 겹겹이 발라 만드는 방법을 사용한다. 꼬는 방법은 한지를 노끈으로 꼬아 돌려가면서 짠다. 그리고 옻칠을 한다. 발라 만드는 방법은 목재 모형에 한지를 여러 번 발라 건조시키고 다시 목재를 뺀 다음 문양을 그리고 옻칠을 한다.

대모전통은 내장과 살을 제거한 거북을 6개월 동안 말리고 물에 삶아 얇게 문지르고 갈아낸 거북등껍질을 나무에 민어풀 등으로 붙이며, 어피전통은 상어 가죽을 보름 정도 말리고 붙인다. 전통은 종류가 다양한 만큼, 재료도 다양하며 섬세한 공정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장인은 다양한 재료에 대한 이해와 여러 공구 사용법, 세밀한 손기술, 인내심 등을 갖춰야 했다.
 

대모전통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대모전통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현대의 전통장

현재 남아있는 전통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3호 김동학 장인이 있다. 김동학 장인의 집안은 증조부인 김종연 선생(1821~1864)이 전통을 만들었던 것부터 시작하여 대를 이어받았다. 김동학 장인의 솜씨는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 후쿠다 일본 전 수상 등 외국 정상에게 주는 선물로 만들어질 만큼 뛰어났으며, 1989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등록되었다.

김동학 장인은 여러 전통 공예 장인이 한데 모여 활동하는 경주의 민속공예촌에서 전통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점점 전통의 수요가 줄어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고 기술을 전승 받을 후계자도 나오지 않아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활 잘 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을 활을 잘 쏜다는 뜻인 동이족으로 불렀으며 조선시대에서도 궁술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취미였다. 현재도 한국인들은 세계 스포츠 무대의 각종 활쏘기 종목에서 매달을 석권하고 오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이 만들던 전통은 아이러니하게도 급격히 잊혀지고 있다. 우리 전통은 다른 것에 비해 직접 장인의 손길을 통해 만들어졌기에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품질이 뒤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국궁 자체의 쇠퇴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통은 수천 년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혼이 담겨 있는 물건이므로 포기할 수 없는 문화이다. 전통의 장점을 어떻게 대중에게 알리고 이어갈 수 있을지 그 고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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