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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K-묵향’을 프랑스에 펼치고 오다 – 서예가 인중(仁中)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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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K-묵향’을 프랑스에 펼치고 오다 – 서예가 인중(仁中) 이정화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4.01.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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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요즘이다. 펜으로 글씨를 쓰는 일도 많지 않은데, ‘최근에 붓으로 글 써본 적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있다’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붓’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분위기나 마음, 한 자, 한 자를 정성스럽게 써 내려갔을 모습이 그려지는 신비한 매력을 가진 문방사우다. 그 매력을 가지고 멀리 프랑스에 다녀온 작가가 있다.
 

전시가 진행된 갤러리에서 인중 이정화 작가 / 전은지 기자
전시가 진행된 갤러리에서 인중 이정화 작가 / 전은지 기자

젊은 서예가인 인중 이정화 작가는 지난해 5~6월 프랑스‧영국의 한글학교와 현지 초‧중‧고, 재외동포와 입양인 단체를 방문해, ‘K-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붓 잡는 방법부터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까지 서예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왔다.

전시가 마무리됐다. 소감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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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온전히 자비로 진행했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길 잘했다’하는 확신이 들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야 하는 갤러리였는데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와서 작품을 감상하며 즐거워하는 이들을 보며 감사하고, 그 모습에 감동받았다.
 

프랑스 방문 당시의 일정표. 방문했던 학교와 도시들이 담겨있다 / 전은지 기자
프랑스 방문 당시의 일정표. 방문했던 학교와 도시들이 담겨있다 / 전은지 기자

특별히 프랑스를 방문한 이유는

지인 중에 프랑스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을 아는 분이 있는데, 프랑스에는 한글학교가 여러 곳 있지만 제대로 된 한국 문화 수업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글학교는 한글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들이 모여 시작된 곳이어서, 전공한 선생님이 가르쳐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제안해 주었다. 처음엔 한 곳만 가서 수업하고, 축제 퍼포먼스에 참가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시간 여유가 되면 한 달간 여러 곳에서 수업을 해줄 수 있느냐 권유받아서 다녀오게 됐다.

현장에서 학생들과 수업하며 느낀 K-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어땠나

2013년에 ‘코리아 아유 레디’라는 이름으로 판소리, 대금, 장구, 영상, 서예, 기획을 전공한 친구들과 4개월간 세계 일주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싸이’나 ‘강남 스타일’, ‘BTS’가 알려지기 훨씬 전이어서 K-팝이 그렇게 흥행하지 않았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10년 후, 다시 가보니 K-팝도 물론 좋아하지만,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업하며 서예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점에는 태극이 있고, 가로획과 세로획을 그을 때는 그냥 긋는 것이 아니다. 붓을 들고 생각하고, 중간에 한 번 쉬었다가 맞는지 체크하고, 끝날 때도 왔던 길을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내용이었을 수 있는데도,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멋진 나라다’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수업 모습 / 인중 이정화 작가 인스타그램 @injoongmaobi
당시 수업 모습 / 인중 이정화 작가 인스타그램 @injoongmaobi

펜이 익숙한 이들에게 서예 수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보통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물감이 있어야 하는데, 서예는 블랙 앤 화이트, 먹과 한지로 글을 쓴다고 신기해했다. 학생들의 눈빛이 굉장히 반짝반짝하다(웃음) ‘서예가 외국에도 통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 구상도 2시간 동안 ‘서예를 맛보여 주자’는 생각으로 굉장히 신경 썼다. 기본적으로 한글을 알고, 한글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훈민정음의 원리를 알려주고 자음과 모음을 그대로 써보게 했다.

그다음, 글자를 바르게 쓰는 연습을 한 뒤에 글씨를 꾸미는 활동을 했다. 학생들에게 먼저 ‘이정화’라는 내 이름을 쓰는 걸 보여줬다. 성격에 따라서 동글동글하거나 거친 느낌을 담아 획을 긋기도 하고, 꽃을 그려 꾸며보기도 했다.

그걸 보고 학생들도 좋아하는 단어나 문장 등을 가지고 쓰고 그렸는데 너무 예뻤다. 그래서 “(작품이) 너무 예뻐서 한 장 주면, 내가 간직하고, 한국에서 기회가 되면 전시해 주겠다”고 했더니, 학생들이 러브레터로 써주거나 자기만의 작품을 주기도 했다.
 

작가가 애착이 가는 작품 / 전은지 기자
작가가 애착이 가는 작품 / 전은지 기자

전시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모든 작품이 다 좋지만, 한 가지를 골라본다면 벽면에 붙여둔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우리들은 지구별에 함께 살아요’를 선택하고 싶다. 동요의 한 구절이기도 한데, 수업하며 그 동요가 자꾸 생각났다. 우리는 서로 달라도 지구별 안에 다 같이 사는 동료이고,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모습이 꽃밭에 있는 꽃 같아서 적었던 글이다.

좌우명이 ‘변함없이 변화하는’이다. 이를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나

7살 때부터, 서예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글씨를 써왔다. 점차 성장하면서 내가 인식하는 서예와 사회에서 사람들이 인식하는 서예의 모습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혼자 작품 활동을 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 전시도 그래서 열게 된 것이고, 2021년에는 ‘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라는 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프랑스 수업 당시 서예 퍼포먼스 중인 이정화 작가 / 인중 이정화 작가 인스타그램 @injoongmaobi
프랑스 수업 당시 서예 퍼포먼스 중인 이정화 작가 / 인중 이정화 작가 인스타그램 @injoongmaobi

특강을 할 때도 학생이 100명이어도 그 수만큼 꼭 붓을 가져간다. 서예의 맛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붓이 ‘변함없는’ 부분이라면, 벼루나 먹을 모두 들고 갈 수 없기 때문에, 먹물로 가져가서 수업하는 게 ‘변화하는’ 부분이라고 할까.

프랑스에서 수업할 때도 좌우명을 유념해 두고 준비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반신반의하며 어려워하는 것이 서예인데, 그들에게는 더 생소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한번 해보자’하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 2시간 안에 서예가를 만들 건 아니니 ‘서예와 사랑에 빠지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내용을 다듬었는데, 재미있게 받아들인 것 같다.
 

프랑스 수업 당시 서예 퍼포먼스 중인 이정화 작가 / 인중 이정화 작가 인스타그램 @injoongmaobi
프랑스 수업 당시 서예 퍼포먼스 중인 이정화 작가 / 인중 이정화 작가 인스타그램 @injoongmaobi

‘서예는 달빛에 우주를 담아놓는 것’이라는 정의도 인상깊다

서예에는 어두운 먹과 백색의 한지, 두 가지 색이 있다. 한지는 단순한 화이트가 아니라, 은은한 달빛의 색이다. 백자를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먹은 우주의 색깔을 띤다는 생각이 들어, 달빛에 나의 우주를 담는 것이 서예이며, 달빛에 우주를 담아내는 만큼 함부로 글씨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도, 비슷한 이치를 이야기해 준다. 달빛과 우주가 영원한 것처럼, 한지도 5천 년 이상을 가기 때문에 그 위에 쓰는 글씨도 좋은 말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봉쥬흐 인중’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 / 전은지 기자
‘봉쥬흐 인중’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 / 전은지 기자
‘봉쥬흐 인중’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 / 전은지 기자
‘봉쥬흐 인중’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 / 전은지 기자
‘봉쥬흐 인중’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 갑진년에 '값진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 전은지 기자
‘봉쥬흐 인중’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 갑진년에 '값진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 전은지 기자

전시 이후 작품 활동 계획은

여름쯤 단체전 외에는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다. 청년 서예가들과 매년 함께 단체전을 열고 있는데, 올해는 8~9월쯤 예상한다. 개인전은 아무래도 부담이 좀 있다. 지난해 초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3년 주기로 2025년이나 2026년쯤 생각하고 있다.

이번 '봉쥬흐 인중' 전시를 기획한 이유는 좋은 영향력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수업을 하고, 그 결과물로 이런 아름다운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고, 기회가 된다면 기업이나 단체에서 함께 또 다른 일을 계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또한, 예술가들은 어떤 활동을 할 때, 경제적인 제약이 따른다. 그런 제약을 극복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기회(전시)를 마련하기도 했다.

전시로 마음이 꽉 채워져 있는데, 전시가 끝난 후 그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 기자 코멘트

전시가 펼쳐진 갤러리와 이정화 작가는 공통점이 있었다. 작고 아담한 듯하지만, 그 안에 담긴 아우라는 크고 담대하고 아름다웠다. 짧은 글에는 따뜻함이 담겨있었고, 거친 듯하면서도 힘 있는 필체는 과연 이 작가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탄하게 만들었다. 이 작가라면, 서예가 또 다른 ‘한류’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해보게 됐고, 붓을 한번 잡아보고 싶다는 도전정신도 불러 일으켰다. 그야말로 붓이 잘 어울리는 사람, 묵향이 나는 사람이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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