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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프랑스의 따뜻함을 붓으로 느끼다, 30일간의 서예 수업 ‘봉쥬흐 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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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프랑스의 따뜻함을 붓으로 느끼다, 30일간의 서예 수업 ‘봉쥬흐 인중’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4.01.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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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지난 12일부터 20일까지 북촌 코너갤러리에서는 서예가 인중 이정화 작가가 프랑스‧영국 학생들과 소통하며 기록한 서예 작품을 전시한 ‘봉쥬흐 인중’이 진행됐다.

이 전시는 이정화 작가가 2023년 5~6월 한 달간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10여 도시의 한글학교와 현지 초‧중‧고, 재외동포와 입양인 단체 등 학생 800명과 함께 서예 수업을 진행했던 기록을 담고 있다.
 

‘봉쥬흐 인중’ 전시가 진행된 코너갤러리 전경 / 전은지 기자
‘봉쥬흐 인중’ 전시가 진행된 코너갤러리 전경 / 전은지 기자
갤러리 오픈 시간부터 찾아온 관람객과 작품 설명 중인 이정화 작가 / 전은지 기자
갤러리 오픈 시간부터 찾아온 관람객과 작품 설명 중인 이정화 작가 / 전은지 기자

전시 막바지인 지난 19일 방문한 갤러리에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과 학부모로 보이는 이들이 작품을 감상 중이었다. 학생들은 프랑스‧영국 학생들이 서툰 솜씨로 쓰고 그린 작품을 보며 신기해하고 감탄했다.

2시간 수업의 결과물, 상당한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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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아담한 갤러리에는 프랑스‧영국 학생들이 붓으로 직접 쓴 서예 작품 200점과 인중 이정화 작가의 서예 작품 10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 내부 전경 / 전은지 기자
전시장 내부 전경 / 전은지 기자

작품들은 학생들이 서예를 가르쳐 준 이정화 작가에게 전하는 짧은 메시지나 글귀, 자신의 이름 등으로 통유리 벽면을 가득 채웠다. 수업 당시 이정화 작가가 “작품이 너무 예쁘다. 한국에 돌아가면 전시할 테니, 작품을 하나 나에게 달라”고 학생들에게 요청했고, 학생들이 흔쾌히 한 장, 두 장 선물해 준 작품이라고 한다.

이정화 작가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서예 수업이었지만, 학생들이 모두 반짝이는 눈으로 붓을 쥐고 재미있게 글씨를 썼다”며 당시 수업 모습을 회상했다. 갤러리 곳곳에는 당시 수업을 진행했던 모습을 촬영한 사진도 함께 있어, 즐거운 분위기를 짐작게 했다.
 

/ 전은지 기자
문자도처럼 이름을 꾸민 학생들의 서예 작품 / 전은지 기자

이름을 쓴 학생들은 마치 ‘문자도(文字圖)’를 떠올리게 하듯,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적은 뒤에 그림으로 예쁘게 꾸몄다. 서예라는 우리나라의 전통공예를 낯선 문화가 아닌, 관심 있는 나라의 멋진 문화로서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수업을 들었던 한 프랑스 학생은 “지금까지 나는 한국에는 K-Pop과 같이 반짝반짝한 문화만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 보니 그렇게 반짝일 수 있었던 이유가 서예처럼 Deep한 문화가 있는 덕분이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정화 작가는 “가슴 속에 평생 남을 것 같다”며 감동했다고 전했다.
 

/ 전은지 기자
감사함을 전한 작품들 / 전은지 기자

작품 중에는 이정화 작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편지도 많았다. K-pop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이지만, 그 외에도 서예라는 멋진 문화가 있었고, 가르쳐 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붓으로 전한 셈이다. 서툰 한국어로 전한 인사였지만, 그 진심만큼은 무게를 잴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함이 느껴졌다.
 

/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개성 넘치는 문구와 글씨를 써서 그림을 그린 작품, 멋진 글귀를 적은 작품도 있었다. 짧은 시간에 배웠다기에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는가 하면, 서예라는 전통문화와 외국인의 감성이 결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 전은지 기자
수업 당시 사용했던 붓 / 전은지 기자
/ 전은지 기자
학생들이 사용한 붓은 모두 이정화 작가가 세척하고 말려서 사용했다고 한다 / 전은지 기자

전시장 한쪽에는 수업 당시 학생들이 사용했던 붓이 전시돼 있었는데, 먹물이 물든 흔적과 거칠어진 붓 모양을 보면 얼마나 열의가 넘치는 수업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정화 작가는 “수업이 끝나고 호텔에서 붓을 2시간 넘게 씻는 게 힘들었지만, 붓을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너무나 잘 따라와 주어서 뿌듯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모습에 감명받은 작가의 작품

이정화 작가의 서예 작품들 / 전은지 기자
인중 이정화 작가의 서예 작품들 / 전은지 기자

전시장 안쪽에는 이정화 작가가 수업하며 학생들에게 느꼈던 감정과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이정화 작가가 직접 해주는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니, 마치 수업했던 교실에 앉아있는 듯 생생했다.
 

/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학생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밭에 심어진 씨앗이며, 수업에 함께한 선생님과 학부모의 모습을 하늘과 땅으로 비유해 ‘마음밭에 촘촘히 심어진 씨앗은 하늘의 사랑과 땅의 응원으로 나무가 된다’라는 글을 썼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가르침과 부모님의 사랑으로 길러져, 멋진 나무처럼 자라난다는 뜻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이 작품은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이지만, 이곳에서 ‘한국’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재외동포와 입양인에게 느낀 감정을 담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 먹물이 물든 한지와 뿌리처럼 깊고 단단한 느낌의 글씨체는 단순한 ‘글’로 보이기보다 작가의 마음이 온전히 다가오는 듯하다.
 

/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이 작품 역시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와 ‘서예’라는 문화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낮과 밤은 완벽히 다르지만 그들이 모여서 하루가 되듯이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이유도 너와 내가 다른 덕분이다’라는 글이 전통 서책처럼, 세로쓰기로 적혀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이 작품은 영국에서 수업했을 때의 분위기를 담았다고 한다. 작가는 당시 학생들이 반응이 없고 조용해서, 수업이 잘 되고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업의 결과물을 보고는 감동해 쓴 글이라고 한다. ‘꽃과 나무가 자라나는 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아도 봄은 분명히 온다’는 글과 마치 개나리가 피어난 듯 흩뿌려진 노란 물감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전시장 밖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은 작가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고른 것이기도 하다. 당시 퍼포먼스를 하며 적은 글로,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우리들은 지구별에 함께 살아요.’라는 내용을 담았다. 동요의 한 구절이기도 한데, 학생들은 꽃처럼 예쁘고 아름답고, 우리는 모습은 다르지만, 지구별에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따뜻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전은지 기자
전은지 기자

지난 20일 마무리된 ‘봉쥬흐 인중’은 작고 소담한 전시였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작품과 마음만큼은 대형 전시장 못지않았다. 작품만 보면, 서툰 솜씨로 글씨를 배운 학생들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은은한 먹의 향기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날아온 ‘꽃’들의 작품이 ‘지구별’ 어딘가에서 크게 자라나 멋진 나무가 될 것 같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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