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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백색의 흙에 장인의 생명력과 동시대 작가들의 능력을 불어넣다, 《백자: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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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백색의 흙에 장인의 생명력과 동시대 작가들의 능력을 불어넣다, 《백자: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11.1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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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서울공예박물관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백자는 희고 단단한 그릇을 뜻한다. 백색의 흙을 빚어 장식을 새기고 투명한 유약을 입혀 1250도 이상의 화염을 견디면 치밀한 인공광물로 변성하여 완성된다. 백자는 도기나 청자와 비교해 더 희고 얇고 가볍고 내구성을 자랑하여, 차가움과 뜨거움을 가리지 않고 온전히 담아내고, 다채로운 색채로 꾸밀 수 있는 여백을 지녔기에 백색의 단일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균형을 잃으면 찰나에 깨어져 본연의 쓰임을 잃어버리는 이중적 생명력을 지닌 사물이다.

 《백자: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전시는 서울공예박물관이 2020~2021년 진행한 ‘백자공예상자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성과를 소개하고, 재료와 기법에 대한 실험을 통해 한국 백자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하고자 기획했다. 백자는 어떻게 세상에 나와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이자, 일상의 그릇으로 사랑을 받은 것일까. 
 

서울시유형문화재 제478호 백자청화 파초 국화무늬 호 /김서진 기자

故 김환기 화백이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감탄했던 조선의 백자는 오늘날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으로, 또 우리들의 일상을 반려하는 공예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달라진 환경 속에서 자연의 재료로 사람이 만든다는 변함이 없는 본성에서부터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우리나라는 고려 초기, 10세기경 청자와 함께 백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15세기 후반 사옹원 산하에 '분원'을 설치해 본격적으로 백자 생산체계를 갖추었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백자는 다채로운 빛깔과 색채로 변화했지만 그 바탕의 재료와 물리적인 본성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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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모(백운모), 장석(미사장석) /김서진 기자
남동석, 공작석, 산화코발트(코발트 방해석) /김서진 기자

백자의 골격을 만드는 흙, 빛깔을 내는 유약, 아름다운 장식에 사용되는 안료는 모두 광물과 암석에서 찾아낸 것이다. 장인들은 단단하고 가벼운 백자를 만들기 위해 높은 온도를 견디는 바탕흙(태토)을 찾아 실험을 반복했다. 자연의 재료들이 지구의 역사가 빚은 천연 광물이라면 백자는 장인이 축적한 레시피로 구워낸 인조 광물이다.
 

백자의 주요 성분인 고령토, 장석, 규석의 나열. 마지막 줄은 도자기 산화철 함량과 백색도 /김서진 기자
진주백토 암석, 진주백토 분말 /김서진 기자

순백, 설백, 은회, 유백, 청백 등 조선백자가 다양한 색으로 형용되는 건 백토의 지역별 특징의 차이와 번조 분위기에 따라 다른 빛깔을 띠기 때문이다. 태토에 산화철이 적을수록 흰색이 되며 점토를 물속에 침전시켜 불순물을 제거하는 '수비' 과정을 통해 철 성분을 제거하는 '탈철' 작업을 반복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토는 점성이 높고 가소성이 낮아 큰 기물을 만들기에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장인들은 조선 초기부터 질 좋은 백토를 구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이러한 그들의 활동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각 지역의 흙 /김서진 기자
안료 종류 /김서진 기자

조선 왕실에서는 품질이 좋은 백자를 만들고자 전국의 흙을 채취해 실험했다. 조선에서는 15세기 청화백자가 만들어졌는데 검약을 미덕으로 삼는 유교 사회에서 청화백자는 사치 풍조로 지적되기도 했다. 장인들은 값비싼 안료를 낭비하지 않고 최고의 작품을 얻기 위해 부단히 실험을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을 이어 가며 조선백자는 고유한 미감을 지니게 됐다. 
 

안료팔레트 /김서진 기자

조선 전기 성종 연간에 중국을 통해 회회청 원석이 수입되었으나 사용법이 미숙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산화철 성분이 낮고 산화망간 성분이 높은 중국산 청화 안료가 수입되었다. 당시 이미 코발트 원광을 고온에서 구우면 원광에 포함된 산화망간과 산화철의 함량이 낮아져 코발트 안료의 순도가 높아지는 것까지도 이해하고 있었다. 
 

빛깔을 입히다. '백자 호' /김서진 기자
형상을 본뜨다. '백자투각 파초무늬 필통', '백자청화 두꺼비모양 연적' /김서진 기자
'백자녹청화 모란무늬 호' /김서진 기자

조선시대에는 비싼 코발트 안료를 민간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그 수요를 통제할 수 없었다. 주로 왕실 행사에 사용하던 장식기법인 청화는 조선후기 사대부와 민간으로 확산되어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사랑받았다. 19세기 이후 지방에서는 붉은색(산화구리)이나 녹색(크롬)을 띠는 안료를 청화와 함께 사용하거나 민화풍으로 그린 청화백자도 제작되었다. 분원에서 제작된 '백자청화 파초 국화무늬 호'와 해주 가마에서 제작된 파초 무늬 호를 비교하면 청화백자의 화풍 및 안료 배합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백자청화 철화 파초 국화무늬 호' /김서진 기자
'백자청화 파초무늬 호' /김서진 기자

백자를 만들 때는 먼저 원료를 가공해 형태를 만들어 적절히 건조되면 표면을 다듬고 무늬를 새겨 850도 정도로 구워낸다. 이렇게 초벌 한 기물 위에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투명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한 번 더 구워 완성한다. 원료의 채취에서 번조까지 단계마다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도구가 사용되는데 도구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 기능적으로 개량되기도 한다. 
 

장인의 도구들 /김서진 기자
다양한 문양 /김서진 기자

조선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와 유교를 바탕으로 국정이 운영되었고 왕실도 그 품격과 규범에 맞는 공예품을 제작해 사용했다. 각종 의례를 위한 기형들이 쓰임에 맞게 만들어지고 문양과 장식을 통해 삶의 품격과 일상의 염원을 표현했다.
 

김선 '꿰다, 엮다 Ⅰ-C', '꿰다, 엮다 Ⅱ-B' /김서진 기자
이인화, 김덕호 '시험편-조용한 변주_Fe' /김서진 기자
윤호준 '백자청화탈봉황문호 -집나간 봉황' /김서진 기자

오늘날 가공된 재료를 손쉽게 구해 작업할 수 있고 요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재료가 지닌 물성은 변함이 없다. 공예가들이 재료를 다루는 방식은 곧 자신만의 공예 언어를 구축하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쓰임에 맞는 형태와 장식 방법을 고민하고 자연과 공간 속에서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며 동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물을 만들기 위한 모색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인숙 '어번정글 no.2020; L3' /김서진 기자
서희수 '무제' /김서진 기자

오늘날 백자는 본연의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재료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어울림을 모색한다. 백자와 다른 재료와 접목하거나 옛 전통을 금속·나전·유리·종이·회화·사진·미디어아트 등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은 백자의 다양한 쓰임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백자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으며 한국 미의 정수이자 원천으로서 창착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전병현 '블로썸' /김서진 기자
김환기 '백자와 꽃' /김서진 기자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조명은 일제강점기 예술인들에 의해 피어났다. 특히 백자 달항아리는 김환기·도상봉 등을 비롯한 예술가들과 최순우 등 미술사 학자들의 예찬 속 그 위상을 구축하였으며 오늘날 세계적으로 한국의 미를 표상하는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백자의 전통은 기술의 재현이나 전승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되면서 다양한 영감을 주고 있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만여 년의 시간을 우리의 삶과 함께 성장해 온 도자공예는 백자의 발명 이후 더 바쁘게 변화했다. 오늘날 치아·반도체·우주선 등의 초정밀 분야에 응용되는 세라믹은 백자의 재료와 기술의 탐구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이 전시는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에서 나아가 바탕 재료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 관계자 측은 "자연의 흙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련하여 빚어낸 우리나라 백자의 다채로움을 확장해 가는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23년 1월 29일까지.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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