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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로 만드는 기묘한 술잔, 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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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로 만드는 기묘한 술잔, 각배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2.02.1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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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배(뿔잔)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소나 물소 등 동물의 뿔을 이용해 만든 잔인 각배는 뿔잔이라고도 부르며, 짐승의 뿔을 썼기 때문에 쉽게 썩어버려 실물이 전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뼈가 아닌 흙이나 금·은 같은 금속으로 만든 뿔잔은 우리나라 말고도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짐승 뿔로 만든 각배는 토기나 금속으로 만든 것도 각배라 부르며, 밑이 뾰족하기 때문에 세우기가 어려워 받침을 따로 만들거나 굽다리 등을 붙이기도 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스키타이 무덤에서 껴묻거리로 많이 쓰였고 우리나라는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해 주로 삼국시대 유물에서 많이 발견됐다.

일반적인 그릇, 또는 제사용으로 쓰인 각배

각배 /flickr

서양에서 각배는 음료를 마시거나, 신성한 의식에서 액체를 따르거나 하는 등의 용도로 쓰인 원뿔 모양의 용기다. 바닥에는 구멍이 나 있으며 음료수잔으로도 쓰였는데 바닥에 내려놓을 때 액체가 자연히 흐르는 구조였다. 위쪽에는 넓은 입구가 있고, 아래쪽에 액체가 흘러나오는 구멍이 있는데 사람들이 음료를 담고 엄지손가락으로 바닥에 난 구멍을 막은 후 음료를 마시는 식으로 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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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배의 영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인 'rhyton'에서 유래했으며 원뿔형 각배의 형태는 청동기 시대부터 에게 해 지역에서 퍼졌다. 다만 이 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선사 시대부터 유라시아 대륙으로도 널리 퍼졌다. 동물의 모습을 본뜬 각배는 멧돼지, 사자 등을 모델로 삼았으며, 기름 같은 액체를 걸러내기 위해서도 종종 쓰였다. 또 어떤 각배는 의식을 치루는 데 바치는 동물 제물을 대신하는 것으로도 쓰였다. 

각배는 페르시아에서 매우 흔했고,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상대로 승리한 이후 많은 금·은과 각배를 포함한 많은 사치품들이 그리스 아테네로 들어왔다. 그리스 예술가들은 페르시아의 각뿔을 많이 모방했고, 세라믹으로 장식된 여러 원뿔형 각배를 만들었다. 다만 짐승의 뿔로 만들어진 각배는 전해지는 건 별로 없고 상아 뿔 모양의 각배 몇 점이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1천년부터 도자기로 만들어진 각배가 나타났다. 

디오니소스 조각상과 각배 /flickr

이 석상의 디오니소스는 물병처럼 생긴 각배를 들고 있는데, 둘은 꽤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엔 전설이 하나 있는데 포도 덩굴이 자라는 곳에서 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와 포도를 먹는 것을 보고 디오니소스가 그 뱀을 쫓아갔다고 한다. 바위 틈으로 들어간 디오니소스는 크레타 산에 기거하는 레아 여신의 신탁에 따라 구멍을 파고 포도를 짓밟으며 춤을 추었다. 이렇듯 여신, 바위, 뱀, 포도 등은 크레타 섬의 일종의 상징으로 각배는 포도 위에서 춤을 추는 의식을 축하하는 용도의 그릇이었다는 설이다. 

그리핀 모양의 각배 /flickr

아케메네스 왕조 때부터 본격적으로 금과 은으로 만든 각배들이 등장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색 각배의 앞부분은 그리핀(griffin)으로,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와 앞발을 가진 전설의 동물이다. 학자들은 손님들이 종종 왕실에서 벌인 큰 연회를 마친 뒤 각배를 집으로 가져갔다고 하며, 왕이 신하들에게 상을 내리는 것으로 각배를 썼다고도 한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 시대부터 파르티아 왕조 말기까지 금박이 섞인 각배가 발견됐다. 이렇듯 각배는 그리스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 고전에서는 치·고·각(角)등 짐승의 뿔과 관련된 그릇을 찾아볼 수 있다. 각배는 기본적으로 휘어져 있는 모양의 각배, 짐승의 머리를 본딴 각배 등이 있다.

정면 모습 /flickr
황소 머리의 각배 /flickr

특히 황소 머리로 유명한 이 각배는, 음료를 입구에 붓고 제사를 지낼 때 황소의 머리를 앞으로 젖히면 입에서 황소의 입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는 식이었다. 이 각배를 채운 액체가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직접 마시는 포도주나, 심지어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피를 담았을 거란 설도 있다. 즉 제사 의식에 쓰인 각배였다면 이 황소의 머리를 모방한 각배는 제물을 바칠 때 동물에 피가 흐르는 의식을 재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짐승을 살육하는 건 옛날엔 위엄을 뽐낸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뿔잔(각배)이 발견되었긴 했지만 그릇 모양이 통통해 삼국시대 이후의 뿔잔과는 다른 형태고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청동기 시대에 사용된 뿔잔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역사시대에 들어오면서 주로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가야지방에서 비교적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확인된 뿔잔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고분에서 발견된 것과 경상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도기말머리장식뿔잔 /문화재청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 2점은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전체적인 형태 및 제작 수법은 거의 동일하다. 뿔잔의 밑부분 끝에 말머리를 빚어 붙이고 그 뒤쪽으로 조그만 다리를 2개 붙여 넘어지지 않게 했다. 말머리의 전체적인 형상은 간결한 솜씨로 다소 거칠면서도 귀·눈·코 등 말의 특징적인 표정을 잘 나타냈다. 말머리장식 뿔잔은 특히 사산조 이란의 토제 뿔잔과의 유사성이 강하며 이러한 뿔잔은 스키타이의 금제 조각품이나 중국 한대의 무덤 벽화에 보이는 것처럼 술 또는 음료를 바치거나 마시는 데에 쓰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시대의 뿔잔은 주로 분묘에서 출토되었는데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까지 급증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인 천마총에서 칠기제 또는 금동제의 각배형 용기와 함께 20개의 쇠뿔이 실물로 출토되어 우리의 뿔잔이 북방유목계 민족들 이 사용하였던 원래의 뿔잔에서 유래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서양처럼 기본적인 뿔 모양이기도 하지만 수레바퀴 모양이나 받침대 모양 등 형태가 다양하다.

『삼국유사』 탈해왕조에 뿔잔의 존재와 그 용도를 알려주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백의가 물을 떠가지고 오다가 중로에서 먼저 맛보고 드리려 하니 그 뿔잔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탈해가 이것을 보고 꾸짖으니, 백의가 맹세해 가로되 이후에는 원근을 물론하고 먼저 맛보지 않겠다고 하니, 그제야 그릇이 떨어졌다. 이로부터 백의가 두려워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현재까지 출토된 분포권을 보면 대부분 신라·가야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자 철화 풀무늬 각배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초기에는 백자로 만든 뿔잔이 나타났는데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 각배의 전체적인 형태는 쇠뿔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입구 부분은 안쪽으로 말아 넣어 처리하였다. 문양은 뾰족한 끝부분에서 절반 가까이까지만 넣어 마치 풀처럼 보이기도 하고 철 안료를 칠한 듯 하다. 입구 부분의 유약이 닦여 있어 바닥에 세워 구운 것으로 추정한다. 정제된 형태와 유색, 뿔잔이라는 흔하지 않은 소재와 수가 많지 않은 조선 초기 철화백자의 수작으로서 주목받는 작품이다. 

청자 뿔잔 /국립중앙박물관

백자가 아닌 이 청자 뿔잔은 일반적인 뿔잔보다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며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다. 유약은 옅은 회백색을 띠는 것으로 약간 불투명하여 전체적으로 고르고 잘게 금이 간 빙렬이 보인다. 뿔잔의 중간 부분에 지름 5㎜정도의 오목한 부분이 있는데 바탕흙이 얇아 빛이 투과되는 모습을 보인다. 입구 둘레의 유약이 닦여 있고 가는 모래가 섞인 내화토 받침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꾸로 세워서 구웠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쯤 되면 대체 각배는 어떤 식으로 접합해 만들었는지가 의문인데, 2019년 경남 함안군 말이산 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아라가야 사슴모양뿔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밝혀 화제를 모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5∼6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슴모양뿔잔을 X선 컴퓨터단층촬영(CT)장비로 살펴본 결과, 원통형 뿔잔·몸체 상부·몸체 하부·굽다리를 개별적으로 제작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슴모양뿔잔 좌측 단면 /정책브리핑

즉 사슴 머리는 몸체 하부로 연결되고, 그 위에 상부를 따로 덮은 것이다. 표면은 매끄럽게 다듬었고, 기벽 내부에는 바탕흙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손으로 누른 흔적이 있었다. 머리와 목 부분은 흙으로 채웠으나 원통형 뿔잔과 연결된 몸체 내부는 액체를 채울 공간이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박종서 학예연구관은 “사슴 형상 머리를 지탱할 수 있도록 몸체 바닥 부분을 먼저 만든 뒤 원통형 뿔잔과 붙은 몸체 상부를 접합하고, 굽다리 받침을 연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정리했다. 

각배 /flickr

동양이나 서양의 각배는 일상생활용품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제례나 매장 의식 등 특수한 의례에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배의 밑부분은 동물의 머리로 변형시킨 것이 대부분이며 각배를 세워서 사용하기 위해 동물의 목 부분을 길게 늘이고, 양쪽으로 소형 받침 2개를 붙여 공학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각배는 이형토기이자 의례적인 유물로, 당시의 토기 문화와 조상들의 정신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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