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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뿔로 만드는 뿔피리, 세상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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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뿔로 만드는 뿔피리, 세상을 울리다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1.02.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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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에서 모두 사용한 가장 원초적인 악기
아르헨티나 에르켄초 / 위키피디아
아르헨티나 에르켄초 / 위키피디아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서양의 사극 영화를 보면 원추형의 뿔 모양을 한 뿔피리가 자주 등장한다. 전장에서 혹은 도시의 중심에서 이 뿔피리는 아주 웅장하고 넓은 소리를 내어 사방을 진동시킨다. 물론 뿔피리는 동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악기였다.

짐승의 뿔은 다양한 공예품과 예술품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는데, 세계 곳곳에서 쓰인 뿔잔인 각배(角杯)와 뿔피리가 특히 대표적인 유물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소뿔을 얇게 갈아서 판을 만들어 공예품을 만드는 화각공예가 성행했다. 뿔은 산양, 코뿔소, 소, 염소,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의 것을 취해서 사용했다.


가장 원초적인 전통 악기, 뿔피리

북유럽 신화에는 헤임달의 뿔피리인 걀라르호른(gjallarhorn)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뿔피리는 거인인 미마르의 뿔잔을 오딘이 다시 악기로 만들어 헤임달에게 준 것으로 세상의 종말인 라그나로크(ragnarokkr)가 다가오면 헤임달이 걀라르호른을 불어 전 세계에 알렸다고 전해진다.

뿔피리는 짐승 뿔의 속을 파내고 가공해서 만들었으며, 서양에서는 여러 관악기의 기원이 되었다. 오늘날 대표적인 금관악기인 서양의 호른(horn)은 지금은 쇠로 만들지만 초기에는 뿔로 만들었으며 단어 자체가 원래 뿔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뿔이 어떻게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악기로 만들어졌을까?

뿔피리는 기본적으로 바람을 불어넣는 취구와 벨, 소릿구멍(지공), 관으로 이루어지는데, 취구로 공기를 불어넣으면 넓은 반대쪽 구멍인 벨을 통해 진동과 함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옆으로 뚫린 소릿구멍인 지공은 이 소리를 조절하여 다채로운 연주를 가능하게 해준다. 짐승의 뿔만이 아니라 목재, 금속을 사용하여도 비슷한 구조로 악기를 만들 수 있다.

부치나(buccina)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악기이다. 전체 길이가 약 3m에 이르는 큰 악기이다. 곡선 모양의 동물 뼈가 둥글게 감겨 연주자의 몸을 감싼다. 뼈에 청동을 덧씌우기도 했고 나중에는 완전히 청동으로 만들기도 했다. 악기는 목동이 양 떼를 불러 모으거나, 군대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다양한 동물의 문양을 장식한 올리판트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소장) / 위키피디아
다양한 동물의 문양을 장식한 올리판트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소장) / 위키피디아

상아로 만든 값비싼 악기, 올리판트

올리판트(oliphant)는 중세 시대의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사용한 관악기로,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형태의 뿔피리이다. 하지만 값비싼 코끼리의 상아를 사용했고 화려하게 장식했기에 왕족과 귀족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약 75개가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 악기는 이탈리아 남부를 중심으로 이슬람 나라들과 무역한 상아로 제작했으며, 점차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 상아는 유럽에서는 구하기 힘든 진귀한 재료였으며, 10세기 북아프리카를 장악한 파티마 왕조에서 많이 수입했다. 그래서 올리판트는 아라베스크 문양 등 이슬람의 미술 양식도 엿볼 수 있다.

올리판트는 아주 정교하게 다양한 동식물과 인간, 기하학적 문양을 조각하였지만 악기의 형태는 취구를 통해 벨에 소리가 나고 따로 지공은 없는 단순한 구조이다. 그래서 악기로서의 품질보다는 재료와 예술성에 가치가 있다. 또한 악기뿐만 아니라 술잔으로 이용되거나, 중세 영주의 권력을 상징하는 용도로서 대대로 물려주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특히 유럽 중세의 유명한 서사시 작품인 '롤랑의 노래'에서 롤랑이 지닌 악기로도 유명하다. 롤랑의 노래는 778년 샤를마뉴 대제의 후위 부대가 이슬람 군에게 기습을 당해 전멸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 당시 부대를 이끌던 롤랑은 올리판트를 불면서 용감하게 싸우다 사망했다고 하며, 천사가 그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겜스호른 / 위키피디아
겜스호른 / 위키피디아

알프스 목동들이 내는 아름다운 소리, 겜스호른

겜스호른(gemshorn)은 알프스 산양의 뿔로 만드는 민속 악기이다. 이 악기의 독특한 특징은 다른 악기와는 달리 좁은 쪽에 구멍을 내는 것이 아닌 뿔의 넓은 쪽에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넓은 부분은 평소에 마개로 막거나 씌운다. 그리고 마개 가장자리에 취구를 뚫고 또한 옆면에 8개의 지공을 뚫는다.

음높이는 역시 지공에 좌우되는데 지공의 크기는 제각각 다양하여, 연주 시 조율을 조정할 수 있다. 연주할 때에는 수평으로 뻗어 악기를 잡고 뿔 가장자리와 마개를 입술로 물어 마개 가장자리에 있는 취구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연주한다. 소프트 리코더와 오카리나의 중간쯤 되는 고운 음색을 낸다고 하며, 춤곡, 캐럴, 마드리갈의 반주에도 사용되었다.

겜스호른은 16세기의 음악가인 제바스티안 비르둥의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때의 비르둥이 그린 겜스호른 그림은 엄지손가락용 지공과 나머지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지공이 있다. 이 형태는 한 옥타브의 음역만을 연주할 수 있었는데, 이후에는 더 여러 지공을 뚫은 것도 있었다.

16세기 이후부터 겜스호른은 그 제작 방법과 계승이 대부분 단절되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고전음악 운동의 붐이 일어나 재조명 받으면서 복원에 성공했다. 겜스호른은 현재 매력적인 음색과 쉬운 연주법 등으로 인기가 많다. 현대의 겜스호른은 소와 염소 등 흔하게 사육되는 동물의 뿔을 재료로 만들고 있다.
 

쿠두젤라를 든 원주민 / 위키피디아
쿠두젤라를 든 원주민 / 위키피디아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부부젤라도 원래는 뿔로 만든 악기였다고 한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와 논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원래 쿠두영양의 뿔로 만든 줄루족의 사냥용 피리인 쿠두젤라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더 좋은 합성 금속 재료가 생겨났다. 이들을 기계로 표준대로 가공하여 고품질의 악기를 만들 수 있으므로, 굳이 뿔을 일일이 악기로 제작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역사 속 이 다양한 뿔 악기들은 현대 수많은 악기의 모태가 되었으며, 주변의 재료를 이용해 크고 다양한 소리를 내는 법을 깨우친 옛사람의 지혜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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