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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핸드메이드 도시] 멕시코 과달라하라 근방에는 예술인들의 도시가 있다, 뜰라께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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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핸드메이드 도시] 멕시코 과달라하라 근방에는 예술인들의 도시가 있다, 뜰라께빠께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10.15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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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라께빠께의 한 상점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멕시코 할리스코 주 과달라하라 남쪽에 인접해 있는 뜰라께빠께의 이름은 나우아틀어(아스텍족 언어)로 '진흙 땅 위에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곳은 도자기와 각종 공예품, 블로운 글라스(불거나 압축으로 성형하는 유리 제품)등으로 유명하다. 세도나에서는 유명한 예술인들의 촌이기도 하다. 

1845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지어진 세인트 피터 대성당은 뜰라께빠께의 정신적 지주 중 하나며 비잔틴, 바로크, 로마 등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국립 도자기 박물관인 판두로 판탈레온 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지역 도자기 박물관들이 있으며, 이 곳에는 멕시코와 다른 지역의 작품들을 포함한 전시관을 갖고 있다. 몇몇 전시관은 예술과 문화 관련 전시로도 쓰이고 거리 곳곳에는 여러 갤러리와 샵이 있다.


한 사람의 생각에서 탄생한 뜰라께빠께
 

뜰라께빠께 풍경 /flickr

1970년, 세도나에는 하나의 신호등만 있었고, 넓은 초원이 전부였다. 잠에서 깬 소들이 들판에서 풀을 우적우적 씹는 것이 이 곳의 일상이었다. 성공한 사업가, 네바다의 아베 밀러는 휴가차 세도나에 온다.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고 있던 그는 어떤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 아베는 여행을 좋아했고, 멕시코를 사랑했다. 그는 세도나라는 곳과 사랑에 빠졌고, 멕시코의 매력과 분위기를 뽐낼 수 있는 예술 마을을 어디서든 짓고 싶은 마음이 옛날부터 있었다. 

남서부 전역을 여행한 후 그는 세도나가 그의 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완벽한 장소라는 걸 깨닫는다. 멕시코에서 이루어지는 창조 예술 아래 아베는 세도나가 예술 공동체를 위한 장소라는 영감을 받았다. 그는 재능 있는 건축가들을 고용했고 그의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이 작은 마을로 들어와 사진을 찍고 대강의 스케치를 하며 뜰라께빠께 마을을 만들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또 여러 시골 마을의 사진을 수천점을 찍었고 스페인 식민지 시대 건축물들의 그림을 수십 점을 스케치했다.

이들은 뜰이 있고, 타일 벽이 있고, 광장이 있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공예품을 함께 모여 팔고 어울릴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후에 사람들과 정원, 분수, 나무들이 공공 장소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된다. 건축의 형태, 기둥과 아치, 타일과 분수, 자갈길과 건물의 발코니 하나까지 주의깊게 연구했다. 이들은 이 시골에서의 삶이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사람들이 서로 어떤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서로가 공동체 안에 흡수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 중이었다.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 /flickr
특별하면서도 어딘가 무서운 듯한 장식물 /flickr

아베는 여러 차례 멕시코에서 도로 여행을 하며 곳곳의 마을과 시장을 돌아다녔다. 이들은 멕시코 문화를 반영한 여러 제품과 유물들을 구입했고 거대하게 조각된 문, 점토 항아리, 오래된 벤치 등이 정기적으로 세도나로 들어왔다. 이것들은 뜰라께빠께를 완성하는 기초가 된다. 원래는 이 곳에 전문적인 석공들도 없이 아마추어 석공들과 미장공들만 있었다. 건축가인 밥 매킨타이어는 이 조각가들에게 예술적인 자유를 제안한다. 전문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뜰라께빠께의 한 상점 /flickr

건축가의 제안 아래 석공들과 조각가들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손끝 아래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었고 밥은 그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조각가들의이 하룻동안 만든 작업물이 그들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아베는 언제든지 만든 것들을 부수고 다시 마음껏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정확성은 잊어라, 엄지만을 사용하라'는 말은 이곳에서 즐겨 쓰는 말이 됐다.

아베는 모든 일에 있어 유연성을 중시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이 같은 곳에서 일하고 살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가 깊이 존경하고 선구자로 여겼던 뜰라께빠께의 예술가들이 그들의 생활과 작업 공간을 분리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바로 옛날의 생각을 버렸다.

아베는 처음부터 뜰라께빠께를 만들려 했던 목적이나 꿈이 있었지만 굳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무언가를 이렇게 해야 한다며 받아들이라고 강업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전날 예술가들이 만든 것을 보면서 '좋다. 다시 생각해 보자. 이걸 추가하면 어떨까, 우리도 한 번 해 보자'라고 말했다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조형물 /flickr
멀리서 보는 뜰라께빠께 /flickr

아베는 뜰라께빠께의 아름다운 무화과 숲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했다. 그래서 건물들은 지어져 올라가면서도 무화과 나무를 방해하지 않고 주변에 지어졌다. 지금의 뜰라께빠께는 거대한 무화과가 지붕선을 타고 자라거나, 거대한 벽을 뚫고 자라거나, 미술관 주변에서도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뜰라께빠께는 처음부터 화려한 꽃과 여러 색깔로 채워진 곳이었다. 아베는 화려한 정원을 좋아했고 4계절 내내 끊임없이 여러 색으로 채워지는 뜰라께빠께를 원했다. 

뜰라께빠께의 입구 /flickr

건축가 밥에게 있어 지나치게 대칭적인 건물은 매력이 없었다. 밥은 건물들이 웃음, 춤, 노래를 표현할 수 있도록 지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촛불, 깜박이는 불, 분수, 꽃 등은 건축의 전부다. 조각품이지만 살아 있는 건물들을 원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1971년, 첫 공사가 시작했을 때 틀에 박힌 형태의 아치형 출입구가 세워진다.

원래 아베는 모든 것이 다 지어지면 그 아치형 입구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결국 못 했다고 한다. 뜰라께빠께의 건축과 그 건축물을 만든 사람들의 파격적인 접근은 전통과 혁신의 매혹적인 결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철, 석조, 무늬 타일들로 장식된 집들은 뜰라께빠께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단지 전체가 자연스럽게 유기적인 느낌을 갖고 있어 마치 오랫동안 존재해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멕시코의 전통 마을을 본따 만들어진 뜰라께빠께는 쌓은 흙벽으로 만든 입구가 눈에 띈다. 상당히 큰 아치형 입구는 마치 뜰라께빠께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 이곳에 존재한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여러 갤러리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은 무화과 나무들이 줄줄이 서 있는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물과 어우러지는 나무와 정원은 뜰라께빠께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증거가 된다. 1970년대 이후 세도나의 랜드마크가 된 이곳은 40개가 넘는 상점, 미술관들을 볼 수 있다. 

세라믹박물관 /Wikimedia Commons
박물관 내부,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들 /Wikimedia Commons

도시 중심에는 세라믹박물관(Museo Regional de la Ceramica, Tlaquepaque)이 있다. 19세기 신고전주의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1952년 정부로 건물이 넘어가게 되면서 1954년부터 세라믹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정부가 직접 운영을 하다가 1992년부터 할리스코수공예협동조합(IAJ·Instituto de la Artesania Jalisciense)에서 운영 중이다. 세라믹박물관은 할리스코 주의 토착 예술을 장려하고 보존한다. 특히 전통 도예를 보존하고 홍보하며, 지역 도자기와 역사 또한 다룬다. 

커다란 닭 조형물 /flickr
뜰라께빠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화 /flickr

뜰라께빠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마을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예술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캔버스를 앞에 두고 일에 몰두한 화가, 노래하는 새들과 같이 걷는 음악가, 광장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커다란 조각들을 만나기 위해 외딴 골목 구석과 뜰을 들어가야 한다.

아베의 세심함이 만들어낸 이 환경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저절로 발걸음을 느려지게 하고,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미적 경험을 하게 만든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수집가들도 뜰라께빠께 예술가들의 미술품을 수집하기 위해 온다고 하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특별한 장소에 대한 추억거리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여러 화랑들은 지역적, 또는 북미 원주민들에서부터 국제적인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취급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을 보는 관람객들 /flickr
사람이 마치 가면을 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조각이다 /flickr

단순히 쇼핑을 위해서라면 뜰라께빠께와 같은 자연의 모습을 흔히 발견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원래는 예술 공동체로 시작했던 뜰라께빠께는 재능 있는 세도나의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몰두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는 완벽한 장소라 할 수 있다.

뜰라께빠께에서는 어떤 갤러리든 자신의 작품을 작업하는 조각가를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전문 상점들과 전용 미술관들을 갖춘 뜰라께빠께는 관광객들에게는 멋진 미술품, 관광객들에게는 독특한 선물들을 제공한다. 뜰라께빠께는 서양의 여러 청동 조각품, 전통 도자기, 유리 작품, 미술 회화와 벽화 등 모든 매체에서 화려한 예술을 자랑한다.

뜰라께빠께는 사람뿐만이 아닌 반려동물들에게도 열려 있다. 많은 상점의 주인들은 가게 밖에 물그릇을 놓아 두며, 몇몇 식당이나 레스토랑에는 동반 입장도 가능하다. 물론 줄을 매어 놓은 상태라면 말이다. 관광객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예술가들을 만나며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물 소리, 음악 소리를 즐길 수도 있다. 18개의 갤러리와 24개의 의류, 공예품, 선물을 판매하는 상점들은 독특하고 흥미로우며 손으로 만드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뜰라께빠께다. 

뜰라께빠께의 야경 /flickr
'죽은 자들의 날'에 흔히 볼 수 있는 해골 /flickr

멕시코에서는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를 기리며 그들의 명복을 비는 명절인 '죽은 자들의 날 Day of the Dead'이 있다. 뜰라께빠께에도 거리 곳곳을 장식하고 임시로 세워진 부스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페이스 페인팅, 공예 체험 등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2021년은 코로나19로 인한 여파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안타깝게도 행사가 취소된 상태다. 코로나19가 진정된다면, 뜰라께빠께에서는 2022년 10월 29일 행사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뜰라께빠께의 예배당 /flickr

여행하는 시기가 적절하게 맞는다면, 뜰라께빠께의 예배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뜰라께빠께에서 이 예배당은 매우 특별하며, 이곳에서는 4계절 내내 결혼식이 열리고 리셉션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 예배당은 살아생전 아베가 가장 좋아했던 건물이라고 한다. 다른 교회들처럼 원래 예배당은 명상과 사색을 위한 장소로 설계되었지만 아마도 아베는 현재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많은 사람들까진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베 밀러는 수수했다. 청바지에 작업복 차림으로 야구모자를 쓴 아베가 종종 길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은 흔했다고 한다. 그는 뜰라께빠께에서 자신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고 봤다. 그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만 하는 게 아닌, 이들을 돕고 바로 옆에서 같이 일하곤 했다.

예배당에는 이런 글귀의 명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꿈만 꾸고, 어떤 사람은 그 꿈을 실현시킨다"는 말이다. 한 사람의 애정과 노력이 지금과 같은 멋진 곳, 뜰라께빠께를 만들었다. 뜰라께빠께는 단순한 수공예촌이 아닌 사람들의 노동과 애정이 낳은 하나의 창조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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