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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위엄이 가득한 색', 동양에서 귀히 쓰인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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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위엄이 가득한 색', 동양에서 귀히 쓰인 붉은색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1.05.01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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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귀신을 내쫓는 고귀한 색이라 여겨 동양에서 귀한 대접받아
왕의 옷은 물론 팥죽, 연지곤지 등 다양한 전통 문화에 붉은색의 의미 들어있어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붉은색(赤色)은 동양에서 예로부터 열정, 기쁨, 위엄 등을 상징하여 고귀한 색깔로 대접받았다. 또한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쓰인 대표 색깔인 오방색(황색, 적색, 백색, 흑색, 청색)에 속하는 색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 방위의 중간에 위치한 황색은 황제 이외에는 감히 사용하지 못했다.
 

조선 왕의 복식인 곤룡포 / 위키피디아
조선 왕의 복식인 곤룡포 / 위키피디아

한국에서 왕이 사용한 고귀한 색깔, 붉은색

빨간색은 이 황색의 뒤를 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 보면 빨간색이 황색보다 더 대접받았다. 삼국시대 관리들은 등급에 따라 정해진 색깔의 옷을 입었는데, 황색은 그 등급이 붉은색보다 낮은 순에 속했다. 삼국시대 이후에도 황색은 중국 황제의 색이라는 인식이 있어 왕의 옷은 주로 붉은색을 입었다.

지금도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혹은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미신이라고 생각해도 아마 대부분은 찝찝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는 빨간색이 왕이 사용하는 색이기에, 평민이 빨간색을 사용하면 국법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은연중에 우리 의식에 스며든 것이다.

자연에서 붉은색을 낼 수 있는 재료로는 홍화, 봉숭아(봉선화) 등이 있다. 이들을 즙을 내서 염료로 만들면 옷을 염색할 수 있다. 또한 진사, 주사 등 광물에서도 붉은색을 얻을 수 있는데, 그림을 그리거나 공예품을 만드는 안료로 자주 사용한다. 연지벌레에서도 붉은색이 나오는데, 오늘날 딸기 우유에 이 벌레가 들어간다고 하며 이 사실을 알고 경악하는 사람이 많다.

평민들은 연지곤지나 부적 등에 붉은색을 활용했다. 연지와 곤지는 홍화, 주사로 안료를 만들고 이를 여인의 이마와 양옆에 동그랗게 칠한다. 부적은 종이에 붉은색으로 주술적인 문양과 글을 그리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적색이 귀신을 쫓아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어 오랫동안 행해진 풍습이다.
 

전 순정효황후 주칠 나전가구 / 문화재청
전 순정효황후 주칠 나전가구 / 문화재청

붉은 빛깔의 영롱한 아름다움을 내는 주칠

옛날 조상들이 공예품에 발랐던 옻칠은 도료와 안료 역할을 했던 천연수지이다. 이 옻칠은 옻나무의 수액을 정제한 것인데, 처음엔 투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산화되면서 검은색이 된다. 또한 다른 색깔을 넣어 새로운 색의 옻칠도 만들 수 있다. 이 중에서는 붉은색인 주칠(朱漆)도 있다.

주칠은 옻칠에 주분(朱粉) 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다. 주분은 황화수은(Hgs) 또는 황단(黃丹)이라고도 불린다. 수은과 유황을 섞고 끓인 화합물인데, 수은과 노란 황이 만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붉은색을 띠게 된다. 물론 새빨간 색이기 보다는 노란색이 섞여 있는 연한 붉은색의 느낌이다.

주칠은 한때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이 불로장생의 약이라 생각하고 복용하기도 했지만 독성이 있기에 이후에는 식용으로는 쓰지 않았다. 대신 피부병에 효능이 있어 바르는 연고 등 약재나 채색 안료, 도료 등으로 쓰였다. 궁중용으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민가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주칠은 주로 다양한 목제품, 가구 등을 채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칠반'이 잘 알려져 있다. 주칠반은 상, 함, 반합, 접시 등에 주칠한 것으로, 붉은색이 영롱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이 주칠반도 역시 민간에서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고 가격도 보통 옻칠보다 훨씬 비쌌다.
 

진사로 문양을 그린 도자기 / 위키피디아
진사로 문양을 그린 도자기 / 위키피디아

강렬한 느낌을 주는 원나라의 유리홍 자기

빨간색의 도자기는 백자, 청자, 검은 옹기 등을 보아온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 붉은 도자기를 살펴보면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하얀 백토 위에 붉은색으로 그려진 문양을 보면 강렬한 화려함과 영롱함 등이 느껴진다. 붉은 도자기는 중국에서 많이 만들어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도자기는 원나라의 유리홍(釉裏紅)이 있다.

14세기 원나라에서 유행된 도자기의 양대 산맥은 바로 청화백자와 유리홍이다. 청화백자는 푸른 코발트 안료로 문양을 그린 도자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만들어져 비교적 익숙하다. 하지만 원나라 말기에는 혼란으로 인해 중동 지역에서 수입하는 코발트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유리홍을 만들게 된다.

유리홍에 쓰이는 붉은 안료는 산화된 동(구리) 광물인 진사(辰砂)를 가루 낸 것이다. 주칠을 만드는 주분과 같은 황화수은 계열이지만 주분처럼 인위적으로 만든 화합물이 아닌 천연 광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단사(丹砂) 또는 주사(朱砂)라고도 불린다. 이 진사는 또 도장을 찍을 때 사용하는 안료인 인주를 만드는 원료이기도 하다.

유리홍을 만드는 기술은 난이도가 높았다. 붉은색으로 문양을 그려도 구리가 고온에서 불안정하기 때문에 산소를 완전히 차단하는 환원 소성을 거쳐야 한다. 이때 산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발색이 고르게 되지 않고, 자주색, 회색 등으로 바뀌기도 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 색이 거무튀튀해지고 바래지기 때문에 관리도 쉽지 않다.
 

진사 광물 / 위키피디아
진사 광물 / 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은 붉은 도자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원나라, 명나라와 달리 붉은 안료를 사용한 도자기를 잘 만들지 않았다. 만들기도 까다롭고 진사가 우리나라에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코발트 역시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었고, 세조 때에 자체적으로 푸른 안료인 토청이 개발됐던 것을 보면 그냥 선호도 자체가 높지 않았던 것 같다.

고려 시대와 조선 후기에는 붉은 안료를 사용한 도자기가 나오고 있지만, 조선 초기에는 특히 붉은색 도자기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태종실록, 태종 11년의 기록을 보면 태종이 붉은 안료가 조선에서 나지 않는 사치스러운 외제이므로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나온다.

최근에는 유일한 조선 초기 붉은 백자로 여겨진 국보 제168호, '백자 동화매국문병'가 국보에서 해체되기도 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 아닌 중국에서 만든 유리홍임이 여러 연구결과에서 밝혀졌고, 비슷한 것들이 중국에 많이 있어 국보로서의 희소성도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물론 왕실에서 주칠 제품, 빨간 의복을 자주 사용했으며, 평민들 사이에서도 붉은색을 자주 활용한 것을 보면, 붉은색 자체에 대한 비선호는 아니다. 유리홍 자기가 유독 유행하지 못했던 것은 다양한 원인의 중첩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자금성과 천안문 / 픽사베이
자금성과 천안문 / 픽사베이

오늘날에도 빨간색을 선호하는 중국인, 그리고 한국의 빨간색

원래 황제의 색이라고 칭해진 노란색은 현대에 들어서는 중국인들에게 음란함을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이 안좋게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빨간색은 인기가 높다. 빨간색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이어서 현대 중국의 정치와도 알맞기도 하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도 빨간색 바탕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공산주의 이전부터도 이미 전통적으로 붉은색이 부와 권력을 의미했고, 귀신을 물리쳤다는 좋은 의미가 있었다. 붉은 색깔로 뒤덮인 중국 자금성(紫禁城)의 뜻도 '자색(붉은색)이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빨간 옷을 입지 못한 백성의 출입을 금한다는 의미도 있다. 

중국인들의 빨간색 사랑은 유별나다. 신년에는 빨간 속옷을 입는 문화가 있고 온갖 의례, 잔치, 결혼식 등에서도 장소를 빨간색으로 장식한다. 또 다양한 의복, 포장지, 액세서리도 빨간색을 애용한다. 중국인에게 무언가를 선물하려면 무조건 빨간색을 고르라는 말도 있다.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한국 관중 / 위키피디아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한국 관중 / 위키피디아

하지만 붉은색은 중국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동양인의 전통에서 널리 길한 색으로 활약한 색이었다. 우리나라도 옛 선조들의 문화를 살펴보면 빨간색이 다양한 활약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현재도 우리는 귀신을 쫓기 위해 동지에 붉은 팥으로 쑨 팥죽을 먹는다.

태극기의 태극 문양은 원래는 중국에서 나타난 음양 사상의 개념이며 색깔도 흑백이었다. 그런데 특별히 한국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을 넣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2002 월드컵 이후에는 붉은 악마와 빨간 티셔츠가 세계에서 한국인을 대표하는 색깔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의 빨간색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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