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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조각승, 현진 스님의 불상 보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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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조각승, 현진 스님의 불상 보물된다
  • 최상혁 기자
  • 승인 2020.06.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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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의 가장 초기 작품인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보물된다
국적 논란 일어났던 백자 동화매국문 병은 국보 지정 해제
보물 제 2066호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문화재청
보물 제 2066호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문화재청은 조선 17세기 불교 조각에 큰 자취를 남긴 조각승 현진(玄眞)의 가장 이른 작품인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15세기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보물 제2066호와 보물 제2067호로 각각 지정하였다.

17세기 불교 조각사를 대표하는 조각승, 현진

현진(玄眞)은 17세기 불교 조각사를 대표하는 조각승이다. 그의 생애와 혈연 등에 대해서는 자료의 부족으로 정확히 알기 힘들다. 157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승군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이후인 1612년부터 1637년까지 집중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현진의 생애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현진은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소실된 불상 조성을 주도하였다. 특히 1622년 광해군비 유씨가 발원한 자수사(慈壽寺)와 인수사(仁壽寺)의 11존(尊) 불상 제작을 지휘했는데, 이때 수연 스님, 그리고 응원 스님, 법령 스님 등 명성있는 다른 조각승들도 참여했다. 현진은 또한 부여 무량사 극락전 소조아미타삼존불좌상, 청도 적천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 경북 성주 비슬산 명적암 목조아미타불좌상을 제작하였다.

현진 스님은 이처럼 왕실과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다. 그동안은 스님의 작품 중에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불좌상’(1612년, 보물제1686호)이 가장 앞선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보물 제2066호, ‘장성 백양사 목조아마타여래좌상(長城 白羊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의 제작이 이보다 5년 앞선 사실이 확인되었다.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옆모습 / 문화재청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옆모습 / 문화재청

가장 이른 현진의 작품인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약 208cm에 달하는 대형 불상이다. 1607년(선조 40년) 현진이 주도하고 휴일(休逸), 문습(文習)이 함께 참여해 완성하였다. 불상의 대좌 밑 묵서(墨書)에 의하면, 백양사 불상은 왕실의 선조들인 선왕과 선후의 명복을 빌고 성불(成佛)을 기원하며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등 전쟁이 끝나고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시행된 불교 복구 과정 중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대한 규모에 긴 허리, 원만한 얼굴과 당당한 어깨, 신체의 굴곡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 주름, 안정된 자태, 뚜렷한 이목구비 등에서 초창기 작품임에도 현진의 뛰어난 조각 실력과  17세기 불교조각의 새로운 경향을 선도한 시대적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또한 불상은 기법적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목조(木造)와 소조(塑造) 기법을 조합해 만들었는데, 일반적으로 목조불상을 만들 때는 나무를 쪼아 전체적인 형체를 만들고 좀 더 입체적이거나 현실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부분적으로 진흙 등을 사용한 소조 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백양사 불상 역시 주된 재질은 목조지만 진흙으로 보강한 사실이 밝혀졌다.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후기 대표적 조각승 현진의 작품 중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불상이자, 그의 활동 지역과 작품 세계, 제작 기법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예술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현진 이후에는 1741년(영조 17년)과 1755년(영조 31년)에 작성된 중수발원문(重修發願文)을 통해 개금(改金,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과 중수한 내력, 참여 화승(畵僧)들의 명단과 역할을 알 수 있어 학술적 의미 역시 크다. 이러한 이유로 불상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대좌(臺座)와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제2067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 문화재청
보물 제2067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 문화재청

조선 전기의 뛰어난 불상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이번에 같이 지정된 보물 제2067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尙州 南長寺 觀音禪院 木造觀音菩薩坐像)’은 조선 전기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남장사 내 부속사찰인 관음선원에 봉안되어 있다. 이 관음보살좌상 뒤에는 보물 제923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이 놓여 있어 가치와 화려함을 더한다.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의 경우 조성발원문(造成發願文) 등 관련 기록이 부족해 정확한 제작 시기는 확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귀족풍의 단정한 얼굴과 어깨와 배에 멋스럽게 잡힌 옷 주름, 팔꿈치에 표현된 ‘ῼ’형 주름, 무릎 앞에 펼쳐진 부채꼴 주름 등 15세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15세기 불상이 지극히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남장사 관음보살좌상은 조선 초기의 불교조각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아울러 관련 기록을 통해 1819년 인근 천주산(天柱山) 상련암(想蓮庵)에서 남장사 관음선원으로 이전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위와 개금과 중수 등 보수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불상의 역사성 또한 인정된다.

한편 국보로서의 위상과 가치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국보 제168호 '백자 동화매국문 병'은 출토지나 유래가 우리나라와 연관성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같은 종류의 도자기가 중국에 상당수 남아 있어 희소성이 떨어지는 점, 작품의 수준 역시 우리나라 도자사에 영향을 끼쳤을 만큼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해제를 최종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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