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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이 차린 임금의 수라상, '조선왕조궁중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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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이 차린 임금의 수라상, '조선왕조궁중음식'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2.17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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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중 가장 화려하고 다양했던 조선왕조궁중음식···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드라마와는 달리 보통 남자가 조리맡아
현대에도 꾸준히 계승 발전 중, 한식세계화에 앞장설까?
MBC 드라마 대장금
MBC 드라마 대장금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된 '대장금'은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극 드라마이다. 대장금은 조선시대의 궁녀였던 서장금이 수많은 역경과 사건 속에서도 성장해나가며 임금을 돌보는 최고 직책인 어의녀가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왕의 수라상을 담당하며 다양한 궁중요리를 만드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덕분에 한동안 국내외적으로 전통 궁중음식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조선시대의 궁중요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엄격한 분업 체계로 만들어진 '조선왕조 궁중음식'

궁중음식은 왕가의 음식이었던 만큼, 한식 중에서 가장 호화롭고 다채로웠다. 특히 조선시대에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의례를 중요시하였기에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상차림법, 식사법 등이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정해졌다. 이 궁중음식의 갖가지 의례에 대해서는 당시 경국대전, 조선왕조실록, 진연의궤, 궁중음식발기 등의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궁중음식은 어느 한곳에서 모두 맡지 않고 다양한 부서에서 맡아 분업화되었다. 또한 중전, 대비전, 세자빈 등을 각각 따로 담당하여 각 전각마다 주방상궁이 딸려 음식을 만들었다. 음식을 만드는 부서는 생과방(生果房)과 소주방(燒廚房, 수라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생과방은 각종 떡, 전, 다과 등의 후식을 주로 만들었다.
 

구절판과 신선로
좌측 '구절판'은 아홉가지 재료를 담았고 이중 여덟가지를 가운데 밀전병에 싸먹는다. 아름다움은 물론 영양학적으로도 균형이 잡혔다. 우측 '신선로'는 쇠냄비를 끓여 각종 고기와 야채를 호화롭게 즐길 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

한편 소주방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내소주방은 주로 일상식을 맡고 외소주방은 잔치용으로 쓰일 음식을 맡았다. 소주방에 소속된 인원은 약 400명 정도이며 밥짓는 반공, 고기를 만드는 별사옹, 술을 빚는 주색 등이 있어 각자 철저하게 분업을 맡았다.

대장금을 보면 당시 궁중음식을 맡았던 요리사는 궁녀들이 담당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성들은 상차림, 나르기, 잡무 등을 주로 맡았으며 실제로 대부분 요리는 남성이 맡았다고 한다. 궁중요리를 만든 남자들은 대령숙수(待令熟手)라고 하는데, 이는 왕명을 받드는 요리사란 뜻이다.

대령숙수는 임금 및 대궐의 식사를 맡은 이조의 사옹원(司饔院)에 소속되었는데, 총책임자인 반감 및 그 밑으로 재부, 선부, 조부, 임부, 팽부 등이 소속되어 조리를 맡았다. 이들은 종6품에서 종9품까지의 품계를 가진 중인 신분이었으며 대대로 세습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궁중음식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강한 노동 강도를 요구했다. 때문에 중종 때의 기록을 보면 각색장(숙수) 일이 고역이라 모두 피했다고 나온다. 이렇듯 남자들도 고된 일이기 때문에 당시의 유교 사상도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래도 대장금에서처럼 여성이 요리를 맡기에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수라상 정면 [문화재청 제공]
수라상 정면 [문화재청 제공]
반상차림 [문화재청 제공]
반상차림 [문화재청 제공]

궁중음식 상차림의 종류와 구성

조선시대 궁중음식에서 가장 유명한 '수라상'은 임금과 중전이 아침·저녁으로 받는 밥상이다. 수라상은 계절에 따라 반찬이 바뀌지만 밥과 국 및 찌개, 찜, 전골, 김치, 장을 기본으로 하고 이외에 고기, 생선, 산적, 김 등 12가지 반찬(12첩)을 올린다.

구성은 밥과 국, 찌개, 장, 김치, 반찬이 놓이는 '대원반', 팥밥과 곰국이 놓이는 '소원반', 고기와 채소를 담은 즉석 전골로 먹는 '책상반'으로 각각 따로 차려져 올려지며 수라상은 재료와 조리법이 모두 겹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보통 차려진 음식이 많다 보니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남은 것은 궁녀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점심상은 '낮것상'이라고 하는데 보통 과일, 과자, 떡을 내오거나 편육과 생선, 김치, 만두 온면(잔치국수) 등을 담은 '장국상'을 간단하게 차린다. 이외에도 경사가 있을 때에 임금에게 고베라는 높은 그릇에 과일과 떡 등을 담아 화려하게 꾸미는 어상을 차렸고 경축하는 잔치에 앞서 점심과 저녁 사이에 간단히 술과 함께 받는 입맷상 등도 있었다.

물론 임금에 따라 수라상의 종류는 달라졌다. 정조의 경우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다룬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에서 상차림을 엿볼 수 있는데, 잔치음식을 7첩반상으로 먹었다고 한다. 이 7첩도 반찬이 7가지가 아니라 밥, 탕 조치(찌개 혹은 찜), 김치에 더해 산적, 젓갈 자반 세가지를 반찬으로 더해 먹은 것이다.

실제 조선 임금의 식생활은 대부분 검소한 편이었다. 특히 가뭄, 수해, 역병 등이 돌아 백성이 힘들 때에는 임금 또한 밥에 물만 말아 먹거나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오늘날 알고 있는 화려한 식생활이 퍼져 나간 것은 구한말 이후로 봐야 한다.
 

한희순 상궁
한희순 상궁

대중에게 퍼져나간 조선왕조 궁중요리

조선왕조의 궁중요리가 민간에까지 전파되게 된 것은 대한제국의 고종 시기였다. 고종 당시 숙수였던 안순환(1871~1942)은 대한제국의 쇠퇴와 함께 결국 해고를 당하고 궁을 나오게 됐다. 결국 안순환은 해고된 다른 숙수를 모아 조선 궁중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인 명월관(明月館)을 차렸다.

이후 명월관은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 특히 당대 부호와 인지도있는 인사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왕실에서만 먹었던 궁중요리를 일반인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인기의 이유로 보인다. 이후에는 명월관 외에도 수많은 조선요리집이 생겨났으며 이는 현재의 한정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한희순(1889~1972) 상궁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당시 직접 임금의 수라상을 차리며 궁중요리 기술을 익혔다. 한상궁은 한일합방 이후에도 끝까지 고종과 순종 및 순정효황후를 모시며 왕족의 음식을 담당하였다. 특히 순정효황후가 1965년 사망할 때까지 끝까지 모시며 주방 상궁으로 있었으며, 순정효황후도 한상궁을 아끼고 만든 음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한상궁은 해방 이후 궁중음식을 현대적으로 되살려 계승·발전함은 물론 황혜성, 염초애 등의 제자들을 키워내어 전승시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으로 지정되었다. 한희순의 사후에는 제자 황혜성(1920~2006)이 2대 기능보유자가 되었으며 현재는 황혜성의 맏딸, 한복려가 3대째 대를 이어가고 있다.

한복려는 드라마 대장금 및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2005년 APEC 정상회의 등 주요 국가 행사에서 메뉴를 자문 및 지도하며 한식의 우수함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또한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한상궁이 설립한 '궁중음식연구원'의 원장을 이어받아 끊임없이 현대와 발맞추며 궁중음식을 현대화하고 계승하기 위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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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과일과 다과 상차림 [문화재청 제공]

조선왕조 궁중음식은 우리 한식 중 가장 화려하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왕족의 입맛과 건강을 위해 국가 최고의 장인이 모여 다양하게 만든 음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식에는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다양한 법도와 예의가 담겨있어 생생히 지금도 옛 문화를 보여준다.

이제는 궁중음식도 민간에게 널리 퍼져 대중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궁중음식의 오늘은 단순히 당시의 전통을 지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현대와 발맞추기 때문에 계속 생기를 띠고 살아있는 것이다. 다양한 상차림과 맛을 강점으로 하는 궁중음식은 앞으로도 한식세계화와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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