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7 20:25 (토)
오래된 거울 뒷면으로 ‘살아있음’을 그려내는 10년의 노력 - 이열 작가
상태바
오래된 거울 뒷면으로 ‘살아있음’을 그려내는 10년의 노력 - 이열 작가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4.03.20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예술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래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재료를 활용해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작가를 만나면, 그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만들어 경이롭다. 특히나 그 재료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작품 활동 중인 이열 작가 / 아트센터 자인 제공
작품 활동 중인 이열 작가 / 아트센터 자인 제공

우리가 매일 보는 거울이 그 소재라면 어떨까. 더군다나 그 작품을 만드는 이가 백발이 잘 어울리는 지긋한 중년의 신사라면 호기심을 자극할 듯하다. 추상화가이자 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로도 활동하며 젊은 예술인을 양성해 온 이열 작가는 10년째 거울을 재료로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다. 10년이라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는 10년이라는 시간은 ‘시작’이라고 말한다.

개인전이 펼쳐지는 평창동의 아트센터 자인에서 이열 작가를 만나 거울로 전하는 10년, 앞으로의 10년은 어떨지 들여다봤다.

매년 꾸준히 전시를 이어왔지만, 이번 전시는 어떤 의미인가

핸드메이커는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적인 기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예술 작품이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핸드메이커와 동행해 주세요.

후원하기

새로운 재료로 가능한 것을 고민해 왔고, 거울도 그 시도 중 하나였다. 10년 넘게 거울로 작업해 왔지만, 새로운 지향적 미술 측면에서 보면, 현대적으로 젊은이들에게 주는 파급력이 있을 듯하다. 또, 그런 방향으로 미술이 변화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런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했으면 하는 점에서 이 전시가 남다르다.

소재에 대한 새로움을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지만, 미술의 방향성을 새롭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다. 거울로 작업한다고 하면, 기성세대는 깨지는 위험성이 있고, 오래되고 지저분한 것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고착화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배척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그런 시각이 없이 작품을 바라본다. 젊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소재, 미래로 가는 미술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이열 작가의 거울 작품. 원형 액자는 약 150년이 넘은 앤틱한 것들이다 / 전은지 기자
이열 작가의 거울 작품. 유럽 벼룩시장 등에서 찾는 액자는 최소 150년이 넘은 앤틱한 것들이다 / 전은지 기자

‘거울’이라는 소재를 활용하게 된 계기는

시간을 많이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쯤, 작업실의 자연경관을 관리하기 위해 동두천에 다양한 도구를 구하러 갔다. 추상 작업을 하면서 큰 작품을 많이 해오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 기존의 재료와 방식으로는 표현하고 싶은 세계나 시대를 담아내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 거울이었다.

거울은 친숙한 존재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경대 앞에서 화장하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비친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러던 중 사고로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면서 그 그리움이 커졌다. 그때부터 거울은 단순한 반사체가 아닌, 유년 시절의 기억을 불러들일 수 있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작품 속에는 인물의 얼굴, 실루엣이나 민들레와 같은 식물이 보인다. 기준이 있나

추상적 얼굴이나 비정형의 느낌을 담으면 어려워진다. 작품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사실적인 관점의 표현보다는 실루엣 정도로 제시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구상이라는 형태로서 또렷한 것이 남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추상과 구상의 모호한 형태를 남기고 싶었다.

때로는 또렷한 것이 보이기도 하는데, 벼룩시장에서 오래된 거울이 나에게 다가온 것처럼, 거울을 통해 전해진 사진 이미지를 남긴 것이다.
 

인물과 민들레 등이 담긴 작가의 작품 / 전은지 기자
인물과 민들레 등이 담긴 작가의 작품 / 전은지 기자

작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나

거울 뒷면을 열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날카로운 칼이나 그라인더, 사포로도 잘 벗겨지지 않는 페인트층을 걷어내면, 황동색의 은경이 나오기도 하고, 은박지처럼 보이는 알루미늄이 나오기도 한다.

작업에 사용하는 거울은 100년 이상 된 오래된 거울이다. 때문에 단단한 페인트층을 녹여야 원하는 작업이 가능해 화학제품을 활용해야 한다. 거울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런 방법을 알지 못해,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내듯 벗겨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고생했다.

그렇게 벗겨내고 나면, 거울을 통해 다가오는 이미지나 표현하고 싶은 것을 실크에 그려서 표현한다.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분리해서 겹겹이 표현하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보인다. 말로 표현하니 굉장히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단순한 노동력도 필요하지만, 산도가 강한 용액을 사용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전념해야 한다.

위험한 작업이다. 겪었던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거울 뒷면 페인트를 녹이기 위한 작업이 굉장히 위험하다. 용액의 산도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희석해서 사용해야 한다. 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는데도, 용액이 튀어 흉터가 남아있다. 최대한 페인트층 은경을 녹일 정도로만 희석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열, 거울형 회화, Mixed Media, 42×31cm, 2023 (3개 작품 같음) / 전은지 기자
이열, 거울형 회화, Mixed Media, 42×31cm, 2023 (3개 작품 같음) / 전은지 기자

10년간 거울 작업을 해왔다. 거울과 관련된 직업병 같은 게 있나

거울이 어떤 종류로 만들어지는지 뒷면을 뜯어보며 알게 됐다. 은이나 납판, 페인트 등 다양한 거울을 보면서 역사를 알게 되기도 하고, 투명도 등의 기준도 알게 되어 재미있다. 준전문가가 된 만큼 초창기 작품과 요즘 작품을 비교하면 세팅 작업 등이 다르다.

직업병이라고 하긴 우습지만, 그만큼 낡고 오래된 거울을 보면 지금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낡은 거울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프랑스 파리도, 그곳의 벼룩시장이나 미술관, 화랑도 너무 좋다.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적인 부분이 참 좋다. 살아있게 만드는, 에너지를 주는 곳이다.

거울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팔레트에 물감을 짜서 원하는 색을 만들어 캔버스를 채워가는 작업이다. 거울 작업은 그 반대다. 온전한 거울에 이미지를, 내가 생각하는 추상적인 것을 남겨두고 지워내는 일이다. 녹여낸 부분은 투명한 유리로 바뀌고, 남은 부분은 여전히 반사체로서 비친다. 그 유리 너머로 비정형의 얼룩이 점묘 드로잉을 통해 이중적으로 채워진다. 평면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공간이 보이는 입체라는 점에서 다르다.

평면작업은 그려진 채로 끝나고, 그려진 채로 죽은 것이다. 그런데 거울 작업은 어디에 두느냐, 어떤 외부적인 영향이 있느냐에 따라 살아있는 작업이 된다. 가변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재료로서의 만족감을 더해준다.

이렇게 작업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전하고자 하는 바로 다르다. 평면작업은 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목적이 컸다. 그런데 거울은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과연 미술가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삶의 애환이나 기쁨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그것을 공감할 수 있는 미술가의 재능이 주어진다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뭘까 고민하게 됐다.

거울이라는 재료는 시대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거울로 작업을 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지향하는 것은 한결같다.
 

이열, 거울형 회화, Mixed Media, 66×56cm, 2023 / 전은지 기자
이열, 거울형 회화, Mixed Media, 66×56cm, 2023 / 전은지 기자

거울은 어떤 의미인가

그저 좋으니까 좋은 재료다. 어떤 노력에 의해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노력할 여지가 주어지는 것이다 보니, 10년 이상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계속 고민하고 생각된다. 일련의 작업행위는 내가 표현하려는 추상적인 부분과 다르지 않은데, 거울로 그걸 표현하니, 차별화된 것처럼 느끼는 듯하다. 나를 걸고 작업을 한다. 일반화되지 않은 재료를 선택한다면 각오하고 작업해야 한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거울 작업을 하고 싶은가

남은 기간을 거울이 나에게 주는 것 그 이상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 10년을 해오고 있는데 여전히 낡은 거울을 보면 설레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10년은 거울이 나에게 다가온 이미지나 느낌을 표현해 왔다면, 앞으로는 공감하고 극복할 수 있는 요소를 구상도, 추상도 아닌 이미지화된 모습을 표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극복해야 하는 사회적 어려움을 희석하는 데 기여하고, 일조할 수 있다면 좋을 듯하다.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내 작품이) 건강한 사회를 위한 힐링의 단초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 기자 코멘트

보통의 평면회화가 아닌, 거울 회화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호기심은 정확히 편견을 깨버렸다. 잘 보이지 않는 거울이 전하는 새로움은 보는 작품마다 감탄을 나오게 만들었고, 그를 만든 중년 작가와의 대화는 전시장을 하나의 미대 강의실로 만들어 즐거웠다. 작가와 만나기에 오랜 기다림이 있었지만, 그 기다림은 거울 속으로 빠져들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