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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짜는 보이지 않는다, 가짜만 보일 뿐'
  • 이황 기자
  • 승인 2019.07.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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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이황 기자]

흑인이 두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흑인은 두 남자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 문제는 두 사람이 똑같이 생겼다는 것. 둘 중 하나는 진짜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복제 인간이다. 누구를 쏴야하는지 갈팡질팡하던 흑인은 결국 방아쇠를 당긴다. 탕! 한 남자가 총을 맞고 쓰러진다. 쓰러진 사람은 진짜 인간. 그리고 복제 인간은 진짜 인간처럼 유유히 그곳을 벗어난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아일랜드」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진짜와 가짜의 싸움이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예술 세계에서도 진짜와 가짜는 생존을 걸고 싸운다. 

진짜 같은 가짜, 위작(僞作)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1924~2015) 화백은 생전에 「미인도」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 화백은 자기 작품도 몰라보는 작가가 된 이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숨을 거두었다. 최근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감정팀은 최신 기법을 활용해 「미인도」를 감정했는데 그것이 진품일 가능성은 0.0002%라고 판단했다.
 

'미인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위작(僞作)이란 원작자의 작품을 모방하여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거나 원작자의 창작 스타일을 학습해서 마치 원작자의 신작(新作)인양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위조행위다. 물론 위작은 불법이다. 하지만 적은 돈을 투자해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위작 거래는 미술계 어두운 곳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요즘 위작은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진품 여부를 감별해야 할 만큼, 정교함이 뛰어나다.

누구나 위작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작이 만들어진 시대의 재료, 환경, 작가의 기법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섬세함이 있어야만, 원작에 가까운 위작을 만들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일에도 실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작”과 “위작”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법의 차이는 아니다. 겉으로 보면 구분이 힘들 정도로 똑같기 때문이다. 원작자, 위작자 모두 기술 면에서 유능하다.

사물의 '가치'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그저 광석일 뿐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진귀한 보석으로 판단하는 순간 가치 있는 돌이 된다. 위작 역시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치를 갖게 된다. 하지만 돈으로 위작의 가치를 매길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위작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한다.
 

개념미술을 창시한 마르셀 뒤샹 [출처- 위키피디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개념미술은 예술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현실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개념미술은 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예술가의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창조 과정까지도 모두 예술이라는 것이다. 즉 '개념'마저도 예술작품의 일부라고 말한다.

바다를 그린 풍경화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그림 자체만을 예술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떤 풍경을 그려야 할지 관찰하고 고민한 예술가의 안목 또한 예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얼마나 세련된 기술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개념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의 말처럼 예술가의 역할은 '아름다움의 선택'에 있는 것이다. 무엇이 미(美)인지를 선택하고 포착하는 것이다.

결국 예술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행위자, 즉 사람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원작이 위작보다 더 가치 있는 까닭은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예술가'의 차이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원작과 위작이 똑같은 그림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예술가의 고민이나 동기, 안목 이러한 것들은 다르다. 그것엔 분명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다.

예술가의 창의력이라든가 양심, 예술혼, 가치관은 그림 너머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다. 그러한 것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작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품고 있다.
 

에리히 프롬 [출저- Arturo Espinosa]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와 존재」에서 현대 인간의 병적인 소유 양식을 지적했다. 현대 인간은 물건, 성공, 외모, 심지어는 사람과 사랑까지도 소유하려 한다. 그러나 보이는 결과물, 즉 작품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부분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 할 수 없고 똑같아질 수도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원작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출처-pixabay]

2018년 10월 런던 소더미 경매에서 얼굴 없는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경매 진행 중 작품 절반이 파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뱅크시가 직접 계획한 것이었다. 뱅크시는 인스타그램에 “파괴는 창조의 욕구, 피카소.”라고 적었다. 이 파괴 퍼포먼스는 예술을 자본으로 치환하고 소유하려고 드는 인간 세태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자식 몰라보는 부모도 있느냐.” 천명자 화백이 「미인도」의 위작 여부를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결과물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그 너머의 것이 원작과 위작의 차이다. 그것이 진짜 존재하는 가치다. 진짜는 보이지 않는 것 속에 존재한다. 

이황 기자  berryl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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