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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곡선을 살붙여 이끌다, 프락시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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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곡선을 살붙여 이끌다, 프락시텔레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4.03.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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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텔레스의 대표적인 작품인 헤르메스 조각상의 뒷모습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는 고전기, B.C. 4세기 거장의 한 사람으로 여성과 남성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육체를 우아한 S자형 윤곽 속으로 끌어들여 탁월한 대리석조(彫)법을 구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 케피소도토스도 그리스의 조각가로 활동했다.

현재로서는 그의 조각품이 남아 있는 건 없지만 그의 작품들 중 수많은 사본이 다행스럽게도 존재한다. 그가 아테네 여신의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모델로 고용한 프리네(Phryne)와의 관계는 오페라에서 연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프락시텔레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조각가들의 이름도 쟁쟁하다. 프락시텔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미론, 고대 그리스 고전 전기를 대표하는 조각의 거장 폴리클레이토스와 함께 꾸준히 언급되었다. 그리스의 조각가이자 건축가 스코파스, 고대 그리스의 청동 조각가 리시포스, 고대 아테나 출신 조각가 레오카레스 또한 프락시텔레스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
 

사티로스 대리석 조각상, 사본 /flickr

프락시텔레스는 기원전 37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고용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적어도 알렉산더 대왕이 재위할 시기에는 그가 활동하지 않았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프락시텔레스는 주로 인간과 신을 대상으로 작업했는데 특이한 건 제우스나 포세이돈 등 거대하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신들이 아닌 아폴론, 헤르메스, 아프로디테 등 상대적으로 젊은 신들을 조각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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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문명은 큰 변화를 겪었고, BC 431∼BC 404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사람들의 취향은 이상주의에서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가치관으로 바뀌어 갔다. 프락시텔레스는 신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신들의 위엄은 덜어내면서도 완벽한 은총을 느낄 수 있게끔 했다. 즉 신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을 접하는 관객의 거리감 문제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청동 또는 주철 조각상, 사본 /flickr

프락시텔레스는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S자 곡선을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예술이라는 경계를 계속 넓히고 싶어했다. 그는 조각상 특유의 곡선으로 최대한 관객에게 작품이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시도했다. 사실적이면서도, 자연적일 수 있게 그는 청동과 대리석 등 다양한 재료로 조각상의 곡선과 빛, 그림자를 만들었다.

프락시텔레스 시대의 많은 조각가들은 강도가 높아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는 청동을 주로 조각에 사용했다. 프락시텔레스는 청동과 대리석 모두 사용에 능했지만 주로 흰 대리석으로 작업을 했다. 당시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의 파로스섬에서 나는 고품질의 대리석은 최고 수준이었다. 이 대리석은 조각가를 매료시켰고, 올림피아의 헤르메스 조각상을 만들기에 아주 적합했다.

프락시텔레스는 청동에 비해 피부의 부드러움과 광채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대리석의 강점으로 생각했다. 프락시텔레스 시대에 조각가들은 물리적으로 정확한 인물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프락시텔레스는 그 이상의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대리석 조각품의 표면과 질감을 아름다우면서도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노력으로 인해 그의 스타일은 섬세하면서도 관능적인 조각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헤르메스 조각상, 사본 /flickr

프락시텔레스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건 1877년 올림피아에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디오니소스와 함께 있는 헤르메스 조각상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이 조각상에 대해 초반에는 혹평도 있었다. 프랑스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아리스티드 마이욜은 이 조각을 두고 '마르세이유 비누로 만든 천박하고 끔찍한 것'이라 평하며 반응이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1948년 고고학자 칼 브뤼멜은 이 작품을 주제로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The Hermes of a Praxiteles)』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판, 그는 이전 이 작품이 로마 때 만들어진 사본이라는 의견을 뒤집고 기원전 헬레니즘 시대의 젊은 조각가인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이라는 언급을 남겼다. 그리스의 여행가, 지리학자인 파우사니아스도 이 조각상을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이라 주장했다고. 
 

헤르메스 조각상 사본, 대리석으로 표현한 피부의 질감이 사실적이다 /flickr

프락시텔레스의 대표적인 작품인 이 헤르메스 조각상은 사본이긴 하지만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헤르메스 동상은 그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표면은 아름답게 빛나며, 표정은 고고해 보인다. 이 조각상은 헤르메스가 아이 모습의 디오니소스를 데리고 양육을 맡은 님프에게 가는 모습을 묘사했다. 현재 사본에는 헤르메스의 오른쪽 팔이 없지만, 원래는 디오니소스 눈앞에 포도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프락시텔레스는 이 디자인에 유머를 더해, 원래는 디오니소스가 포도를 향해 손을 뻗는 모습도 묘사했다. 이는 디오니소스가 훗날 와인의 신이 될 것이란 그의 운명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헤르메스는 남성이지만 키를 키우고 머리를 작게 만들어 더 우아하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헤르메스 동상의 이 포즈는 '프락시텔레스의 곡선'으로 알려지며 이 곡선은 후에 여러 세대에 걸쳐 조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아폴로 사우록토노스 조각상, 사본 /flickr

다른 유명한 사본으로는 나무에 기대어 도마뱀을 향해 화살을 쏘려 하는 청년, 아폴로 사우록토노스가 있다. 이 도마뱀 사냥꾼은 헤르메스와 비슷한, 나른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고대 조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도를 취한다. 아폴로는 도마뱀이 오르고 있는 나무에 한가롭게 기대어 있으며, 오른손에는 도마뱀을 죽이려 화살을 들고 있는 청년으로 묘사되었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조각상, 사본 /flickr

고대 로마의 문인, 정치가 플리니우스는 프락시텔레스의 유명한 조각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Cnidus)>을 그의 작품들 중 최고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조각상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이 아프로디테 조각상은 비평가들에게 프락시텔레스가 대리석에 영혼을 불어넣었다는 찬사를 받았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프락시텔레스는 여성의 형태를 유려하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얻었다.

플리니우스는 프락시텔레스가 코스 섬 사람들에게 이 조각상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막상 프락시텔레스가 이 여성 누드의 조각상을 공개했을 때 이들은 여신의 과도한 노출에 충격을 받아 받는 것을 거부했다고 전한다. 대신 이 조각품은 크니도스 사람들이 구입해 갔으며, 크니도스 사람들에게 이 조각품은 커다란 자부심이자 상징이 되었고 많은 관광객들이 이 조각상을 보러 크니도스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당시 이 도시에 큰 빚이 있었는데, 니코메데스 4세가 이 빚을 갚아 주는 대신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팔아 달라는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파는 것을 거부했다고.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조각상, 사본 /flickr

이 아프로디테 조각상에는 이탈리아어로 '정반대의 것'이라는 뜻의, 미술에서 '대칭적 조화'를 의미하는 콘트라포스토가 차용되어 몸이 S자형으로 되어 있다. 신체에 율동감과 곡선미를 주기 위한 이 S자형 자세는 균형감과 함께 인물의 감각미를 돋보이게 한다.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서 목욕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평온하면서 차분한 느낌을 준다.

프락시텔레스는 작품을 만들 때 소품을 창의적으로 사용하는데, 대개 소품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조각상을 받쳐주는 느낌을 상상할 수 있지만 프락시텔레스는 소품을 조각상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통합시키는 재주를 가졌다. 아프로디테가 들고 있는 커튼은 소품의 의미가 강하지만 그를 지탱하지 않으며, 오히려 아프로디테가 커튼을 들고 있음으로써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아주 일상적인 상황에 아프로디테를 배치함으로써 프락시텔레스는 여신을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여성 누드의 형태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그리스 예술의 큰 특징이 되었다. 그의 아프로디테는 당시 혁신에 가까웠으며, 원본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아프로디테 동상의 사본 중 하나는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여성의 모습을 조각한 그리스 시대 청동 조각품, 사본 /flickr

프락시텔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후기 고전 시대와 헬레니즘 시대를 연결했다는 평을 받는다. 예술가로서의 그의 주요 관심사들 중 하나는 사실주의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는 것이었고 이 접근 방식은 그리스 조각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결정했다. 프락시텔레스의 두 아들인 케피소도토스와 티마르코스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받아 조각가로 활동했으며 프락시텔레스 학파는 주제와 구현에 있어 헬레니즘 시대 조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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