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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먹의 세밀함과 금빛의 생생함이 어우러지다, 허은오 개인전 《화조(花鳥)의 금빛 생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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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먹의 세밀함과 금빛의 생생함이 어우러지다, 허은오 개인전 《화조(花鳥)의 금빛 생명성》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4.02.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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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자연은 언제나 보아도 신비하기도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은 번잡한 마음을 평화롭게 달래주기도 한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6일까지 갤러리이즈에서 진행된 허은오 작가 개인전 《화조(花鳥)의 금빛 생명성》에서도 그런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전시는 마무리됐지만, 작가의 작품을 통해 느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성을 전달해보고자 한다.
 

갤러리 전시 전경 / 전은지 기자
갤러리 전시 전경 / 전은지 기자

지난 1일 오전 일찍 방문한 갤러리는 하얀 벽면에 어둑한 먹으로 채색된 작품이 걸려있어, 자연을 바라보듯 집중할 수 있었다. 허은오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새와 꽃을 중심 소재로, 자연이 주는 평안과 위로를 전달하며,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자연의 생명성을 먹과 금빛으로 시각화했다.
 

허은오, 자연심상, 각각 30×21cm, 한지에 먹·금분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자연심상, 각각 30×21cm, 한지에 먹·금분 / 전은지 기자

같은 제목을 가진 두 작품이 전시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다른 작품은 모두 배경이 어두운 먹빛이 전체적인 배경이지만, 이 작품만이 유일하게 밝은 배경이었다.

‘심상’이라는 단어가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과 ‘마음속의 생각’이라는 2가지 뜻이 있는데, 작품 속 그려진 꽃이 하나의 화자라고 보면, 달무리처럼 둥글게 피어난 금빛은 꽃이 자연 속에서 느끼는 생각을 표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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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새가 멀리 날고 있고, 오른쪽은 새가 꽃에 앉아있는데 때로는 화려한 꽃 자체로 자연 속에서 주인공이 되거나, 다른 생물과 어우러져 자연의 한 부분이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허은오, 설리명(雪裏明), 53×45.5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설리명(雪裏明), 53×45.5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설리명(雪裏明), 53×45.5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설리명(雪裏明), 53×45.5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설리명(雪裏明), 각각 125.5×70cm, 한지에 먹·금분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설리명(雪裏明), 각각 125.5×70cm, 한지에 먹·금분 / 전은지 기자

‘눈 속의 빛’이라는 뜻의 ‘설리명(雪裏明)’은 작품 이름처럼 눈이 내리는 풍경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겨울에 피기 시작하는 동백꽃과 동백 열매, 동백꽃 꿀을 먹는 동박새가 날고 있는 모습은 정지되어 있지만, 마치 날갯짓을 하는 듯 생생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물고기가 있다. 원래대로라면 물속을 헤엄쳐야 하지만, 상상의 힘을 빌려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유영하고 있다.

다른 ‘설리명’ 작품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을 표현했다. 물속에 빠진 듯한 동백꽃 가지와 그 주변을 헤엄치는 물고기, 나뭇가지에 앉은 듯 자연스러운 동박새의 모습이 대조적이면서 자연스럽다.

대형 캔버스에 그린 ‘설리명’은 금빛에 포커스가 맞춰진 듯하다. 세밀하게 표현한 꽃과 그 주변을 날고 있는 새의 깃털이 인상적이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가운데 오묘한 금빛 문양이다. 작품명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 금빛이 매우 밝게 보인다.
 

허은오, 조화(調和), 80.3×80.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조화(調和), 80.3×80.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조화(調和), 80.3×80.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조화(調和), 80.3×80.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조화(調和)’는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는 제목 같다. 새와 꽃의 한자어와 동음이의어이면서, 두 생명의 조화로움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새와 딸기, 새와 조롱박이 엉킨 듯하면서, 마치 서로의 일부가 된 것처럼 조화롭다. 딸기 열매와 조롱박을 금박으로 표현해 차분하면서도 화려해 보인다.
 

허은오, 향일(向日), 30×30cm, 한지에 먹·금분 / 전은지 기자
허은오, 향일(向日), 30×30cm, 한지에 먹·금분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주월(晝月), 50×50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주월(晝月), 50×50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월(月), 50×50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월(月), 50×50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금분과 금박으로 작품의 전체적인 주체를 그린 작품도 있다. 해를 향해 피어난 해바라기와 해, 낮에 뜨는 희끄무레한 달과 나팔꽃, 초승달에 달맞이꽃과 새 모두 제목과 잘 어우러진다.
 

허은오, 정한(靜閑), 95×145.5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정한(靜閑), 95×145.5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한유(閒遊), 30×30cm, 한지에 먹·금분 / 전은지 기자
허은오, 한유(閒遊), 30×30cm, 한지에 먹·금분 / 전은지 기자

조용하고 한가로운 자연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품 제목도 ‘조용하고 한가로움(정한)’, ‘한가로운 사이(한유)’다. 마치 동백꽃 뒤로 해가 떠오른 듯, 금빛이 전체적인 배경을 그리고, 그 안에는 동박새 2마리가 날거나 앉아있을 뿐이다. 가운데 금빛으로 빛나는 동백의 수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늘과 물의 경계선은 없지만, 금빛으로 구름과 새끼 오리들이 헤엄치는 물결을 표현했다. 작은 오리들에 비해 크게 그려진 수련은 유유자적 헤엄치는 오리들처럼 여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수면에 비친 모습은 혼자 고고히 피어있는 수련처럼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도 하다.
 

허은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청풍(淸風), 월괘수(月掛樹), 택영(澤影), 화염(火焰), 각각 27.3×27.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청풍(淸風), 월괘수(月掛樹), 택영(澤影), 화염(火焰), 각각 27.3×27.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청양(淸陽), 산색(山色), 산지(山地), 뇌우(雷雨), 각각 27.3×27.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청양(淸陽), 산색(山色), 산지(山地), 뇌우(雷雨), 각각 27.3×27.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사각의 캔버스와 원형의 그림이 제한적이면서도 자연의 자유로운 모습, 예측 불가한 천재지변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먹으로 세세한 표현을, 금박으로 포인트를 주어 화룡점정의 작품이었다.
 

허은오, 화락(和樂), 50×50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화락(和樂), 50×50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화평하고 즐겁다’는 뜻의 이 작품은 꽃이 마치 하나의 공처럼 둥글게 원형을 그리고 있고, 그 주변을 새들이 날갯짓하고 있다. 새보다 꽃이 더 크게 그려져, 주인공이 된 듯하다. 새를 통해 꽃가루를 널리 퍼뜨리기도 하는 것처럼, 새와 함께 노는 것이 즐거워 보이는 꽃의 모습이다.
 

허은오, 담연(淡煙), 53×5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담연(淡煙), 53×5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표현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모든 작품은 금박이나 금분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화려했지만, 이 작품만은 금박이 벗겨진 듯하기도 하고, 오래된 작품인지 의심할 정도로 색감이 뿌옇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제목인 ‘담연’을 보고 해결됐다. 옅게 낀 안개라는 뜻의 담연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제목처럼 뿌연 안개와 함께 이른 새벽녘 날고 있는 새 한 쌍이 생동감 넘친다. 그 아래로는 물고기 3마리가 유영하고 있어, 이곳이 하늘인지 물속인지 혼돈을 주기도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허은오, 징수(澄水), 27.3×27.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징수(澄水), 27.3×27.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징수’라는 이 작품도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물속으로 순식간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낚아채는 물총새의 모습이다. 그 움직임에 따라 솟구친 물결과 물방울 하나하나 세세히 그려낸 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고기를 금빛으로 표현해 그 형태만 보이지만, 물총새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만 꽃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허은오, 고요하고 평온하다(靜穩), 40.9×5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고요하고 평온하다(靜穩), 40.9×5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고요하고 평온하다(靜穩), 65.1×50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고요하고 평온하다(靜穩), 65.1×50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고요하고 평온하다(靜穩), 40.9×5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고요하고 평온하다(靜穩), 40.9×53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고요하고 평온하다’ 연작은 모두 나팔꽃과 새를 그렸다. 나팔꽃의 꽃말이 ‘기쁜 소식’이며, 영문명으로는 ‘Morning Glory’인 것처럼, 기쁜 소식이 올 것만 같은 아침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닐지 짐작해 본다. 금박으로 표현한 나팔꽃의 범위가 줄기에서 꽃으로, 꽃 전체로 점점 넓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고요함과 평온함도 더 넓게 퍼져간다.
 

허은오, 생명의 물, 89.4×145.5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허은오, 생명의 물, 89.4×145.5cm, 한지에 먹·금박 / 전은지 기자

이 작품은 허은오 작가의 모든 표현력이 동원된 작품으로 보인다. 벚꽃처럼 보이는 가지와 물가에 핀 수선화 그리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조화롭다. 고요하고 평온하지만, 꽃과 새의 조화가 아름답다. 또한, 금빛으로 날아가는 새와 수면에 반사된 햇빛의 윤슬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생명력을 그대로 담고 있다.

허은오 작가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지 않은 캔버스이지만, 새의 깃털이나 꽃잎의 주름과 수술을 세세하게 그려내어 생동감이 더욱 넘친다. 얼마나 자연에 대한 관찰력이 깊이가 있는지, 하나의 작품을 위해 오랜 시간 자연을 탐구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목에 담긴 뜻과 작품이 잘 어우러지는 점, 모두 한지 위에 먹과 금분, 금박을 사용해 그렸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색이 없어도,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새와 꽃의 색이 있기에 생동감이 넘친다. 그 어떤 전시보다 주제와 작품이 조화로운 ‘금빛 생명성’이 돋보였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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