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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신을 향한 사람들의 위험천만한 구애, 볼라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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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신을 향한 사람들의 위험천만한 구애, 볼라도레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4.02.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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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도레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인 아즈텍 문명, 이 문명에 기원을 둔 볼라도레는 농업과 풍요를 관장하는 신인 히페 토텍(Xipe Totec)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비를 내려 달라고 청하는 일종의 기우제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으며 특히 멕시코에서 볼 수 있는 고대 메소아메리카의 의식이다. 

볼라도레는 멕시코 원주민 가운데 최대의 인디오집단인 나우아족, 와스테크족, 오토미족에서 시작되어 중앙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에 퍼진 것으로 추정한다. 전해지는 신화에서는 신들에게 극심한 가뭄을 멈춰 달라고 요청하기 위한 기우제의 일종으로 만들어졌다. 현대에서도 이 의식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볼라도레는 유네스코에 의해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밑으로 떨어지는 퍼포머 /flickr

아즈텍인들은 볼라도레가 자신들의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라 믿었다. 15세기 아즈텍인들은 멕시코 파판틀라에서 남쪽의 셈포알라에 이르는 지역을 토토나크족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로 토토나카판(Totonacapan) 지방이라고 명명했다. 토토나크족 신화에 따르면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드는 극심한 가뭄이 도시에 퍼졌고, 신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비를 내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신들을 달래고 비를 다시 내리게 하기 위해 이 의식을 만든다.

이 신화의 다른 이야기는, 마을 노인들이 순결한 다섯 명의 청년을 선택해 이 의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직접 이 의식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근처 숲에서 가장 큰 나무를 선택해 산신의 허락을 받은 후 나무를 베어 마을로 끌고 온다. 나무의 몸통은 곧 땅에 세워지고 청년들은 나무 몸통 위로 올라간다. 나머지 네 명이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는 동안 한 명은 음악을 연주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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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도레 /flickr

이 의식은 비의 신 히페 토텍을 포함해 다른 신들을 기쁘게 하여, 곧 땅에 비가 내리고 토양이 비옥해졌다는 이야기다. 볼라도레는 북부 멕시코에서 니카라과로 퍼질 때까지 메소아메리카 대부분 지역에서 볼 수 있었다. 멕시코 정복 이전 시대 이 의식의 참가자들은 앵무새, 독수리 등 새 가면을 쓰고 의식을 치렀다. 의식 자체는 비와 태양의 신을 주로 대상으로 했다.
 

볼라도레 /flickr

마야 신화에서 세계의 창조는 세계수에 사는 최고신 이참나와 관련이 있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다섯 명의 사람은 이참나를 나타낸다고 한다. 중앙의 사람이 서서 새들의 노래를 상징하는 피리를 연주하고, 네 명의 사람들은 세계의 재창조와 생명의 재생을 기원하며 기둥 주위를 뱅뱅 돈다. 초기 의식에서는 다섯 명의 남자가 아닌, 새로 변장한 여섯 명의 남자가 한 명씩 기둥 위로 올라가 춤을 추고 마지막은 모두 허리에 밧줄을 묶은 채 기둥 아래로 뛰어내리는 형태였다고.

다만 멕시코의 많은 마을에서는 이런 의식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심지어 죽는 경우도 있어 이 의식을 금지한 곳들도 많다. 스페인 정복 당시 스페인 연대기 작가인 디에고 두란은 밀고 들어오는 멕시카 군대에 몰린 한 왕족이 포로로 잡히자 높은 장대 위로 올라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사건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 의식은 스페인 정복 이후 많이 사라졌고, 스페인 사람들도 이 의식에 관한 많은 기록들을 파괴했다. 교회는 이 같은 '이교도 의식'을 반대했고 볼라도레를 포함한 비슷한 의식들은 사라지거나 비밀리에 행해졌다. 그래서 볼라도레에 관해 알려진 것들은 대부분 멕시코에 온 최초의 유럽인들의 구전과 글에 기인한다.
 

볼라도레 /flickr

식민 시대 이후 볼라도레는 일종의 볼거리가 되었지만 많은 지역에서 대부분 사장되었다. 단지 토토나크족 사람들을 포함한 소수 민족 속에서 살아남은 셈이다. 특이하게도 볼라도레는 토토나크족에서 시작된 게 아니지만, 멕시코 베라크루스주의 파판틀라 지역에에서는 볼라도레 의식을 치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라크루스주 산악 지역의 삼림 벌채로 인해 대부분의 볼라도레 퍼포머들은 나무가 아닌 금속 기둥에서 의식을 치른다. 
 

볼라도레 /flickr

현대의 볼라도레엔 여러가지 변형된 형태가 존재한다. 본격적인 의식은 장대 꼭대기에서 시작되며 5명이 아닌 6명의 퍼포머가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축제가 열리는 목요일, 일부 퍼포머들은 신들이 이 의식을 좋게 볼 수 있도록 의식 전 하루 이상 금식을 하거나 성관계를 하지 않는 등 여러 규칙을 따른다.

논란이 있다고 한다면 이 의식에 여성이 참가하는 것으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전통적으로는 옛날부터 여성이 이 의식에 참가하는 걸 금기시했다고 한다. 파판틀라주에서는 여성이 볼라도레에 참가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금지한 상태다. 여성이 '불운을 가져오는 나쁜 존재'라며, 여성이 이 의식에 포함되면 죄를 짓는 행위로 인식되거나 신을 화나게 할 것이라는 해묵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멕시코 중동부 내륙의 푸에블라주, 베라크루스주 일부 도시에서는 여성들도 볼라도레 퍼포머로 활동하고 있는데 다만 이 과정도 순탄치는 않다. 허락된 여성들은 신의 용서를 구한다는 이유로 여러 의식을 수행해야 한다. 미혼인 경우 애인이 없는 처녀여야 하며 결혼했을 시 의식 전 성관계를 삼가야 한다고.
 

기둥에 오르는 퍼포머들 /flickr

토토나크 신화에 따르면 신들은 인간에게 '너희가 춤을 추면 우리가 그 모습을 볼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 고대의 신들을 위해 인간들이 춤을 추면서 신을 기쁘게 하는 건 전통적인 의식의 일부다. 볼라도레를 위해 퍼포머들은 빨간색 바지와 흰색 셔츠를 입고 가슴팍에 천을 두른 후 모자를 쓴다. 바지, 모자, 천은 수가 놓여 있고 여러 장식이 있다. 가슴에 맨 천은 피를 상징하며 모자는 다산을 상징하는 꽃으로 장식된다.

의식은 장대에 쓰일 나무를 선택하고 자르는 것부터 모든 퍼포머가 장대에서 내려온 후 마지막 춤을 추는 것으로 끝난다. 의식에 쓸 적합한 나무를 찾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 베어내는 과정에서도 산신에게 허락과 용서를 빌어야 한다. 나무를 잘라 의식 장소로 끌고 가면, 기둥을 세우기 위한 구멍을 판다. 기둥을 세우기 전 꽃, 술, 양초와 함께 살아 있는 닭이나 칠면조를 제물로 바친다.
 

위험해 보이지만, 올라야 하는 이들 /flickr

기둥이 세워지면 이 기둥은 하늘과 땅,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대부분은 이제 나무보다는 강철 기둥을 쓰며, 의식은 춤과 노래로 시작된다. '카포랄'이라 불리는 족장과 네 명의 퍼포머들이 신에 대한 겸손과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숙인 채 질서정연하게 장대로 향해 나아간다. 작은 북과 플루트로 음악을 연주하는 족장이 먼저 기둥을 오르기 시작하며, 족장은 내려오지 않고 의식이 끝날 때까지 꼭대기에 머물러 있다.

네 사람이 장대와 자신을 연결하는 밧줄을 묶는 동안 족장은 동쪽부터 시작해 네 가지 방향을 알리는 플루트와 북을 연주한다. 퍼포머는 네 개의 밧줄을 각각 13번씩 총 52번을 감는다. 족장을 제외한 네 명의 퍼포머는 동서남북과 네 가지 원소인 흙, 공기, 물, 불을 상징하며 족장은 태양을 대표한다. 꼭대기에 오른 네 명의 퍼포머는 적당한 순간이 왔을 때 뒤로 떨어지며 밧줄에 매달려 땅으로 향한다. 기둥 주위를 13번 회전하며 떨어지는 이 모습은 밧줄이 풀리면서 피라미드가 회전하는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볼라도레 /flickr

퍼포머들이 내려갈 때 족장은 작별의 춤을 추며 연주를 한다. 네 명의 퍼포머들이 기둥에 단단히 묶인 채 머리를 숙이고 팔을 마치 새의 날개처럼 뻗어 내려가는 모습은 비가 내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퍼포머들이 마침내 땅에 착륙하면 현장 분위기는 신과 연결되었는 영적 충만함으로 가득해진다. 꼭대기에 앉아 있는 족장은 여전히 아름다운 곡을 연주한다. 이 의식은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며 자연과 신에 대한 축하, 그리고 조상들의 지혜에 대한 경외를 담고 있다.
 

볼라도레 /flickr

볼레도라는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유네스코 측은 볼레도라를 두고 '변형된 모습이라 할지라도 모든 볼라도레 춤이라면 우주의 탄생이라는 신화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고 있으며, 따라서 볼라도레의 제례의식은 세계관과 공동체의 가치를 표현하는 동시에 신과 소통하는 것을 돕고 번영을 기원한다. 춤꾼들 스스로는 물론이고, 이 영적인 의식에 참여하는 다른 많은 이에게도 그들이 전승해온 문화적 유산과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과 경외심을 갖게 해 준다.'고 평가한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퍼포머들이 30미터 이상 장대 위에 오르는 모습은 보는 건 언뜻 봤을 때 장관일 수 있다. 정상에 도달한 퍼포머들이 밧줄에 묶인 채 빙글빙글 돌며 땅으로 내려오면, 이후 관중석을 돌고 관람자들은 이들에게 팁을 준다고 한다. 멕시코에 놀러 갈 일이 생겼다면, 놓칠 수 없는 놀라운 문화 체험이기도 하다. 볼라도레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전통적인 의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의식 때마다 위험천만한 장대 위, 신을 향한 퍼포머들이 짊어진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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