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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계속되는 콘텐츠 속 '역사 의식' 논란...그들의 '답변'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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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계속되는 콘텐츠 속 '역사 의식' 논란...그들의 '답변'이 불편하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4.01.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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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크리처 포스터 /넷플릭스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지난 16일,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 파트2는 지난주에 이어 1월 3주차에도 통합 콘텐츠 1위를 달성했다.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의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크리처 스릴러를 표방한다. 시즌1 전편 공개에 이어 지난 5일에 파트2를 공개했다.

'경성크리처'는 시즌 1 전편이 공개되면서부터 꾸준한 잡음이 있어 왔다. 작품에 대한 완성도나 메시지는 논외로 하고, '경성크리처'에서 그려진 '독립군'에 대한 입장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경성크리처'의 주연인 배우 한소희가 한 언론과 나눈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 묘사에 대해 혹평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던 사람은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선택을 두고 평가하는 건 독립운동가들에게 무례할 수 있는 발언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 중 그러지 못한 사람들, 즉 변절이나 친일을 택한 사람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냐는 말을 전한다.

이 발언에 대해 누리꾼들은 여러 의견을 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을 자세히 뜯어보면 어딘가 묘하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보인다. 배우의 인터뷰 스킬이 부족했다는 옹호를 빼고 봤을 때 전체적인 말의 배경을 본다면 말이다. 그 시대에 살아 보지 않은 지금의 우리들이 그 때의 독립군 묘사에 대해 혹평을 한다면, 그 점 자체가 무례하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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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크리처' 스틸컷 /넷플릭스

'경성크리처'를 본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들이 왜 하나같이 '민폐', 혹은 '무능'한 사람들처럼 묘사했냐는 점이다. 시즌 1에서 남주의 주변을 맴도는 주변인들, 또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대부분 일제의 권력에 무릎을 꿇거나, 또는 일제의 편에 서는 등 변절과 밀고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경성크리처'의 강은경 작가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에 「독립군을 너무 멋있게, 영웅적으로 그리는 것은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말을 했다. 이 말만 본다면 일반적인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저절로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뜰 수밖에 없다. 과연 독립운동가들이, 폭력적이라는 말과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는 말인지 잠시 인지부조화가 올지도 모른다.

작가의 의도는 어차피 예측에 불과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라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으니 모든 독립군을 완전 무결한 영웅으로 그리는 것은 폭력적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경성크리처' 스틸컷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독립군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변절자'라고 이름 붙였던 이들을 또 다른 모습의 독립군의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날 살려주지 않으면 폭탄 위치를 알려주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독립군, 명령을 듣지 않고 모두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독립군, 동료의 정보에 대해 그저 줄줄 불어버리는 독립군. 사람들을 구출하는 과정에 몇몇이 희생당하자 극중 속 독립군은 희생은 어쩔 수 없다 말하고, 남주인공은 남의 목숨을 희생하는 건 당연하냐며 일침을 놓는다. 

그리고 '경성크리처'에서 묘사된 독립군들은 고문과 협박, 고통에 의해 힘없이 굴복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간군상 또한 각각 선명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더 크게 다가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톱과 발톱이 뽑혀 나가도 이 나라의 독립만을 생각했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고문과 회유로 변절자가 된 일명 이 '독립군'들은 수치를 알고 숨어 시청자들에게 그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닌, 남주인공의 주변에서 그를 영웅으로 세우는 역할을 수행하는 소모적인 장기말에 그쳤다는 것이 다시금 불편하게 한다.

이들을 단순히 작가의 의도대로 '인간적으로' 그린 모습은, 이들처럼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하지 못했던 선택을 기꺼이 감내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폭력적이게 느껴진다.
 

젠지 이스포츠의 1차 사과문 /젠지 이스포츠 SNS

'경성크리처'가 한창 넷플릭스에 방영되고 있을 시기, E-스포츠에서는 뜬금없이 동북공정 논란이 터진다. 그것도 한국 선수들이 있는 한국 팀에서 말이다. 지난해 12월 20일, 젠지 이스포츠팀은 사과문 하나를 대뜸 올린다. 무려 '영토의 무결성'이란 단어가 포함된 사과문이다. 젠지 이스포츠팀을 후원하던 시디즈는 퍼시스 그룹의 의자 전문 브랜드로 대만에 첫 진출을 하게 되는데, 선수단도 관련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젠지 이스포츠는 시디즈의 첫 해외 진출 국가가 대만이라며 축하 인사를 올렸다.

여기서 대만을 국가라 칭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판단했는지, 젠지는 그 축하문을 바로 내리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젠지 디스코드와 젠지 웨이보 등 한국어와 중국어 두 가지로 두 곳에 사과문을 올린다. 그 사과문이 이 내용이다. 젠지는 평소에도 구단 측에서 중국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고, 여러 사업 또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과 분쟁 중인 대만을 국가라 칭한 것이 단순한 실수라 생각했다면, 중국 측의 눈치를 보아 사과문을 올리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다. 하다못해 단어 선택에 문제가 있어 글을 내렸다며, 앞으로는 주의하겠다는 말만 했어도 말이다.

정치적 의도 없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었다면 이정도의 대응으로 끝났어야 했다. 어쨌든 젠지 이스포츠는 엄연한 한국 팀이니 말이다. 그런데 급히 올린 사과문에서 뭔가 기묘한 단어들이 보인다.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무결성을 단호히 존중하고 지지'라는 이 듣도보도 못한 문장에 팬들은 난데없이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 됐다. 한국에서 한국 팀이 당당하게 동북공정을 지지한다는 말이 나왔으니 큰 파장이 이는 것도 당연하다. 

젠지 이스포츠는 한국팀이지만 아놀드 허 CEO는 대만계 미국인이다. 롤이라는 게임 자체가 중국의 텐센트 소유고 중국 시장 또한 뷰어십(시청자 수)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돈이 되는 시장이고 무시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한국인들로 이루어진 한국 팀에서 앞장서서 동북공정의 핵심인 말을 했다는 건 말 그대로 자폭하는 것과 다름없다. 심지어 젠지 웨이보에서는 'Gen.G는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확고히 존중하고 수호하는 입장이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사과문이 문제가 되자 아놀드 허 CEO는 이슈가 발생했을 당시 비행 중이었기 때문에 상황 파악이 늦었다는 답변을 입장문 서두에 게시했다. 
 

CEO의 사과문 /젠지 이스포츠 디스코드

동북공정은 지금도 중국이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일로, 우리나라의 고조선사와 부여사, 고구려사와 발해사가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주장을 하며 우리나라 자체를 지워 버리려는 시도다. 현재 중국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는 한둘이 아니며, 한국 역시 그에 포함이다. 국내 정서는 물론이고 여러 국가와도 관련되어 있는 일에 해당 사과문은 '신중'이란 느낌이 전혀 없이 그저 중국에만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이 저자세의 사과문이 그들에게는 당연했기 때문일까.

그도 그럴 것이 아놀드 허 CEO는 예전부터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이 팀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꿈꾸고 있으며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팬층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한 개인의 꿈이 그렇다는 걸 말릴 수야 없지만, 지금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팀은 그 동북공정에 끊임없이 문화와 역사를 침해당하고 있는 한국 팀이라는 것을 잠시 인지하진 못한 모양이다. 

2022년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추진을 두고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와 중국 인민의 입장은 일관되며 중국의 국가 주권과 영토 무결성을 확고히 수호하는 것은 14억 중국 인민의 확고한 의지"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도 어디서 많이 본 단어가 나오는데, 중국 주석의 입에서 나온 '영토 무결성'이란 단어를 한국 E-스포츠팀의 사과문에서 똑같이 볼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사과문인지 동북공정 옹호문인지 헷갈리는 이 글에 반응은 불이 났고, 이어 젠지 이스포츠 이지훈 단장이 젠지 디스코드에 글을 하나 올린다.
 

단장의 사과문 /젠지 이스포츠 디스코드

그는 "중국 지사 측의 의견을 젠지 KR마케팅 부서에서 국내 정서 및 국제상황을 고려한 충분한 검토 없이 포스팅했다"며, 회사 내외적인 모든 일에 관여하거나 공유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공식 사과문에는 버젓이 '젠지 이스포츠 배상'이란 글이 올라가 있지만 단순히 마케팅 부서에서 일어난 사안으로 은근슬쩍 꼬리를 자르는, 전형적인 좋지 못한 입장문에 속한다. 심지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창구도 아닌 팬 대상의 디스코드에 올려 빈축을 샀다. 당시 젠지 웨이보에는 사과문이 내려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입장문대로라면 중국 지사에서 선수들의 방송 일정도 취소시키고, 스폰서였던 시디즈 행사도 취소시켰으니 한국 팀이 아닌 중국 팀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CEO도, 단장도 몰랐던 일을 마케팅 부서가 독단적으로 저질렀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중국 지사가 시킨 걸 한국 지사는 하다못해 한 번의 검토도 없이 그냥 올렸다는 건 한국 지사의 힘은 사실상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젠지 이스포츠의 2차 사과문 전문 /젠지 이스포츠 SNS
젠지 이스포츠의 2차 사과문 전문 /젠지 이스포츠 SNS

이 모든 걸 마케팅 부서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CEO와 단장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직원이 중국 지사가 준 그대로 사과문을 올리는데 윗선의 컨펌 없이 진행하고 잡혀 있던 행사까지 취소하는 이 과정에서 CEO나 단장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입장문 또한 논란이 되자 젠지 이스포츠는 2차 사과문을 올린다. 그 사과문이라는 글에도 '미숙한 표현력과 섣부른 판단'이란 말과 함께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영토완정'이란 단어를 국가 정서로 축소시켜 뭉뚱그린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이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조차 인지할 생각도 없고, 여전히 인지하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시디즈 측은 첫 번째 사과문이 뜨기 전날 행사 장소를 겨우 구했지만 그 다음날 바로 행사를 취소당했다. 시디즈는 이전부터 LCK의 여러 팀에 꾸준히 후원을 해 왔으며 2023 아시안게임에서는 국대 선수들의 의자를 후원하는 등 LCK에 적극적이었다. 이 사건 이후 2024 시즌을 맞아 젠지 이스포츠, 광동 프릭스, KT 롤스터 등 여러 LCK 팀의 후원 목록에 시디즈는 현재 보이지 않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고 제공하는 이들은 대중에게 '역사'라는 것을 언급할 때 자신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을 인지하고, 입장을 밝히기 전 신중을 기하는 것을 무겁게 여기길 바랄 뿐이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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