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7 15:20 (토)
[현장스케치]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재개관...기증으로 시작된 나눔, 전시로 이어지다
상태바
[현장스케치]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재개관...기증으로 시작된 나눔, 전시로 이어지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4.01.12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눔의 가치를 발견하는 기증관, 다채롭고 풍성한 전시 콘텐츠로 관람객을 맞이하다
새단장한 기증관 /김서진 기자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은 새롭게 단장한 기증관을 1월 12일부터 전면 공개한다. 이번에 문을 여는 기증관은 2022년부터 2년에 걸쳐 이루어진 기증관 개편 사업의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 개편은 모든 세대의 관람객이 문화유산 나눔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면서 기증된 문화유산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 조성을 목표로 했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이홍근 기증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보물)과 이근형 기증 <이항복필 천자문>(보물), 국립중앙박물관회 기증 <나전경함>(보물), 송성문 기증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제15>(국보) 등 국가지정문화유산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와 함께, 재개관을 기념하여 손창근 기증 <세한도>(국보)와 윤동한 기증 <수월관음도>를 5월 5일까지 특별 공개한다. 
 

기증Ⅰ실 /김서진 기자

개편된 기증관은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려 볼 수 있는 ‘기증 오리엔테이션 공간’과 박물관의 소장품이 된 기증품을 다양한 주제로 펼쳐 보이는 ‘기증 주제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2년 12월에 먼저 문을 연 ‘기증 오리엔테이션 공간’(기증Ⅰ실)은 ‘나눔’이라는 핵심어를 중심으로 기증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 기증의 의미를 담은 영상 공간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여 많은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핸드메이커는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적인 기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예술 작품이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핸드메이커와 동행해 주세요.

후원하기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기증 주제 전시 공간’(기증Ⅱ‧Ⅲ‧Ⅳ실)에는 기증자의 사연이 담긴 토기와 도자기에서 금속공예품, 목가구, 서화, 근현대 판화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기증 문화유산을 세 가지 주제로 구분하여 전시실을 조성하였다.
 

10분 정도 진행되는 영상 /김서진 기자

기증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문화재를 전시해 기증자들을 기리며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공간이다. 기증품 하나에는 수집가 한 사람이 그 문화재를 만나게 된 계기부터 기증을 결심하기까지의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증자와 기증품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기증은 기억을 나누는 매개'라는 것이다. 각자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기증품들은 박물관에 전시되고, 관람객이 감상함으로써 그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

기증 오리엔테이션 공간을 지나면 기증의 의미를 '기억'에 초점을 맞춰 풀어낸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기증은 수집에서 시작된다. 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수집으로 이어진다. 기증자들이 문화재를 만나고 사랑하게 된 자신의 기억을 들려주며 문화재 전문가, 박물관 관계자, 관람객들로부터 기증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다. 문화재 기증은 개인의 기억을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만들어 공공의 문화적 자산을 이룩하도록 하고, 기증은 소중한 기억의 나눔임을 깨닫게 한다. 
 

나눔의 길 /김서진 기자
기증자들의 메시지를 볼 수 있다 /김서진 기자

'나눔의 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중한 문화재를 기증해 준 수많은 기증자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기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담은 이 공간에서는 그들이 남긴 어록을 감상할 수 있다. 마치 은하수처럼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기증자를 기리고 기증품을 만나는 나눔의 여정이 시작된다.
 

청동 투구 /김서진 기자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청동 투구는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에서 만든 것이다. 눈과 입만을 드러낸 채 머리 전체를 감싸는 '코린토스 양식' 투구로, 목으로 이어지는 아랫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가다가 나팔처럼 벌어져 있다. 이 투구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의 우승자에게 주는 부상이었다.

당시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가 받아야 했지만 전달되지 못한 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박물관에 50년간 보관되어 있었다. 이를 안 손기정 선생은 이 투구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실로 1986년 베를린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선생의 품으로 돌아왔다. 1987년 정부는 손기정 선생의 올림픽 우승을 표상하는 이 투구를 나라의 '보물'로 지정했다.
 

이홍근 선생의 기증품 /김서진 기자

동원 이홍근 선생은 실업가로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혼란기 속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수집을 시작한다. 평생에 걸쳐 모은 문화유산을 온전하게 지키며 문화유산 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가족들은 고인의 뜻을 존중해 수집품을 국가에 기증했고 1980년부터 네 차례에 걸친 기증품은 10,202점에 이른다. 도자와 서화에서 금속, 토기, 석기, 석조물까지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전모를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다. 
 

<청자 퇴화 연꽃 넝쿨무늬 주자>, 1980년 이홍근 기증 /김서진 기자

이홍근 선생의 수집품은 기증 이전부터 박물관과 인연을 맺어 왔다. 그 중에서도 이 주자는 연꽃으로 멋스럽게 장식된 고려청자의 수작으로 박물관 특별전의 단골손님이다.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한국미술이천년전>에 출품되었는데 이때 강세황의 《송도기행첩》을 비롯한 이홍근 선생의 대표 서화, 도자기, 금속공예품이 함께 전시되었다. 이 주자는 1976년부터 1985년까지 <한국미술오천년전>에도 출품되어 국보 반가사유상과 함께 미국, 유럽 전역을 순회하기도 했다. 동원 선생의 수집품은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증Ⅱ실 /김서진 기자

‘기증Ⅱ실’은 ‘문화유산 지키기와 기증’이라는 주제로 20세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의 혼란기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지킨 분들의 노력을 살펴본다. 국외로 반출되거나 훼손될 위험에 처할 뻔한 문화유산, 후손들이 정성껏 지킨 문중 문화유산, 국립중앙박물관회 등 단체의 노력이 기증으로 이어진 사례를 통해 기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였다.
 

박병래 선생이 기증한 여러 청자 /김서진 기자
백자 연적, 백자 잔과 항아리 /김서진 기자

수정 박병래 선생은 일제강점기 어려운 사람에게 인술을 베푼 의사였고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열성적으로 도자기를 모은 수집가였다. 조선 청화백자를 주로 수집했기에 중요한 청화백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다.

수집품 가운데에는 다양한 연적들이 특징적으로, 작고 귀여운 도자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낸 기증자의 안목을 엿볼 수 있다. 1974년 누구든지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평생 모은 도자기 가운데 375점을 간추려 박물관에 기증했다. 선생이 돌아가신 뒤 부인 최구 여사도 41점을 기증했다. 이 백자들은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아 모두가 함께 그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다.
 

<이항복 호성공신 초상>, 2019년 이근형 기증 /김서진 기자

'가보'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귀중한 보물이라는 뜻이다. 가문의 보물은 개인뿐 아니라 집안의 역사와 문화까지 담고 있다. 문중을 중심으로 가문의 역사를 대대손손 이어 나가기 위해 가보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키려 했고, 그러한 정성 덕분에 많은 문화유산이 전해져 오고 있다. 선대에 공부하던 책, 조정에서 내린 교지, 무덤에서 나온 도자기와 명기 등 종류도 다양하고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도 다르다. 가문의 여러 사람들이 뜻을 모아 지킨 문중의 문화유산이다. 

이항복의 49세 때 모습으로 1604년 호성공신교서와 함께 받은 초상화를 후대에 옮겨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초상화는 후손들이 귀하게 보존하다가 낡으면 이를 옮겨 그리는 전통이 있다. 오사모를 쓰고 단령을 입은 관복 차림으로 흉배의 공작 문양과 서대(코뿔소 뿔 장식 허리띠)는 문관 1품의 지위를 나타낸다. 음영을 넣어 얼굴을 입체적으로 그린 수법은 초상화를 옮겨 그린 18세기의 화풍이 가미된 것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보여준다. 
 

<수월관음도>, 2016년 윤동한 기증 /김서진 기자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박물관에 기증된 우리 문화유산 중에는 외국에서 돌아온 것들이 있다. 초기에는 근대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수집품을 그 후손들이 기증한 경우가 많았고 요즘에는 재외교포 등 개인이나 국립중앙박물관회 등의 단체에서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구입해 기증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박물관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게 됐다. 

5월까지만 대중에게 공개되는 수월관음도는 한국콜마홀딩스 창업주 윤동한 회장이 기증한 고려시대 작품이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전세계에 46점 정도만 남아 있고 그 가운데 5점만이 국내 사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윤동한 회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월관음도가 없다는 걸 알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할 목적으로 일본에 유출되었던 수월관음도를 구입해 국가에 기증했다. 윤동한 회장의 기증은 국가가 아닌 개인이 국외 소재 중요 문화유산을 환수해 기증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이 머무는 보타락가산을 방문해 지혜를 구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700여년의 세월을 견디며 일부 손상된 부분이 있으나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전체 모습이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어 있다. 관음보살은 바위 위에 앉아 있고 선재동자는 왼쪽 아래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관음보살을 바라보고 있다. 부드러운 선묘로 표현한 관음보살의 자비로운 얼굴과 선재동자의 천진한 표정은 이 수월관음도의 백미다. 
 

기증Ⅲ실 /김서진 기자

‘기증Ⅲ실’은 ‘기증 문화유산의 다채로운 세계’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조형성과 미감을 지닌 문화유산을 전시실을 가로지르는 중앙 통로 좌우에 전시하여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 옛 생활문화를 담고 있는 문방과 규방 공예품, 흙과 금속으로 만든 문화유산, 그리고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 등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데 어우러져 조화와 공존의 의미를 보여 준다.
 

다양한 기와 /김서진 기자
도자기와 토기 /김서진 기자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기증으로 이어졌다. 수집가의 품에 있던 문화유산이 그들의 곁을 떠나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지금까지 박물관에서 기증받은 5만여점의 문화유산은 토기, 도자기, 금속공예, 목가구, 서화 등 매우 다양하다. 옛 생활문화를 담고 있는 서책과 문방, 규방 공예품, 흙과 금속으로 만든 문화유산,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까지 다채롭고 폭넓은 기증품이 펼쳐진다. 
 

문방 관련 기증품들 /김서진 기자

문방은 선비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벗들과 담소를 나누었던 학문을 위한 방이다. 선비들의 기품과 멋이 담긴 곳으로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을 피했다. 서재의 이름이 적힌 현판을 단 문방에는 서책과 문방구, 이를 놓아두는 가구가 있다. 서책은 지식을 배우는 교재이자 학문의 소산이다. 문방구 중 기본적인 것은 종이, 붓, 먹, 벼루로 문방사우라 부른다. 그밖에도 선비와 관련된 각종 용구와 완상품 등도 있다. 선비들의 마음을 헤아려 수집한 기증자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청자 기름병, 2009년 유상옥 기증 /김서진 기자

송파 유상옥 선생은 코리아나 화장품의 창립자로서 오랫동안 옛 여성의 미와 생활에 관련된 문화유산을 수집했다. 화장문화 전문 박물관인 코리아나화장박물관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 전통 화장 문화를 알리는 데 부단히 노력했으며 2009년 그동안 수집해 온 화장용기 등 명품을 선별해 214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향유와 머릿기름, 분 등의 화장품을 담는 데 썼던 도자기들은 아름다움을 갖춘 공예품이자 옛 여성들의 화장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규방용품, 박영숙 기증 /김서진 기자

다듬잇돌은 옷감의 구김을 두드려 펴는 도구다. 우리나라의 다듬잇돌은 재질과 형태는 물론 무늬가 매우 다양하며 실용품이면서도 개성과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있어 전통공예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옷감의 구김을 펴고 옷 모양새를 잡아주는 인두, 다림질에 살균효과까지 더해주는 숯불 다리미, 다림질 도구들을 달구기 위해 사용한 화로는 기능성과 전통적 미감이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러가지 바느질 도구를 모아 두는 반짇고리는 자개로 장식되어 밝고 온화한 안방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전통 매듭, 김희진 기증 /김서진 기자

규방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공간을 일컫는다. 옛 여성들은 규방에서 바느질, 다듬이질, 다림질과 같은 집안일을 하면서도 옷가지나 버선, 주머니에 고운 수를 놓고 매듭을 달았으며 자투리 천으로 조각보를 만들었다. 이들은 화장과 노리개로 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생활용품을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작품들은 규방 문화의 산물이다. 

김희진 선생은 우리 매듭에 관심을 갖고 1963년 중요무형문화유산 매듭장 정연수 선생의 문하생으로 입문하면서 본격 매듭 수업에 전념했다. 선생은 전국 각지의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전통 매듭의 복원에 힘쓰는 한편 사라져 가는 전통 매듭 수집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그는 1976년 중요무형문화유산 22호 매듭장이 된다.

매듭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지는 개인적인 발전에만 머물지 않았다. 1979년에는 한국매듭연구회를 설립해 전통 매듭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고 2004년에는 지난 40여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복원 작품과 직접 수집한 매듭 등 491점을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기와, 유창종 기증 /김서진 기자

유창종 선생은 '기와 검사'로 불리며 평생 기와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검사 시절 충주 탑평리에서 연꽃무늬수막새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옛 기와에 매료되어 기와 수집에 빠져들었다. 2002년에는 애지중지 모은 기와 1,875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한국의 와전을 망라한 기증품에는 다양한 기와뿐만 아니라 기와를 찍어내던 틀도 있다. 한국과 비교되는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외국 기와도 모았다.

선생의 기증이 1987년 이우치 이사오 기증자로부터 자극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의 기증품과 나란히 전시하길 희망했다. 의견을 존중해 두 기증자의 수집품을 함께 전시했으며 동아시아 기와와 벽돌의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탄생한다. 
 

기와, 암막새, 거푸집 등 다양하다 , 이우치 이사오 기증 /김서진 기자

이우치 이사오 선생은 어린 시절 삼촌에게 짐승 얼굴무늬 기와를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 기와에 흥미를 느낀다. 그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한국의 기와와 벽돌에 관해 연구했다. 1987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와 벽돌 1,082점을 기증한다. 다양한 형태와 문양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기와 발달사를 연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료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수집품을 한국에 돌려준 이 기증 사례는 이후 유창종 선생에게도 영향을 준다. 두 사람은 생전에 만나지 못했지만 기와로 인연을 맺는다.
 

국경을 넘어 온 수집품들 /김서진 기자

박물관의 기증품 중에는 세계 곳곳에서 들어온 시대와 종류가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다. 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이 만든 조형예술품, 아시아 북방 지역의 고대 금속기, 유럽과 호주의 선사시대 도구, 근현대 판화 등이 대표적으로 그 수집과 기증의 배경도 다양하다. 외국 문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수집한 물건, 외국인에게서 받은 선물, 외국 박물관에서 한국과의 문화 교류를 위해 보내온 것 등이 있다. 이처럼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기증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문화유산에 깃든 사람들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기를 바라는 공통된 마음이 있다. 
 

여러 금속 기증품들 /김서진 기자
관, 1998년 변종하 기증 /김서진 기자

금속은 인류가 오랫동안 활용해 온 재료다. 금과 은은 특유의 빛깔을 발산하며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어 장신구 등 고귀함을 나타내는 물건을 만드는 데 최고의 재료였다. 단단하고 강한 철은 무기와 농기구의 재료로 적합했고 청동은 단단하면서도 다른 금속과 함께 사용할 수 있어 널리 쓰였다. 금속으로 만든 기증품에는 장신구와 생활용품, 불상과 불교공예품, 마구와 칼 등이 있다. 수집가가 발견한 금속 문화유산의 색과 질감, 광택, 세밀한 무늬 등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기증Ⅳ실’은 ‘전통미술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공간이다. 예술가의 안목으로 옛 물건들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전통미술품에서 받은 영감을 예술 창작활동의 원천으로 삼은 현대 작가들의 기증품을 소개한다. 
 

김종학 선생의 작품과 기증품들 /김서진 기자

옛것을 모으고 기증한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이 있다. 뛰어난 미적 안목으로 옛 물건들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목가구의 선, 비례, 질감에서 현대적 조형미를 발견했으며 민예품의 활달한 무늬와 색채 조합에서 현대미술의 지속성과 나아갈 방향을 찾기도 했다. 나아가 전통미술품에서 받은 영감을 예술 창작 활동의 원천으로 삼아 새로운 경지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예술가가 발견하고 표현해낸 아름다움을 그들이 기증한 전통미술품과 현대예술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김종학 선생은 우리나라의 자연, 특히 설악산의 사계절을 화폭에 담아내어 '설악의 화가' '꽃의 화가'로 널리 알려진 화가다. 그림에 드러나는 자연에 대한 애정은 전통 목공예품의 수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6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이조 문방 목공예>전시에서 조선시대 사방탁자의 조형미에 매료되어 목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987년 조선시대 생활용품과 종교, 의례용품 등 목칠공예품 292점을 기증했다. 간결한 비례의 사랑방 가구, 반닫이와 궤가 대표적이다. 선생의 기증품은 우리나라 목공예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
 

김종학 선생의 작품과 기증품들 /김서진 기자

안방 가구는 여성의 생활공간에 놓이는 가구답게 사랑방 가구보다 장식성이 돋보이지만 그 기본은 단순함과 간결함이다. 대표적 안방 가구인 장과 농은 의복과 이불을 넣어두기 위한 것이다. 화가 김종학을 상징하는 또다른 주제는 꽃이다. 선생은 꽃을 그대로 사생하지 않고 들에서 본 꽃들을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가 붓끝으로 캔버스에 표현했다.

'꽃들을 색채의 배열로 본다'는 선생의 말처럼 꽃 그림은 베갯모 등을 장식하는 자수 그림과 닮아 있다. 안방 창문 밖에 피어난 김종학 선생의 들꽃 그림은 마치 농을 열었을 때 차곡차곡 쌓인 베갯모의 자수처럼 작가와 전통 미술품이 상응하는 또다른 지점을 보여준다.
 

유강열 선생의 기증품들 /김서진 기자

유강열 선생은 판화가이자 공예가로서 한국 공예 미술의 발전에 큰 자취를 남겼다. 1954년 국립박물관 부설 한국조형문화연구소에서 염색과 판화 공방을 맡아 전통 민예를 현대공예로 발전시키기 위해 힘썼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정체되거나 단절된 우리나라 예술의 지속성과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전통 민예품에 주목하며 삼국시대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문화유산을 수집했다.

삼국시대 토기, 조선시대 백자와 나전칠기, 민화 등에서 발견한 옛 장인들의 조형 의식은 판화와 염직이라는 현대예술 장르에서 새롭게 꽃을 피웠다. 부인 장정순 여사는 선생이 돌아가신 뒤 수집품과 함께 관련 자료를 기증했다. 수집한 전통 민예품과 판화, 염직 작품, 작업도구, 아카이브는 우리나라 근현대 조형 예술의 역사를 보여준다.
 

<세한도>, 2020년 손창근 기증 /김서진 기자

전시의 마지막에는 기증 테마 공간을 마련하여 기증 문화유산과 관련된 작은 주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에는 기증관 재개관을 기념하여 2020년 손창근 선생의 기증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5월 5일까지 전시한다.
 

<세한도> /김서진 기자
김정희의 <세한도> /김서진 기자

김정희는 제주도에 유배된 자신에게 북경 학계의 소식과 서적을 전하는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워하며 <세한도>를 그렸다.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을 추운 겨울에도 변함이 없는 소나무와 측백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거친 종이 위에 메마른 붓질로 사물을 간략하게 그리고 공간을 비워 쓸쓸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그림 뒤에는 줄을 쳐서 네모칸을 만들고 굳세고 각진 글씨로 그림의 제작 배경을 썼다. 화면에 찍힌 인장 중 '장무상망'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김정희와 이상적의 우정을 함축하고 있다. <세한도>는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뜻을 그림과 글씨, 인장으로 표현한 최고의 문인화다.

<세한도>는 19세기 후반 이상적의 제자인 역관 김병선에게 전해졌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김준학에게 전해진다. 김준학은 <세한도> 앞쪽에 제목과 시를 쓰고 <세한도>뒤쪽 청나라 문인들의 감상글 사이에 두 차례 시를 적어 넣었다. 김준학은 1914년 1월과 2월 연이어 글을 쓰며 자신이 <세한도>의 소장자임을 드러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자막 스피커 /김서진 기자
책자의 점자 /김서진 기자
영상 설명에서 휠체어 그림을 누르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관람자의 눈높이에 맞춰 화면 아래에 뜨는 표시가 인상적 /김서진 기자

이번 기증관 개편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추구하는 ‘모두를 위한 박물관’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문화취약계층의 접근성 향상을 도모하였다. 전시실 입구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 패널과 음성 안내를 받을 수 있는 QR코드를 설치하였고, 영상 공간에는 수어 영상과 음성 자막을 함께 제공하였다.

또 휴게 공간 곳곳에 배치한 쉬운 설명 책자, 전시 공간에서 기증 문화유산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촉각체험물 등으로 발달장애인과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관람객이 더욱 편안하게 전시를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박물관에 기증된 문화유산을 살펴보면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나눔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모두 하나같이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이다. 기증자들이 기증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상황은 다르지만 박물관에 기증하게 된 뜻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유산이 가야 할 곳은 제대로 지키고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증자들이 문화유산에 대한 열정과 믿음으로 실천한 기증은 문화유산에 또다른 생명을 불어넣는다. 덧붙여 박물관은 기증품을 새로운 소장품으로 맞이하며 더욱 폭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기증자들의 나눔의 뜻을 기리며 모두가 함께하고 사랑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나도록 애쓸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2017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은 현실과 다른 불합리함으로 수공예 작가들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 같았습니다. 극적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핸드메이커는 이러한 불합리에 ‘NO’를 외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실을 꿰 엮기도, 펜과 물감 으로 그리기도, 흙을 빚어내기도, 금속을 녹여 두드리기도, 정성스런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핸드메이커는 국내외 다양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독립 매체로서 주체 적인 취재와 기사를 통해 여러 미디어·포털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광고 배너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독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핸드메이커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며 독립된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을 통해 핸드메이커는 보다 독자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미래를 관통하 는 시선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에는 항상 핸드메이커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들 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 다. 앞으로 핸드메이커가 만들어갈 메이커스페이스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차례라도 여러분의 후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후원하기 링크를 통해 지금 바로 문화·예술·산업 현장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경기도 시흥시 은계로338번길 36 3층 301호(대야동)
  • 대표전화 : 070-7720-2181
  • 팩스 : 031-312-10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리
  • 법인명 : (주)핸드메이커
  • 제호 : 핸드메이커(handmaker)
  • 등록번호 : 경기 아 51615
  • 등록일 : 2017-08-23
  • 발행일 : 2017-08-15
  • 발행·편집인 : 권희정
  • Copyright © 2024 핸드메이커(handmak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handmk.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