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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그의 건물은 피부와 뼈로 이루어진 창조적인 생물이다, 루드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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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그의 건물은 피부와 뼈로 이루어진 창조적인 생물이다, 루드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4.01.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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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 도서관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현대 건축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여러 명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 사람을 빼놓고는 현대 건축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미국의 건축가, 학자, 디자이너인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그의 성인 미스로 불렸다. 

1930년대 미스는 모더니스트 예술, 디자인, 건축 교육을 위해 세워진 독일 바이마르의 예술 종합학교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을 맡았다. 특히 미스는 위원회를 결성해 시카고의 건축가들을 일리노이공과대학으로 초빙, 시카고 철골 고층 건물의 신기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였다.

미스는 ‘인간을 위한 건축’으로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 미국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함께 국제주의 건축 양식을 정의한 선구적인 건축가다. 그는 20세기 건축과 디자인을 상징하는 인물이나 다름없다. 대표적인 그의 작품으로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시그램 빌딩, 일리노이주 플라노에 있는 판스워스 하우스 등 그의 가장 상징적이면서 널리 알려진 건축물들이다.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flickr

독일에서 태어난 미스는 아버지가 석공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다. 중학교 졸업 후 그는 베를린으로 이주하며 공식 교육 없이 바로 견습을 받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 브루노 파울과 함께 몇 년을 일하면서 미스는 교외 쪽에 집을 디자인하는 첫 번째 의뢰를 받는다. 어릴 때부터 빛났던 그의 재능은 당시 유명했던 건축가 페터 베렌스의 눈에 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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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렌스는 이후 미스를 자신의 스튜디오에 초대해 르 코르뷔지에나 발터 그로피우스와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도록 도왔다. 저명한 예술가들과 같이 작업하며 미스는 현대를 대표할 새로운 건축 스타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는 철강, 판유리 등 산업 자재에 이끌렸다. 깨끗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재료를 이용한 디자인은 그의 주요 스타일이 되었다. 

1920-1930년대 들어 미스의 건축 스타일은 점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는 1933년 정부의 압력으로 바우하우스가 폐쇄되기 전까지 마지막 교장 자리를 맡기도 했다. 미스가 정치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1937년을 지배한 나치는 그의 직업적인 위치를 불안케 했다. 1938년, 여권 문제로 나치와 갈등이 있었던 미스는 시카고로 여행을 떠났을 때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만나게 된다. 

막상 미스는 영어를 못 했고, 라이트는 독일어를 못 했지만 라이트는 미스를 자신의 대규모 하우스 스튜디오인 탈리어센으로 초대하며 둘은 친한 친구가 된다. 미스는 이 탈리어센에 큰 감명을 받았고 위스콘신의 시골이 보이는 테라스로 나가 '여기가 곧 왕국이다, 자유다!'라고 외쳤다고. 4일간의 만남 후 라이트는 현재 상징적인 오피스 건물로 남은, 당시 건설 중이었던 존슨 왁스 빌딩을 미스에게 보여 주기도 했다. 라이트는 미스를 시카고 건축 커뮤니티에 소개시켜 주었고 미스는 시카고에 정착하며 영어를 할 수 있게 됐다.
 

레이크 쇼어 가 아파트 860–880 /flickr

1937년 그는 시카고로 이주해 설계와 제작, 강의 등을 이어 나갔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그가 받은 여러 의뢰들은 강철로 덮인 초고층 건물들을 포함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행할 절호의 기회였다. 시카고의 시그램 빌딩, 레이크 쇼어 가 아파트 860–880이 그의 주요 프로젝트 결과물들이다. 1960년대에도 그는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포함해 미국, 멕시코, 유럽 전역에 도서관과 사무실들을 디자인하고 건축했다.

1960년대 이후 미스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한다. 그의 회사는 여전히 잘 되었지만 막상 미스는 관절염으로 인해 집에서 일을 하며 손님을 맞았다. 수년 간의 흡연은 식도암을 낳았고 그는 수술 대신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1969년 8월, 미스는 폐렴으로 인해 2주 간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에 이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고 시카고의 그레이스랜드 공동묘지에 묻혔다.

미스는 1950-60년대 미국의 건축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요인은 화려한 장식이 없는 고층 건물의 단순성이라는 특성이 크다. 경력 전반에 걸쳐 미스는 건축물의 구조를 중점적으로 생각했고, 미국에서의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즘 선호라는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의 디자인의 단순성을 두고 'Beinahe Nichts (거의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로 요약될 정도.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flickr

1929년 바르셀로나 박람회의 독일 전시관인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미스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다. 그가 작업을 의뢰받은 이 건물은 전세계 다양한 종류의 대리석을 사용했으며, 당시 스페인 국왕의 리셉션도 이 곳에서 열렸다고. 이 건물은 공간을 정의하는 데 최소한의 요건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극단적으로 수평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며, 석회화로 만든 플랫폼은 그리스 신전과 같은 느낌을 준다. 강철 기둥은 크롬 도금을 하고 벽은 다이아몬드 패턴이 드러나도록 절단해 구성했다.

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새로운 건축 트렌드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으며 미스의 유럽 경력에 정점을 찍었다. 건물은 박람회 이후 해체되었으며 구성 요소들은 다른 건물의 재사용을 위해 독일로 보내졌다. 50년 후 건축학적 중요성을 깨달은 바르셀로나 시의회는 이를 재건축할 것을 요구한다. 곧 재건축을 위한 자재를 동일한 곳에서 조달하고, 로마와 그리스 및 아틀라스 산맥에서 대리석들을 공수했다. 이 건축물은 1986년에 다시 지어졌으며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 중이다.
 

판스워스 하우스 /flickr

1945년 설계되어 1951년 지어진 판스워스 하우스는 시카고 남동쪽의 폭스 강 유역, 시골 지역에 위치한 1층짜리 저택이다. 산업 자재를 사용한 미니멀리즘 주거 건축의 정수를 보여 주며, 최소한이라는 뜻인 '미시안 건축'의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다.

판스워스 하우스는 인공 구조물과 자연의 조화에 대한 미스의 노력을 담고 있으며, 국제주의 건축 양식의 상징적인 걸작이기도 하다. 뼈대만 남은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로 된 커튼월로 둘러싸인 단순한 모습이다. 내부와 외부의 구분을 완전히 없애고 주민들이 마치 자연 속에 잠긴 채 살아가는 것처럼 구성했다. 
 

판스워스 하우스 내부 /flickr

다만 공사비 문제로 미스와 건축주간의 갈등이 생겨 공사는 난항을 겪었고, 미완성인 채 빈집으로 남았다가 미스 밑에서 일했던 전 직원의 중개로 집은 완공된다. 미스가 이 집을 설계할 때 사생활 보장이 없는 수준으로 건축했기 때문에 건축주인 에디스 판스워스는 자연 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지냈고 현관에는 벌레 퇴치를 위한 방충망을 다는 등 온전한 주거 기능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판스워스는 이 집을 주말에 쓰는 별장으로 사용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의 이 작품을 보러 오는 손님들을 초대하는 곳으로 썼다. 현재 판스워스 하우스는 역사적인 주택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시그램 빌딩 /flickr

시그램 빌딩은 그가 처음으로 건축한 오피스타워이자 1950년대 미국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초고층 마천루들이 몰려 있었던 뉴욕에 지은 첫 작품이다. 이 건물은 미스와 건축 애호가이자 시그램CEO의 딸인 필리스 램버트와의 긴밀한 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파크 애비뉴에 위치한 시그램 빌딩은 몰려 있는 건물들과 달리 길 건너편 멀찍이 떨어져 있다. 이 건물은 유리 블록이 현실로 이루어진 커튼월 프리즘 타워 형태를 채택했다. 외부 구조물은 청동으로 제작되어 건물에 어두운 톤을 부여하고 멀리서 보면 마치 기둥이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그램 빌딩 유리에 비치는 빌딩들의 모습 /flickr

옛부터 청동은 경의를 표하는 조각에 많이 쓰던 재료로, 미스는 광장 뒤로 이 건물을 배치함으로써 조각으로서의 마천루 느낌을 강조했다. 시그램 빌딩은 1,500여톤의 청동을 사용해 당시 가장 비싼 마천루 중 하나가 됐다. 여기에서 미스는 하나의 전략을 세웠는데, 부지 내 유용한 공간을 일반 대중에게 환원한다는 전략을 짰다. 즉 이 부지의 일부를 파크 애비뉴를 마주 보는 한 층 올린 공공 광장으로 만든 것이다. 광장 덕분에 미스는 당시 뉴욕의 건축 규정이었던 단층 설계를 피하고 공간을 훨씬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고.
 

미스가 디자인한 일리노이공과대학 캠퍼스 예배당 /flickr

미스는 현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자신만의 특별한 건축 스타일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는 종종 그의 격언인 "less is more"(적을수록 많다)와 "God is in the details"(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로 잘 알려져 있다. 

최소한의 자재 사용, 공간의 정의, 구조의 투명성으로 인해 그의 건축물은 '피부와 뼈'라 불렸다. 그의 건축물은 내부와 외부 사이의 해체를 촉진하고, 공간 구성에 유연성을 주어 폐쇄된 느낌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flickr

그는 특정 스타일을 염두하면서 건물을 건축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나는 우리 문명에 관심이 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연구한 끝에 건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을 표현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미스는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성격과 본질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기 위해 과거와 당시의 위대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해 독학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미스의 건물은 실제로 보면 매우 직접적이고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미스의 건축은 고도의 추상적 개념에서 만들어졌으며, 미스의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설명은 사람들에게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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