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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왕세자 집무공간 ‘경복궁 계조당’에서 조선 왕세자의 흔적을 찾다, 《왕세자의 공간, 경복궁 계조당》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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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왕세자 집무공간 ‘경복궁 계조당’에서 조선 왕세자의 흔적을 찾다, 《왕세자의 공간, 경복궁 계조당》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11.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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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공간, 경복궁 계조당》 /한국문화재재단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12월 18일까지 세종이 왕세자 집무공간으로 건립했던 계조당의 복원을 기념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경복궁 계조당에서 《왕세자의 공간, 경복궁 계조당》 전시를 개최한다.

계조당은 1443년(세종 25) 세종이 왕세자(훗날 문종)의 집무 공간으로 건립하였으며, 문종은 이 공간에서 정무를 보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했다. 문종의 생전 뜻에 따라 1452년(단종 즉위년)에 철거되었으나, 1868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지면서 당시의 왕세자였던 순종이 사용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완전히 철거되었던 것을 문화재청이 발굴조사를 거쳐 올해 9월 복원을 마쳤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경복궁 계조당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조선의 왕세자 ▲계조당의 왕세자 ▲왕세자의 의장 ▲동궁과 계조당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왕세자가 사는 곳은 궁궐 동쪽에 있어 동궁이라 한다. 동궁은 왕세자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경복궁에 처음 동궁 일곽이 조성된 것은 세종 대로, 왕세자가 생활하는 자선당과 집무처인 승화당을 지었다. 세종이 왕세자(훗날 문종)에게 일부 업무를 대리하게 하면서 신하에게 조회를 받을 장소로 1443년 계조당을 새로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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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종의 생전 뜻에 따라 1452년(단종 즉위년)에 계조당과 승화당은 철거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소실되었던 동궁 일곽은 고종 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어졌다. 주요 전각인 계조당과 자선당, 동쪽에 집무 공간인 비현각, 남쪽에 세자를 보위하는 관아 등을 갖추었다.
 

계조당 /김서진 기자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동궁 권역은 다시 훼손되었다가 1999년 자선당과 비현각이, 2023년 계조당이 복원되었다. 계조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통칸 건물로 별도의 행각과 담장으로 둘러 독립된 권역을 형성했다. 규모는 작지만 경복궁 내 왕의 업무 건물인 사정전과 비슷한 구조로 다음 왕의 권위를 보여주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북궐도형 /김서진 기자

1865년 경복궁을 중건한 뒤 제작한 경복궁 도면이다. 도면 전체를 일정한 크기의 칸으로 나누고 경복궁 안 건물 배치 현황을 그렸다. 각 건물은 칸마다 기능과 정면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중건된 경복궁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 자료로 오늘날 경복궁 복원의 중요한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동쪽 부분에 세자의 생활과 집무 공간인 동궁 권역을 확인할 수 있다.

의장은 왕이나 왕실 주요 인물이 행차할 때 깃발이나 부채 등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물을 갖춰 늘여 세우는 것을 말한다. 1475년 발간된 『국조오례의서례』에 왕세자의 의장은 22종류의 의장물 총 35개를 행렬 좌우와 중앙에 배치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조선 후기까지 유지된다. 기린기, 백택기, 현학기/백학기, 가귀선인기 등의 깃발로 시작해 표골타, 금등자, 금장도 등의 의장물, 작선이 행렬 좌우에 늘어선다.

이 중 기린기는 왕세자와 왕세손만 사용하는 의장기다. 그 외에 행렬 중앙에 군대의 진·퇴를 명하는 도구인 금(징)과 고(북), 왕세자의 앞과 뒤로 청개와 청양산, 청선이 배치된다. 왕세자 책봉 때 왕세자의 교명, 죽책, 옥인을 만들어 책봉례 전에 왕에게 보이기 위해 궁궐로 들여가는 행렬에서 왕세자 의장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작선 /김서진 기자

공작이 그려진 부채 형태의 의장물이다. 공작은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왕실 인물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왕세자 의장에서는 작선 4자루가 2자루씩 짝을 이루어 사용되었다. 
 

금장도 /김서진 기자

큰 칼 모양의 의장물로 나무에 조각하고 금과 채색으로 장식했다. 왕세자 의장에서는 은장도와 짝을 이루어 배치했다. 
 

기린기와 백택기 /김서진 기자
기린기 /김서진 기자

기린기는 기린이 그려진 깃발로 왕세자와 왕세손의 의장에만 사용되었다. 기린은 용, 봉황, 거북과 함께 네 가지 신령한 동물로 인식되었다. 머리에 긴 뿔이 하나 있고 말과 같은 갈기와 발굽, 오색의 털을 지닌 사슴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기린은 조선시대 왕자의 공식 의상 가슴장식(흉배)에 사용되기도 했다. 
 

백택기 /김서진 기자

백택기는 백택이 그려진 깃발이다. 백택은 인간의 말을 하며 만물의 이치를 아는 상서로운 동물로 덕망 있는 왕이 다스리는 시기에 나타난다고 한다. 얼굴 주변의 갈기와 크고 둥근 눈, 날카로운 송곳니와 갈고리 발톱, 털송이 꼬리 등을 가진 사자와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백택은 조선시대 왕자의 공식 의상 가슴장식(흉배)에 사용되기도 했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계조당은 1443년 왕의 업무를 대신할 왕세자의 업무 공간으로 지은 전각이다. 1442년 세종은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며 왕세자가 업무를 대신하도록(섭정)했고 이듬해 계조당을 지었다. 계조당의 첫 주인은 왕세자 문종이다. 문종은 1421년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442년부터 세종이 세상을 떠나는 1450년까지 왕의 업무를 대신했다.

왕세자는 계조당에서 정무를 보기 전 신하들에게 인사를 받는 의례인 조참을 받았다. 이는 왕세자의 공식 업무 장소가 계조당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외에 계조당에서 외국 사신을 접견하거나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 계조당은 1452년에 철거되었다. 

고종 대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1868년에 계조당을 다시 지었고 당시 왕세자 순종이 사용했다. 순종은 이곳에서 나라에 행사가 있을 때 왕을 대신해 신하들과 의례를 행했고 왕세자 생일을 비롯한 왕실 잔치를 열기도 했다. 
 

순종의 모습 /김서진 기자

순종은 1874년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아들로 태어났고 이듬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7년 고종 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하면서 순종은 황제로 즉위한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순종은 이왕으로 신분이 낮아져 실권을 잃고 왕릉을 참배하거나 일본 관료들을 접견하는 일 등을 하며 지내자 1926년 세상을 떠났다. 순종의 장례는 일제에 항거하는 6·10만세운동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관상감 측우대 /김서진 기자

관상감 측우대는 비의 양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올려 놓았던 받침돌이다. 조선시대 기후 관측을 담당했던 관상감 터에서 발견된 유물로 조선 세종 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육면체 돌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여기에 측우기를 올려 놓았다.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김서진 기자

조선시대 농업에서 중요한 강우량을 측정하는 데 사용했던 도구다. 측우기는 1442년에 처음 발명되었는데 당시 왕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던 왕세자 문종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다. 원통 바깥면에 설치장소, 명칭, 크기, 제작년도가 적혀 있다. 바닥면에는 측우기 운영을 담당하는 사람의 직급이 적혀 있다. 제작년도와 사용장소가 유일하게 알려진 측우기다.
 

열성어필에 실린 문종의 글씨 /김서진 기자

문종은 1414년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1421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학문을 좋아하며 천문학, 수학에 능통했고 글씨도 잘 썼다. 세종 대 혼천의와 간의대, 측우기 제작에 참여했다. 1442년 군사훈련을 대행하는 것으로 왕의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왕세자 시절부터 편찬에 참여한 『고려사』, 『고려사절요』는 즉위해 완성했다.

문종은 국방에 관심이 많아 즉위 후 화차 개발을 주도하고 군제 개혁안을 직접 마련해 중앙군인 오위의 기틀을 잡았다. 즉위 후에도 많은 업적이 기대되었지만 몸이 허약해 재위 2년 만인 1452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조선시대 왕세자는 다음 왕위계승자로 공식 책봉된 왕자다. 왕의 적장자인 원자를 왕세자로 책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왕세자 책봉은 왕위의 안정적 계승을 준비해 국정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다. 어린 원자의 양육과 보호는 원자보양청에서 담당했다. 글을 읽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강학청에서 교육을 맡았다. 원자가 8-12세가 되면 관례와 왕세자 책봉례를 행했다. 왕세자 책봉례에서는 임금이 왕세자에게 교명과 죽책, 어보를 내린다. 이후에는 성균관 입학례와 혼례를 치르게 된다. 

왕세자를 책봉하고 나면 무엇보다도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담 교육 기관으로 세자시강원을 설치하고 학식과 인품히 훌륭한 관원을 스승으로 삼았다. 왕세자는 해 뜨는 시간부터 늦은 오후까지 스승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공부 외 시간에는 국가의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활쏘기와 군사 훈련을 겸한 사냥 등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몇몇 왕세자는 왕의 업무를 미리 대신하며 왕위에 올랐을 때 할 일을 익히기도 했다. 
 

현종 왕세자 책봉 죽책 /김서진 기자

1651년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첫째 아들 연을 왕세자로 책봉할 때 만든 죽책이다. 대나무에 글을 새기고 동판으로 연결했는데 총 6매로 이루어져 있다. 왕세자의 자리가 존귀함을 강조하고 좋은 성품을 갖추고 학문에 힘쓰라는 임금의 당부가 적혀 있다. 
 

순종 왕세자 책봉 옥인 /김서진 기자

1875년 원자 척을 왕세자로 책봉하면서 만든 것이다. 옥돌로 만들었고 네모난 몸체에 용 모양 손잡이를 붙였다. 바닥에는 '王世子印(왕세자인)'이 한자 서체 중 하나인 구첩전으로 새겨져 있다.
 

순종 왕세자 책봉 옥인 체험하기 /김서진 기자

관람객들이 순종 왕세자 책봉 옥인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순종이 왕세자로 책봉될 때 만들어진 옥인을 들어 잉크를 찍고 종이에 직접 찍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 전경 /김서진 기자

전시와 연계해 동궁 권역과 전시를 해설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는 ‘왕세자의 일상’ 해설 프로그램과 3차원(3D) 측우기 만들기 체험도 진행된다. 해설 프로그램은 사전예약이 필요하지만, 전시 관람과 측우기 만들기 체험은 기간 동안 누구나 예약 없이 참여할 수 있으며 전시와 해설, 체험 등은 전부 무료이다.

해설 프로그램 예약은 티켓링크를 통해 회차당 15명씩 선착순 신청할 수 있으며 더 자세한 사항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누리집, 한국문화재재단 누리집을 참조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계조당 복원 기념 전시를 통해 경복궁 복원의 의미와 계조당의 역사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앞으로도 복원된 궁궐 전각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여 국민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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