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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염색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훗날 화가의 화가가 된다, 틴토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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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 염색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훗날 화가의 화가가 된다, 틴토레토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3.11.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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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 <Assumption virgin>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베네치아의 화가 자코포 코민은 원래 이름보다 '틴토레토'라는 별명으로 더 익숙하다. 아버지가 염색공이었기에 어린 염색공이라는 뜻의 틴토레토라는 별명을 얻은 그다. 작품에 대한 경이로운 에너지는 그로 하여금 '폭풍처럼 몰아치는', '격렬한' 화가라는 말을 듣게 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리는 속도와, 대담한 붓놀림에 감탄과 비판을 동시에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람들이 그를 정말 좋아하거나, 정말 싫어하는 등의 극명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그는 후대의 많은 화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화가의 화가'라는 말 또한 들을 자격이 충분했다.
 

틴토레토의 자화상 /flickr

틴토레토의 어린 시절은 알려진 것이 많이 없다. 그가 태어난 시기가 1518년인지, 1519년인지 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해 출생 연도도 불분명하다. 다만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몇 안 되는 상징적인 예술가들 중 하나다. 그의 아버지는 염색공으로, 사실상 틴토레토의 예술적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작업에 썼던 안료 및 기타 매체를 접한 그는 '틴토레토'라는 별명을 통해 가족의 직업인 염색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거라 학자들은 추측한다.

틴토레토는 어렸을 때부터 집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아버지는 그를 티치아노의 작업실로 데려가 예술가로서 어느 정도까지 훈련을 받을 수 있을지를 알아봤다고 한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개 일반적으로 티토레토가 미술 수업을 받은 건 티치아노의 작업실에서 연습생으로 일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다만 이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는데, 티치아노가 틴토레토를 집으로 돌려보낸 건 틴토레토가 화실에 온 지 열흘 만에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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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 <Mater Dolorosa> /flickr

학자들은 나이가 많은 스승과 상대적으로 어리고 진보적인 성향의 제자 사이의 충돌 때문이라 예상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거리를 유지했으며, 티치아노와 그의 제자들은 틴토레토에게 등을 돌렸다고 한다. 전 스승에게 수업을 받은 이후 틴토레토는 대부분 독학으로 가구 등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실력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특히 미켈란젤로의 새벽, 황혼, 밤을 그린 작품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티치아노가 사용했던 밀랍과 점토를 만지며 모델링의 전문가가 되어 그림의 인물 배치에 큰 도움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 안에서 '미켈란젤로의 드로잉과 티치아노의 색채'를 결합한 작품을 만드는 걸 목표로 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며 건축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틴토레토의 기법이 청중들에게 얼마나 급진적으로 다가갔는지를 보여준다. 바사리는 "때때로 이 화가는 붓놀림이 보일 정도의 거친 작업 스케치를 보여준다. 판단하고 설계를 하는 것보다는, 우연과 격정에 의해 그려진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구절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는 티치아노에 대한 선호와 함께 틴토레토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인용문에서는 그가 틴토레토를 두고 "회화 예술이 낳은 가장 비범한 두뇌"라는 말을 통해 틴토레토에 대한 찬사를 볼 수 있다.

1538년 틴토레토는 작업실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베니스에서 일하는 화가라 소개했다. 특히 전 스승이었던 티치아노가 구현했던 기존 전통 르네상스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베네치아 회화에서 유행하는 최신 흐름을 따랐다는 것이 특징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충격'을 지향하는 이 화가의 움직임에 안타깝게도 티치아노는 그 움직임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틴토레토가 여러 단체에서 커미션을 받거나, 회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등 젊은 예술가의 앞길을 여러 번 방해했다. 티치아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틴토레토는 벽화 프레스코화 형태의 공공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스쿠올라 디 산 로코의 웅장한 풍경 /flickr

그는 그의 첫 걸작인 <Miracle of the Slave>를 그렸고, 이것은 그를 베네치아 대중들과 후원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교회 의뢰 외에도 16세기 틴토레토와 다른 베네치아 화가들에게 커미션을 의뢰한 건 신도회나 스쿠올라였다. 스쿠올라는 병자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는 공공서비스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적으로 조직된 자선 단체다. 틴토레토는 희한한 수를 쓰곤 했는데, 그는 자신이 봐도 탐나는 커미션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그림 비용을 터무니없이 낮추기도 했다.

그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는 1564년 스쿠올라 디 산 로코(Scuola di San Rocco)에 쓸 천장 벽화를 그리기 위한 경쟁에서 보인다. 당시 틴토레토를 포함해 선정된 예술가들에게는 작품에 대한 스케치를 제출해야 하는 규칙이 있었는데, 틴토레토는 스케치를 내는 대신 이미 천장에 설치할 수 있는 그림 패널을 공개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에 반대하자 틴토레토는 이 선물을 마땅히 받을 의무가 있다며, 심지어 이 그림을 스쿠올라에 기부한다. 
 

틴토레토 <Miracle of the Slave> /flickr

1548년 작업한 <Miracle of the Slave>는 스쿠올라 디 산 로코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이다. 쓰러진 남성 주위로 군중이 모여 있으며, 충격과 혼란 등 인물들의 다양한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흰색 터번을 두른 한 인물이 돌아서서는 높은 자리에서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지도자를 향해 부러진 망치를 들고 있다. 틴토레토의 이 작품은 로마 안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인물들의 액션이 저마다 강렬하다.

이 작품은 주인이 통행을 금지한 성 마르코의 유물에 기도를 드렸다는 이유로 벌거벗은 노예가 처벌을 기다리는 모습을 묘사했다. 사형집행인은 세 번이나 노예에게 형벌을 내리려 했지만 그때마다 노예가 다치기도 전에 집행 도구는 부서진다. 하늘에는 노예를 구출하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성 마르코가 보인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꿈에 기반한 내용으로, 황제가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로 하여금 돕도록 명령한 시종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틴토레토 <The Origin of the Milky Way> /flickr

헤라클레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4점의 그림 중 하나인 틴토레토의 <The Origin of the Milky Way 은하수의 기원>은 아내인 주노 여신한테 인간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몰래 수유 중인 주피터 신을 묘사한 작품이다. 틴토레토는 주노가 깨어나 주피터를 발견하고 당황한 순간을 그렸다. 신화에 따르면 아기 헤라클레스는 여신의 수유를 통해 불멸을 얻는데, 주노가 깨어나 이 상황을 알고 분노하여 우유가 하늘에 뿌려지며 만들어진 별들이 은하수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인물의 근육들이 돋보이는 주노의 모습은 미켈란젤로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인물의 리드미컬한 배열은 틴토레토 특유의 스타일이다. 인물과 복장에서 두드러지는 색상 사용은 틴토레토가 어릴 적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많은 안료를 접한 것과 연관된다고 본다. 학자들은 작품에서 사용된 안료의 범위와 품질에 집중했다. 하늘의 강렬한 파란색에서 회색으로, 또한 흰색과 금색에서 주황색과 진홍색으로 시선이 이동하는 세심한 팔레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평을 남겼다.
 

틴토레토 <The Last Supper> /flickr

그는 더 많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낮은 수수료를 감수하면서도 많은 그림을 그렸다. 이 전략은 1547년 처음으로 그린 <The Last Supper 최후의 만찬>을 포함, 그가 알려질 수 있었던 종교적인 작품으로 여러 의뢰를 받으면서 성공적이라는 걸 입증했다. <The Last Supper 최후의 만찬>은 산 조르지오 마조레 교회의 의뢰를 받아 그린 작품 중 가장 독특하고 극적인 연출을 자랑한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제자들은 모두 테이블 반대편에 있다. 11명의 제자들과 두 명의 여성이 그리스도와 같은 쪽에 서 있으며, 그중 한 명은 파란색 옷을 입고 다른 한 명은 빨간색 옷을 입고 있다. 이것은 각기 마돈나와 막달라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한다. 또한 캔버스 왼쪽에 있는, 그리스도 뒤에 있는 램프는 빛을 발산하고 있다. 또 탁자 건너편에는 배신자 유다가 있는데, 그는 마치 최후의 만찬을 베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틴토레토가 후원자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던 종교적 주제를 묘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사례들 중 하나다. 전통적으로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면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인 그리스도가 중앙에 있으며 이들이 유일한 등장인물들로 나오지만 틴토레토는 다르게 봤다.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저 뒤에 멀찍이 서 있으며, 막상 중심은 제자들이 아닌 접시를 들고 오는 여인이나 탁자에서 접시를 치우고 있는 하인들이 눈에 띈다. 제자들이 앉아 있는 탁자는 가파른 대각선으로 인해 공간 한쪽으로 사라지는 느낌을 준다. 틴토레토는 복잡하고 비대칭적인 구도를 사용, 과장된 표현과 불명료한 구도가 특징인 매너리즘적 장치를 활용했다. 
 

틴토레토 <St Mary magdalen> /flickr

그는 16세기 베네치아 회화에 큰 족적을 잠겼다. 빠르면서도 느슨해 보이는 붓놀림,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 등 독특한 그의 접근 방식은 티치아노나 베로네세 및 동시대 베네치아 화가들의 전통적 스타일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특히 티치아노가 상류층들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면 틴토레토는 중산층 또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도 자유로우면서 역동성이 느껴진다. 특히 성서의 사건 묘사에 대한 점이 유명한데,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윤곽선을 강조하는 그의 붓놀림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들 등 후기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틴토레토는 움직이는 인물들의 에너지를 강조하면서 극적인 단축법과 원근법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인물의 표정보다는 움직임과 역동성으로 관객들에게 내러티브를 전달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조차 작업실에 머물렀다. 그의 작품은 유산으로 남아 다음 세대의 예술가들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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